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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자 / 선으로 이루어진 여성의 몸

박영택

조춘자-선으로 이루어진 여성의 몸



조춘자는 여자의 누드만을 그린다. 남성의 벗은 몸은 배제되고 다른 존재 역시 작가의 화면에서 가능한 배제된다. 배경은 색채로 적셔져있거나 무의미한 자취로 구분되어 있을 뿐이다. 전적으로 여성의 몸만을 보여준다. 이 차별과 분리, 배제는 전적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어떤 확신 아래 가능해보인다. 작가는 말하기를 여성의 몸이 그 어떤 대상보다도 가장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몸을 이루는 선으로 인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30여년 가까이 여성의 몸을 모델로 해서 그림을 그려왔고 목선과 어깨, 가슴선의 절묘한 아름다움을 화면 위에 구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런 선이 보여 지기 위해서 부득이 누드가 요구되었고 머리 또한 묶어서 위로 올려야 했다. 그래서 한결같이 턱선, 목선과 어깨선, 가슴선이 드러나 있는 편이다. 더불어 청초하고 청순한 여성성이 은연중 베어 나오게 한다. 그러니까 그림을 보는 이들은 벌거벗은 여자의 몸보다는 그 몸을 이루는 선들을 주목해보아야 한다. 인체는 무수한 선으로 이루어졌다. 관능적이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선들은 뼈와 근육, 살과 주름 사이에서 보였다 사라지듯 나타나고 자리한다. 그것들 역시 인공이 아닌 자연의 선이다.

작가의 그림을 유심히 보면 얇고 섬세한 선들이 굵기와 강도를 달리해서 이어지고 끊어지면서 긴장을 준다. 정확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면서 동시에 동양화 특유의 선 맛을 간결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작가의 그림은 인체, 특히 여성의 몸을 이루는 섬세하고 관능적이며 지극히 아름다운 그 선을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하려는 시도에서 풀려나온다. 그런 선 하나를 온전히 그려내기 위해 여성누드는 불가피하게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여성의 몸은 아름다운데 그것은 몸을 이루는 여러 선들로 인해서다’ 라는 확신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주지하듯이 동양화가 다름아닌 선의 예술이라면 조춘자의 그림 또한 인체를 소재로 해 정확한 데생을 바탕으로 하고 방법적으로는 정교한 채색화를 통해 여전히 ‘선’을 긋는 일이었다고 본다. 그 선 하나를 제대로 그리는 것이 동양화작업일 것이다.

작가는 또한 반복된 여체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고려로서 화면구성을 풍성하게 하고모종의 이야기를 삽입시키기 위해 그 누드에 옷/투명한 가운 같은 것을 올린다. 사실 그것을 특정한 옷이라고 부르기는 좀 이상하다. 다만 옷처럼, 옷자락처럼 다가온다. 몸을 감싼 옷이거나 정체성을 표시하는 옷이 아니라 인체의 윤곽선를 더 돋보이게 하고 몸을 이루는 선들을 더 고양시키는 한편 인체의 선들이 인체 밖으로 연결되어 확산되도록 하려는 의도 아래 얹혀진 그런 옷/베일이다. 방향과 기운, 흐름과 이동, 그리고 심리적 언어를 동반하는 선, 옷의 선이다. 그것은 누드를 부분적으로 덮고 있지만 투명하게 몸을 드러내고, 선을 보여주고 동시에 정적이고 차분한 몸에 활력과 동세, 흐름을 입혀준다.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놀이하듯 자리한 그런 흔적이다. 얼굴의 방향과 연관된 얇고 투명한 옷자락은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떨어대는 것 같다. 그것은 부동의 화면에 시간성을 얹혀주고 감성적인 여운을 조금씩 밀어 올린다. 화면에 어떤 파장이 생기고 생기가 감돌고 은연중 관음증 같은 것들도 유발한다. 이런 연출이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여체의 아름다운 선, 그리고 기운생동 하는 선, 그리고 동양화 모필의 선 맛을 석채를 이용한 전통적인 채색화를 통해서도 시각화시키려는, 시킬 수 있다는 작가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리라.

이 작가에게 미술행위란 자신이 상정한 아름다움, 미적 세계를 구현해내는 일이다. 아름다운 것을 모방해내는 일이 그림 그리는 일이 된다. 따라서 작가는 여체에서 미를 발견하고 여성의 몸에서 이상적이고 완벽한 선을 찾아낸다. 그것의 작가의 미학이자 미술관이다. 생각해보면 이 작가는 여성의 몸을 모방하고 재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몸을 이루는 선들을 찾아 나서고 이를 화면에 올려내는 일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그러니까 특정인의 몸과 얼굴을 재현하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몸을 빌어 여체의 아름다움, 여체를 이루는 선의 절묘함을 공유하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동양화가 무엇보다도 선의 예술이라면 그 선은 여러 갈래로 보여지고 드러날 수 있겠는데 이렇게 선으로 이루어진 몸을 통해 선의 맛을 보여주고 그 선을 온전히 그려내는 일도 가능한 것이다. 선이 사군자나 서체적 붓질, 추상적인 운필의 효과만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누드채색화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체는 작가에게 그림의 소재이자 주제이고 거의 전부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작가에게 있어 여성의 몸이 아름답다는 얘기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여성이기에 한 여성으로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파악하고 구현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묻어 있다는 생각이다. 분명 남성작가들이 여체를 보고 파악해내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어떤 것이 조춘자의 그림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여성이 발견한, 여성의 신체에서 연유하는 선의 아름다움이다. 그 선 하나를 그리기 위해 작가는 오늘도 벌거벗은 여자의 몸 앞에서 선을 찾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생명력의 흐름, 기운을 부단히 더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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