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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필용 / 보름달과 매화

박영택

한 전시장에서 달항아리에 꽂힌 매화를 보았다. 데스크 옆에 놓아두었는데 볼수록 아름다웠다. 매화가 한참일 남도지방에 못가는 대신 새벽 꽃시장에라도 가서 저 매화를 사오고 싶었다. 매년 3월이면 매화그림 전시도 한창이다. 아직도 바람이 차가운 날에 한지에 수묵 대신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매화그림을 보았다.(송필용전, 이화익갤러리, 3.7-20) 한결같이 달빛 가득한 밤하늘에 별처럼 피어있는 매화다.
서양화재료를 가지고 영락없이 수묵화처럼 매화를 ‘치고’ 있다. 순백의 매화 모습은 으스름한 달빛과 어울릴 때 진경을 이룬다. 균형과 절제된 감각을 중시해 온 한국 선비문화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매화의 암향을 즐기고 예찬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옛 선비들은 매화나무를 사랑채 창문 앞에 가꾸어 달빛에 비치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네 가지 귀한 덕을 맛보았다고 한다. 함부로 번성하지 않고 희소한 것, 어린나무가 아니고 늙은 나무의 모습, 살찌지 않고 홀쭉한 마름, 활짝 핀 꽃이 아니라 오므린 꽃봉오리의 귀함이 바로 그것이다. 오랜 풍상을 이겨낸 듯한, 밑둥이 굵은 고목과 달을 함께 그린 어몽룡의 월매도(月梅圖)를 보면 가지 끝에 걸린 달과 여백을 충분히 살린 대담한 구도변형과 독창적인 공간 구성이 무척이나 절묘하다. 그것이 시적인 운치를 한껏 드러낸다.
송필용도 그런 매화도를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알다시피 사군자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네 종류 식물을 소재로 하여 그리는 그림인데 모두 추위를 견디며 꽃을 피우거나 푸르름을 잃지 않는 기개를 자랑하는 것들이다. 그중 매화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꽃으로 선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식물이다. 더불어 옛사람들은 달을 또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달은 맑고 높은 절개의 상징이자 풍요와 재생, 부활의 기본적 원형이자 그 밝은 빛은 정화하는 힘을 상징하며 차가운 느낌은 군자의 덕을 상징한다. 더구나 달은 밝고 원만하되 한 모습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래서 달은 매화와 함께 그려져야 한다. 송필용 역시 만월과 매화를 함께 그려 넣었다.

오늘날 문인들의 사군자는 무의미해졌고 사대부계급의 유교적 이념, 성리학적 세계관 또한 망실되었다. 그러나 사군자를 새롭게 환생하고자 하는 여러 시도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박제된 전통의 소재화인지 또는 색다른 재료의 연출로 자족되고 있는 지는 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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