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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순 / 맑고 깊이 있는 선과 색의 세계

박영택

김종순은 동양화의 서체적 운필을 응용해 즉흥적이고 추상적인 선으로 이루어진 회화와 색채추상을 선보이는 한편 음악의 세계를 시각화, 신체화 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전개해 온 작가다. 그리고 그 과정과 역사가 무척 깊다. 그에게 있어 회화란 무엇보다도 모필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그 붓의 신체성에 의해 드러난 자취가 하나의 그림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작업이 된다. 작가에게 선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결정적 수단이자 자기 내면의 감정과 마음의 운동과 삶의 상황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기호이고 흔적이며 하나의 상징이다. 따라서 그것은 단지 그림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에 작가에게 있어 그림그리기란, 선과 색채를 통한 부단한 시각화 작업은 자기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절박한 신호이자 작가로서의 자존적 생애(전통과 연계된 또는 육체적 모험)를 보여주는 부단한 실천적 행위에 해당한다.
오랜 시간 서예와 사군자로 단련된 작가의 작업세계는 자연스레 동양 예술의 근원과 전통에 깊숙이 뿌리내리며 전개되어 왔다고 보여진다. 애초부터 모필과 일획에 입각한 서예의 근간이 작업의 핵심적 요인으로 작동해왔다는 것이다. 동시에 서예와 사군자라고 하는 전통적이고 도상적인 혹은 규범적인 체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활달한 하나의 이미지로서의 세계로 나가고자 하는 도정을 보여 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러한 모색은 한국 근대기 서화가들로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지난한 과제이다. 전통사회에서 기능했던 서화가 그것을 지탱하던 유교적 이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체제가 붕괴된 이후로 서와 화가 분리되고 각자의 길로 흩어져 왔거나 혹은 서구에서 수용된 미술의 개념 아래 녹아버린 정황이 그간의 역사적 과정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마도 이응로를 위시한 많은 작가들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동양화 전통(모필과 선)을 서구 현대미술과 접목시키거나 응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 고민은 또한 상당히 상투적인 틀 안에서 반복해왔거나 둘의 외형을 간편하게 결합시켜 알리바이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풀려왔음도 부인하긴 어렵다.

