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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 / 자연속에서, 그림속에서의 삶

박영택

홍천 산골에 자리한 이광영의 작업실은 아담한 옛집이다. 십 수 년 동안 살면서 그 낡고 허름한 집을 고치고 다듬고 어루만져 오고 있다. 자신의 몸을 부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 안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자연을 바라보기 위해 흙과 돌, 나무를 공들여 편애한 자취들이야말로 그대로 예술작품이었다. 그 안에는 그가 자연 안에서 소망하고 바라는 것들이 도상이 되고 화사한 색채가 되어 불거져 나온다. 마치 꽃처럼, 새처럼 피어나고 울어댄다. 작은 마당이 보이는 창에서 그는 그 앞에 자리한 자연의 변화무쌍한 얼굴을 시간의 흐름 따라 지켜보았을 것이다. 생생불식하고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얼굴은 단일한 초상으로는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변화하고 사라지고 덧없이 흐르다가 영락없이 되돌아와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저 자연과 함께 선회하고 윤회하며 살아간다. 나의 살과 꽃, 나무와 풀, 새와 물고기, 벌레와 별이 다르지 않다. 저 거대한 우주자연을 바라보며 명상에 젖어가는 자신의 깨달음 같은 것을 그려보이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따뜻한 온기와 함께 번져 오르는 무성한 풀과 온갖 꽃들, 마당을 스윽 지나는 뱀, 산에서 내려와 울고 가는 새들, 가볍게 부양하는 나비와 벌, 홍천강의 수면 아래 부드럽게 유영하는 물고기들이 그의 그림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그는 그 생명체들을 마음속으로 삽입시켜 도상화했다. 자연의 모습은 결국 인간화의 과정을 거쳐 이미지가 된다. 모든 이미지는 자연으로부터 파생되어 산개한다. 그가 그린 그림은 자연 안에서 늘상 보고 접하고 가슴에 담아둔 생명체들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삶의 환경 안에서 파생한 것들의 충실한 기록을 그림으로 선보인다.

이광영의 그림그리기는 홍천의 산골에서 살면서 겪어낸 것들의 환생이다. 그도 자연을 닮아 기어이 자기 의식 안에서, 마음 밭에서 생명체를 피워내고 길러낸다. 어느덧 자연의 신비와 생명력, 조화에 대한 놀라운 탄식이 그의 마음과 손을 바쁘게 했을 것이다. 그도 자연처럼, 혹은 농부처럼 여러 재료들을 가지고 생명체를 길러낸다. 그의 그림은 땅이 아니라 인공의 화면 위에서 배양되는 생명의 시각화다. 작가는 조직이 치밀하고 견고한 스티로폼을 깎아 모종의 이미지를 간추려 도상화했다. 부조화된 이미지들은 앞서 언급한 자연의 생명체들이다. 온갖 생명체가 뒤섞여 하나가 된 이미지위에 고운 흙에 물을 섞어 흙물을 입힌다. 스티로폼의 표면을 흙물로 칠하고 덮어나가면서 대지의 살을 연출한다. 나무와 풀, 새와 물고기, 사람의 형체(여자와 아이들)는 흙이 되고 땅이 되었다. 다시 그 위에 채색을 입혔다. 이른바 오방색과 오간색을 중심으로 설채했다. 흙과 물감이 만나 부드럽게 적셔 들어가고 온화한 피부를 만들었다. 이 흙과 함께 한 따스하고 온화한 색채는 해학적이며 편안한 도상과 함께 자연에서 받은 인상, 그 편하고 자연스러운 세계를 시각화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그림들이 너무 유사한 도상화와 소박한 장식성으로 몰려가고 있음은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신만의 도상의 변별성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납작한 평면에서 융기한 도상들은 연기적으로 얽혀있고 흡사 사찰의 꽃살문처럼 황홀하다. 민화나 화려한 색채와 현란한 꽃으로 직조된 꽃창살문의 이미지 등이 혼재되어 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들이 흩날리는 듯한 문창살, 꽃살은 사찰에서 그 화려함의 정점에 서있다. 불교에서 꽃은 법이요 진리며 극락이다. 그리고 신성함을 의미한다. 꽃은 그 자체로 완결된 여래의 씨앗이다. 꽃은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이것을 화려한 형색으로 보는 것은 인간이다. 감각적 욕심 때문에 꽃을 자극적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변질시켜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벗어나 꽃에서 분별상을 찾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유마경>은 가르친다. 꽃창살은 꽃만이 아니라 무수한 생명체가 죄다 달라붙어 연결되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이렇게 연기적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생명 하나하나가 모두 지극한 불성이라는 가르침이다. 모든 생명체가 두루 뒤섞여 있고 차별이나 구분없이 종합, 통섭의 손길 아래 가득하다는 메시지다. 그는 한국 전통미술의 다양한 흔적들(민화, 사찰 꽃살문, 문자도 등)을 골고루 섞어서 버무려놓았다. 여기에는 단지 형식적이고 외양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그 저간에 흐르는 세계관, 사물관이랄까 모종의 정신이 간결하게 추려져 함께 한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가 평온하고 평등하게 조화를 이루는 장면인데 이는 삶이란 인간의 삶이 아니라 만물의 그것으로 치환되며, 인간은 우주만물의 극히 작은 한 부분이란 이야기다. 인간의 눈으로 대상을, 자연을 바라보고 질서지우는 것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전도된 시각이다. 다분히 범신론적인 체계이다. 더불어 천진한 아이의 마음으로 본 세계상도 떠올려준다.

이광영은 자연 안에서 생활하며 작업하는 현재의 행복함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유토피아의 가설이자 행복의 도상화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그림은 행복을 구현하고자 한 시도였다. 오래전부터 동양에서는 자연 안에서 지극한 행복을 추구하고 안락을 도모하고자 한 그림을 추구했다.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많은 작가들은 자연 안에서 소박한 삶을 부리고 그 안에서 깨달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한 섭리를 남루한 그림 안으로 불러들이고자 애써왔다. 이광영 또한 깊은 자연으로 들어와 소박한 삶을 부리면서 그 속에서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을 시각화하는 한편 그런 삶과 작업하는 일이 더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며 행복한 생애임을 진솔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자신의 진솔한 삶과 분리되지 않는 그림을 거듭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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