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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혜준 / 현대인의 진실한 초상

박영택

모혜준은 인터넷상에 떠도는 이미지에 주목한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눈을 잡아끄는 작은 사진들은 우선적으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현실의 단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선정적인 제목과 이미지들로 압도한다. 그것은 우리가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라 볼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외면할 수 없는 이미지와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하는, 관음증적인 사진들이 지뢰처럼 퍼져있다. 마우스만 갖다 대면 확대되어 다가오는 이미지는 한결같이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여주는데 대부분 그들의 육감적인 몸매와 관능적인 자태들을 들이민다. 시시콜콜한 일상사가 묻어있고 하찮은 것들을 낱낱이 드러내며 끊임없이 폭로한다. 무위미한 것들에의 강박적 집착, 과도한 관심들로 이루어진 이 세계는 인터넷으로 가능해진 풍경이다. 특히나 연예인의 육체와 그들의 일상에 과도하게 들러붙은 이 관심의 영역은 마치 그들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관찰해야만 할 것 같은 기이한 욕망을 추동한다. 결국 이 볼거리에의 집착은 그들의 육체가 동경이나 선망의 대상이자 동시에 그 육체를 둘러싼 하찮은 담론을 조장한다. 그래서 모든 이들은 그들의 육체를 모방하고 그 몸짓을 내재화한다. 그렇게 해서 몸을 둘러싼 미의식과 시선의 착종이 이루어진다. 그리고는 그것이 현실계의 몸을 규정하고 강제하는 규범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인공적 미로 연출된 연예인들의 현기증 나는 몸의 노출과 아슬아슬한 패션은 더욱 ‘에스컬레이터’된다. 그만큼 오늘날 현실은 겉모습, 외모가 절대적인 ‘진실’이 되었다. 그 미의 기준은 이제 모든 것이 촬영되고 기록되고 보여지는 관음증의 극한 시대에 따라 재편되는데 따라서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하든지 예쁘고 섹시하게 연출하는데 몰입되어 있다. 유사 이래 한국 사회가 온통 몸짱과 섹시하고 관능적인 몸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이토록 과도하게 열광하던 때는 없었던 듯 하다.

모혜준은 인터넷상에서 그런 연예인들의 몸을 수집하고 이를 그림으로 그렸다. 단순하게 집약하고 배경을 지운 체 오로지 인물의 선에 주목했다. 대상의 특징을 강조하고 그 몸짓과 패션, 화장술을 압축해냈다.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오늘날 젊은 여자들의 몸이다. 연예인들의 몸을 모방한 몸이기도 하다. 겨우 걸친 옷과 그래서 드러나는 살들과 가슴과 긴 다리에 초점이 맺힌 연예인들의 사진은 볼거리이자 동시에 욕망의 대상이고 그런 몸의 연출로 모든 이들을 내몬다. 그렇게 매스컴에서 만들어지고 보여지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이 시대의 미적 아이콘이 되어 떠돈다. 대중매체를 통해 강제된 육체가 획일적으로 유포되고 그런 패션과 화장술이 지배적인 것이 되면서 많은 이들이 동일한 모습으로 동일하게 행동한다. 초미니를 걸치고 계단을 올라갈 때 마다 핸드백이나 가방으로 뒤를 가리는가 하면 가슴이 깊게 패인 옷을 입고는 인사를 하거나 고개를 숙일 때 마다 한 손으로 그 가슴을 방어한다. 그런 모습은 동일하게 반복되고 강도를 높이면서 상승하는데 그 모습이 조금 기이하다. 모혜준의 그림은 그런 상황성을 다소 희화적으로 그려낸다. 단순한 선으로 형태를 요약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마감된 듯한 그림 속의 대상은 한결같이 여자들이다. 모두가 연예인의 모습을 흉내 낸 의상과 그렇게 노출된 각선미를 드러낸다. 동시대 젊은 여성들의 풍속화인 셈이다. 외모지상주의에 의해 굴절된 육체이자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자태들이다. 모혜준의 그림은 단지 예쁜 여자들의 겉모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행동 양태를 관찰하고 있는 보고서이자 ‘다큐먼트’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것은 양가적 감정의 산물일텐데 자신 역시 그러한 흐름에 무관하지 않고 무한한 관심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획일적인 문화에 거리를 두고 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여성의 존재는 오로지 미적 기준에 의해서만 논의되는 것 같다. 그것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여성의 운명에 대한 방증이다. 모혜준의 그림이 그것을 반영한다. 동시에 오로지 외모만이 그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한국 현실에 대한 일종의 풍자이기도 하다. 이른바 ‘하의실종패션’, ‘숨막히는 뒷태’, ‘베이글녀’, ‘무보정 직찍’, ‘미친 몸매’ 등등의 용어를 떠올려준다. 이런 문구들이 오늘날 미의 기준을 제시하는 담론이 되었다. 사실 그러한 자극적인 문구들은 이 시대를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용어에는 현재 우리가 갈망하는 미의 기준이 들어있고 현대인들 모두가 욕망하는 모습을 지시한다.
작가의 그림 속 여성들은 외모와의 무한한 경쟁을 벌인다. 반복해서 핸드폰 카메라로, ‘얼짱 각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찍어대고 여성잡지에 실린 모델들의 자태와 화장을 학습하고 매 순간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연예인들의 모습을 숙지하는가 하면 성형과 미용, 패션연출로 자신의 몸을 가꾼다. 그것이 생존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급박하게 변하는 미의 기준과 최근 유행하는 패션과 화장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야 하는 이 여자들은 자신의 만족에 의해 그 일을 열심히 수행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시선에 보여지고 있는 존재임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몸을 연출하고 있다. 따라서 주체의 자리에 타인의 시선이 대신 들어섰다.

작가는 그렇게 타자의 시선에 의해 새로운 미적 주체로 변신해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 젊은 여자들의 몸을 그렸다. 그녀들은 계속해서 변해가는 추이를 부지런히 쫓아갈 것이다. 이 고도 소비자본주의사회가 회전하기 위해 고안해낸 유행의 주기를 따라갈 것이다. 그에따라 모혜준의 그림 역시 변화해갈 것이다. 작가는 말하기를 “나는 계속 변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담하고 심각하지 않게 담아보려 한다.”
선명한 문장처럼 자리한 작가의 그림은 대중매체를 통해 강제된 미적 기준을 충실히 재현하는 몸들로 이루어졌다. 변형되고 과장된 신체를 선묘로 그렸고 그 안에 원색적이고 화려한 패턴을 입혔다. 그림이 그려지는 바탕인 한지는 재질의 특성상 물감을 적극 흡수한다. 그렇게 한지의 내부로 스미고 쌓인 흔적들을 흡사 현기증 나는 속도로 진행되는 첨단의 유행을 신속히 흡수해대는 동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시켜주는 편이다. 새삼 모혜준의 그림은 우리 시대의 적나라한 풍속화이자 세태풍자적인 요소를 흥미롭게 두르고 있는 그림이 되었다. 이것이 어쩌면 지극히 한국적인 그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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