김종순의 택한 길 역시 모필과 선의 맛과 힘을 살리면서 동시에 전통적인 서예와 사군자에 저당 잡히지 않는 순수한 회화의 길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그 도정에 자리했다고 여겨진다. 그 첫 번째 길은 의미를 함축한 특정 문자의 꼴을 지시하는 서예의 틀에서 부단히 빠져나와 문자나 명명성의 세계 혹은 기호의 틀에서 벗어나고 해체되어 순수한 자족적인 선의 세계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문자를 지우고 기호를 무산시켜 흐드러 지는 선이자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혹은 충동적인 내면의 욕망이 발현되는 선으로 펼쳐진다. 이 선 긋기는 화면을 채우고 증식해 나가면서 강약과 힘의 조절, 명확하고 희미한 것, 생과 사, 시간의 단계적 이동 그리고 몸의 전진과 후퇴에 따른 다양한 표정과 다채로운 농담의 변화로 몰려간다. 아울러 단일한 먹색에서 벗어나 여러 색상들이 혼재되어 있는 추상적인 선의 세계로 나간다. 그것은 결국 선에 의한 퍼포먼스이자 자발적인 드로잉이고 목적과 의미를 지우고 철저하게 자기 본능에 입각해서 이루어지는 선의 세계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러한 선을 만들기 위해 특정 문자나 사군자의 형태를 지시하는 데서 벗어나고 밀어부친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면이 호명하는 대로, 감정이 요구하는 대로 선들을 긋거나 끄적이거나 뭉개고 있다. 아울러 그런 감정의 고조와 몰입을 유도하거나 유지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음악을 끌어들인다. 작가는 고전음악을 들으면서 그 음에 이끌려 또는 음의 고저가 요구하는 대로 마음을 내맡겨 그것이 선으로 나오는 과정을 즐긴다. 따라서 작가에게 그림은 음악과 혹은 음의 세계와 불과분의 관계를 갖는다. 그것은 마치 구체적인 세계의 재현이라는 미술의 오랜 과제로부터 단호한 이탈을 추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음이라고 하는 추상적 세계를 동경했고 꿈꾸었던 칸딘스키의 작화방식을 연상시켜준다. 더 나아가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무의식이나 깊숙한 자기 내부가 지르는 소리에 이끌려 화면위로 신체의 움직임과 그 궤적을 순수하게 받아 적었던 폴록의 오토매틱적인 추상표현주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나에게는 김종순의 작업이 모필에 의한 서체적 추상이자 모필로 감행하는 퍼포먼스이고 자신의 신체의 극한적인 자유를 꿈꾸기 위해 지상에 저당 잡히고 현실적 요구에 응축된 몸을 열어젖히려고 하는 치열한 퍼포먼스라고 본다.
한편으로 그것은 이 작가가 오랜 시간 연마하고 습득했던 서예나 사군자를 제작했던 작화 태도를 여전히 끌어안고 그것을 현대미술과 접목하려는 부단한 모색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라고도 본다. 작가는 먹 대신 수채화 물감을 사용하고 전통적 모필을 통해 선의 흐름과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고 여전히 한지를 사용해서 그 종이 자체가 지닌 삼투와 선염의 기법을 극대화 하고 있다. (여기서 수채화물감의 사용은 그것이 모필의 부드럽고 자유로운 운동감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수용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렇다.) 그와 같은 방법론은 무엇보다도 동양 서화의 전통을 뿌리삼아 이를 현대미술과 접속 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여러 모색 아래 풀어내려는 작가의 인식을 반영한다.
결국 작가는 한지와 모필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또한 그것이 서예나 사군자에 기계적으로 국한된 세계로 머물지도 않는, 그리고 특정한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으로도 풀리지 않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나간다. 철처하게 선, 모필로만 가능한 어떤 세계를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붓과 선은 작가의 몸과 의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작가의 신체는 붓이 돼서 종이 위로 유영하고 마냥 깊숙이 스며드는가 하면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신체를 대신해서 그 어떤 이의 몸보다도 활달하게 화면 위를 질주하고 나아간다. 따라서 작가에게 그림은 자기의 제한된 현실의 대리적 체험이자 꿈꾸기이고 현실에서 가능하지 못한 욕망을 의사실현해 주는 자유로운 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 퍼포먼스적인 선 긋기가 자칫 감정적이고 또는 과잉된 제스처로 머무는 선으로 귀결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작가의 순수한 선 긋기는 추상적이면서도 한 편으로서는 자신이 구체적으로 듣는 음을 시각화하는 것이기에 그 결과물은 부단히 특정음악과 관련을 맺게 된다. 또한 어떤 작품들은 유심히 들여다보면 난이자 다양한 식물이고 자연 풍경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우거진 잡풀사이로 들어나는 풍경이기도 하고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선의 흐름 속에 얼핏얼핏 몸을 내미는 식물의 이미지를 연상시켜 준다. 또는 다양한 포즈를 취한 인물의 동세를 암시(모필에 의한 인체드로잉, 크로키 작업)하기도 한다. 사실 그런 이미지는 결국 선을 보여주기 위한 방편에 머무는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선이자 이미지이고 이미지이면서 선인 작업, 대상과 선 사이를 넘나들고 그 경계를 희롱하는 일련의 작업이 좋다. 사군자나 자연 풍경을 슬쩍 연상시켜 주면서도 선으로 빠져나가고 순수한 추상적 선으로만 몰려있으면서도 그 사이 사이로 얼핏 이미지를 안겨주는 몇몇 그림이 재미있는 것이다.
한편 선에 의한 드로잉작업에 반해 한지에 혼합 매체로 이루어진 색채추상작업은 얼룩과 번짐, 삼투와 혼용 등의 자취로 가득한데 그것이 기묘하게 서정적인 풍경을 떠올려 주는 그림이다. 이 색체 추상들은 이후 단일한 모노크롬으로 이행한다. 먹에서 색으로 나아간 이 작업은 몇 겹의 한지를 부착한 표면 위로 시간의 차이를 두고 무수히 여러 번 단색을 삼투하는 작업이다. 수채화 물감으로 이루어진 이 작업은 가능한 '세상에서 가장 투명하고 맑고 깊은 색'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얇은 한지를 4~5겹씩 깔고 그 위로 붓질을 하고 하나의 획을 그어가면서 색을 먹이면 하나의 색은 깊이를 지닌 한지의 내부로 수직으로 침투하면서 적신다. 시간이 지나면 색들은 다시 위로 우러나오고 응고된다. 다시 그 위에 색을 칠하고 마르고 굳는 일련의 지난한 과정을 지속하면서 작가의 색채추상 작업은 완성된다. 결과물에서는 모필의 선은 드러나지 않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작은 단위를 이루는 자잘한 생명들은 모여서 하나의 큰 화면을 만든다. 다시 그 작은 화면 하나하나는 여러 붓질로 마감되어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단호한 모노크롬 색 면 추상으로 보여지지만 사실 그 작업 또한 여전히 모필의 힘과 선의 궤적으로 이루어진 그림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작업 역시 거듭되는 붓질, 하나의 획, 종이의 내부로 스며들어 깊이를 만들어내는 속성, 무수한 노동의 과정이란 작가의 특징적인 방법론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김종순의 이 방법론은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이 여전히 전통과 연계되어 연루되어 나가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지점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작업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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