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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정 / 춘양(春陽)을 기다리는 기억들

박영택

안효정-춘양(春陽)을 기다리는 기억들



사진은 분명 객관적 세계를 인증한다. 해서 사진은 오랫동안 현실 인식의 탁월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한편 발터 베냐민은 사진을 일종의 텍스트로 간주했다. 실재계를 찍은 사진 역시 상징계의 질서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오늘날 사진은 현실에 대한 인식에 적합하다는 사실의 회의에 봉착해 상징계의 질서가 아닌 상상계로 들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사진이 더 이상 객관적 실체를 증거 하는 수단이지도 않게 되었다. 오늘날 사진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의 화학적 증거’가 아니다. 사진은 이제 실재와 가상 사이에 걸쳐있거나 그 둘이 경계없이 뒤섞인다. 이른바 팩트와 픽션이 뒤섞인 ‘팩션’ 사진이 대세라고들 한다.
최근 젊은 작가들은 보는 세계에 만족치 못하고 그 안에 환상이나 가상을 삽입한다. 보고 싶은 것을 드러내거나 현상 이면에 잠복한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부단히 유출하고자 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연출과 각색을 통해 풍경과 사물을 낯선 것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라캉은 상상계로 표상될 수도 없고 상징계로 의미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그가 ‘실재계’라 부른 그것은 이미지로 표상하거나 텍스트로 의미하는 순간 더 이상 실재가 아니게 된다. 이미지든 텍스트든 자신을 가리키는 기호를 미끄러지게 하면서, 그리하여 상상계로도 상징계로도 편입되기를 거부하면서 끝까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는 것을 말한다. 그 실재계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때때로 트라우마가 되어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 모호하고 난해하며 도저히 알 수 없는 삶, 우리네 인생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안효정의 사진은 자신의 삶을 보여준다. 연출한다. 그 삶은 텍스트로도 이미지만으로도 재현되기 어렵다. 살아온 시간동안 누적되고 가라앉아 불현듯 떠오르고 현재의 시간을 잠식해 들어가는 그 알 수 없는 기억의 무게와 상흔들을 주어진 대상과 풍경 안에서 발견한다. 다시 본다. 그리고 그것을 찍고자 한다. 해서 그 대상에 개입해서 약간의 연출, 조작을 가한다. 예를 들면 하연 침대 시트위에 섬을 닮은 무거운 돌 하나를 눌려놓거나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동 입구에 인위적으로 가설한 붉은 색 커튼을 설치한다거나 미묘한 느낌을 동반하는, 흡사 무덤 가를 연상시키는 숲에 붉은 색 실을 매달거나 늘어 뜨려놓는 식이다.
그런가하면 잔잔한 수면 위를 분할하듯, 한 가운데에 붉은 색 로프를 띄워놓거나 초록의 잔디밭 위에 붉은 색 천을 뒤집어 쓴 사람을 앉혀놓았다. 주어진 대상 안에 또 다른 사물을 개입하거나 장면을 설정하는 연출사진이다. 공통적으로 붉은 색 천, 실이 개입되어 있다. 이 강렬한 붉은 색의 실이나 끈은 물과 녹색의 숲, 흰 눈 속에 혈흔처럼, 상처처럼 흩뿌려진다. 그것은 작가의 여러 상념이나 감정, 기억과 고통, 지난 시간에서 현재로 수시로 귀환하는 모종의 정신적 증상들이다. 그런 오브제의 개입 없이 찍은 몇 장의 사진도 있다. 나로서는 그 무심하면서도 어딘지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거의 직관에 이끌려 찍은 풍경 사진이 더 좋다. 언어화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섬세한 감성적 시선이 감도는 사진이다.

주어진 풍경이나 일상의 사물을 본다는 것은 현재의 시간 속에서 포착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지난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 위로 살아 움직이면서 간섭하고 개입한다. 과거화 된 현재의 시간이나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이 현재 시간위로 압도되어 닥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시간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미래, 현재가 혼재되어 이루어진다. 대상을 본다는 것은 그 모든 시간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물어뜯는 일이다. 사진 역시 그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안효정은 바로 그 장면을 찍고자 하는 것 같다. 작가는 일단 ‘필’이 꽂히는 장면을 찾는다. 우리를 찌르는 촉각적 효과를 가리키는 푼크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사진은 기호가 아니라 코드의 바깥에서 우리를 찌르고, 마음을 흔들고, 전율하게 하는 사물이다. 대상은 우연히 다가온다. 사진은 뭔가를 재현하는 그림도 아니고 뭔가를 전달하는 문서도 아니며 그저 존재했던 어떤 것의 흔적일 뿐이다. 그것이 보는 이의 마음에 ’흔적‘을, 상흔을 남긴다. 작가는 그것만으로는 아쉬워 그 안에 또 다른 사물을 개입했다. 돌과 실과 커튼 등이다. 특정 대상을 가리거나 은폐하는 천은 일종의 억압을 상징한다. 붉은 색/끈은 잡념이나 헝크러진 기억, 사념을 의미하고 상처를 암시한다.
이 사진은 실재하면서도 부재하는 풍경이다. 어떤 경계에서 출현하는 풍경, 현실과 부재 사이에서 출몰하는 풍경이다. 또한 현재의 시간위로 또 다른 시간의 출현을 보여주는 장치다. 의식 속에 깃든 무수한 기억의 자취와 사념들의 투영이다.

안효정의 사진은 자기 생의 지난 시간이 현재의 시간위로 유령처럼 출현하고 있는 것의 목도를 보여준다. 그것은 안타까운 삶의 어쩔 수 없는 재림이다. 이 언캐니한 풍경은 ’억압된 것의 회귀‘(프로이트)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삶의 한복판에서 억압된 욕망을 연상시키는 대상이나 현상을 볼 때, 인간은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안효정은 사진을 통해 그 억압된 기억을 회귀시킨다. 과거 속에 잠겨있는 멈춤의 상태, 지난 시간의 기억이 현재로 수시로 출몰하는 아픔을 딛고 밝고 생동하는 현재의 시간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제목이 ‘춘양’(春陽)이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은 높고 험준한 산지로 이루어진 곳이다. 예로부터 건축재, 가구재로 쓰이던 춘양목이 자라는 곳으로 유명한데 지명이 춘양인 이유는 겨울이 너무 춥고 길어서 봄의 따스한 햇살을 간절히 기다리는 바람으로 인해서라고 한다. 작가 역시 자신의 무의식에 어둡고 서늘하게 자리한 기억과 상흔을 지우고 따스한 봄볕을 쪼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새롭게 환생하고 싶은 것이다. 춘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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