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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욱 / 마음으로 프레밍 한 산 사진

박영택

한국의 자연은 산을 중심으로 펼쳐져있다. 산이 국토의 척추이자 뼈대이다. 그래서 옛부터 한국들에게 산은 단순한 물리적 경관이자 풍경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신령스럽고 영험하며 숭고한 대상이자 신적 존재였다. 따라서 산은 한국인들에게 근원적인 모태 공간이자 원초적인 심미적 공간이었다. 앞뒤로 가득한 산을 바라보고 그 산을 산행하며 살았던 생의 역사가 한국인의 삶을 수놓고 있다. 그렇게 펼쳐진 연이은 산을 눈에 가득 담아가며 자연에 대해 숙고하고 자연이 만든 아름다움에 투항하며 그 자연/산을 동경하고 닮고자 했다. 그래서 동양에서 진정한 군자의 모습은 산에서 찾아진다. 아예 산이 되고자 열망했던 이들이 한국인이다. 속세를 등지고 수시로 산에 들어가 그 신묘한 기운을 뒤집어쓰고 다시 환속하는 삶을 반복하는 것이고 깊고 유장한 산이 품고 있는 덕목을 내재화하는 한편 유한한 인간의 속악한 생을 마냥 반성해왔던 것이다. 그것이 산수시와 산수화 속에 오롯이 담겨 전해온다. 산이 쪼개진 하나의 수석에 대한 예찬과 완상도 그런 맥락에서 기능한다. 그래서 산과 그 것이 축소된 돌에 대한 주술적인 기원과 신성한 기운에 대한 흠모는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지금도 한국작가들은 유독 산을 많이 그리고 그 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선사해오고 있다.

임채욱의 산 사진은 얼핏 동양화로 재현한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안긴다. 그것은 카메라로 ‘그린’ 산수화다. 횡(橫)으로 길게 펼쳐진 파로나마 구도 안에 끝없이 이어지고 야트막하게 연결된 한국의 전형적인 산세를 담고 있다. 우에서 좌로, 좌에서 우로 번갈아가며, 반복해서 거니는 시선에 의지해 본다. 가상의 이동과 와유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동양화 산수의 구도가 떠오른다. 대부분 안개나 구름에 의해 가려지고 지워진 산의 일부가 어렴픗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로인해 산의 윤곽은 내부를 지운 체 강한 실루엣으로 차오르고 정작 산의 안쪽은 안개들이 입김처럼 지우고 있다.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여백은, 운무나 안개 자욱한 풍경은 일부분만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다. 나머지는 상상하게 한다. 온전히 보여지기 보다는 일부는 가려지고 나머지는 여백, 텅 빈 화면 안에 잠겨있다. 보는 이들은 온전하게, 전일적인 시선으로 그림을 바라볼 수 없다. 많은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적게 보여주고 다 보여주기 보다는 일부분만 보여주는 편이다. 보여주는 것보다 상상하게 하는 것이 그 대상을 좀 더 잘 보게 하는 일이라고 본 것이다. 꿈꾸게 하고 기억하게 하고 회상과 여운 속에서 사물과 대상을 추려내게 하는 것이다. 망막으로 모든 것을 보고자 하는 시욕망을 짐짓 누그려 트리고 망막 이외에 몸이 지닌 다양한 감각기관과 정신적 활력을 통해 상상하고 지각하게 한다. 정신적인 활력을 자극해 실세계를 지각하고 그림 너머의 세계로 몸과 정신을 유인해주는 것이 다름아닌 산수화였다. 그림을 보는 관자의 상상작용이 일어나고 비로소 그림은 머리 속에서 완성된다. 산수화를 보면서 실재하는 자연을 소요하는 체험(정신적 활력)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관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동참시키며 그의 상상력과 지각작용을 독려하는 것이 산수화라면 임채욱의 사진 또한 그런 상상하기, 이른바 마음으로 보기를 적극 독려하는 사진이다.

근경에서 후경으로 갈수록 산을 뒤덮은 짙은 청색, 검정색이 혼재된 색채는 서서히 옅어진다. 아니 이 사진 속 산들은 어떤 특정한 색채로 환원되기 어렵다. 이 색채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연출되거나 각색된 것이 아니라 그 순간, 그 장소에서 사실적인 기록에 의해 포착한 것이다. 자연에서 모든 색을 포용하고 있는 먹색 같기도 하고 또는 언어로 형용화하기 어려운 색채가 마구 번진다. 깊고 아득하고 서늘하다. 작가는 카메라 눈이 보지 못하는 형태/색, 보이지 않는 색을 포착하고자 했단다. 아니 저절로 그런 색이 드러났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망막에 의해 포착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보고 접한 것이 아닐까?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마음이 프레밍 한 이 산 사진은 결국 한국적인 정서로 짙게 문질러져있다.
이 산풍경은 이내 사라질듯하기도 하고 서서히 살아 오르는 것도 같다. 산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어 부풀어 오른다. 숨 쉬는 대기와 차오르고 흩어지기를 반곡하는 기운들이 산을 감싸고 돌아다닌다. 설악산과 덕유산, 지리산이 주종을 이룬다. 이른바 백두대간의 대표적 산들이다. 작가는 그 산들을 수차례 종주하면서 문득 우리 민족적 정서의 뿌리가 산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한민족의 핏줄이 산의 봉우리와 능선의 굽이굽이마다 뜨겁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따라서 작가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온전히 배어있는 이 산을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어떻게 찍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고민의 단초는 이미 전통적인 산수화에 깃들어 있음도 발견했다. 선인들이 그린 산수화 또한 단지 눈에 비치는 경관의 재현이나 중국풍의 산수에 대한 기계적 모방 혹은 유교적 이념에 따른 도상화에 머무는 것만은 아니었다. 단원이나 겸재 같은 이들의 산수화에는 이 한반도의 산에 깃든, 자연풍경에 담긴 우리 민족의 정서와 미의식이 오롯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학부시절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새삼 카메라를 통해 산수화적인 산 사진을 찍고 있고 이를 통해 그 선인의 산수화를 오늘에 환생하는 한편 한국인의 생활터전이자 공간인 그 산으로부터 배태된 정서와 심미감을 인화지의 표면에 호명해 내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주로 새벽녘에 촬영했다. 음기와 양기가 팽팽하게 맞물려 천지에 힘의 균형이 자욱한 시간대, 이상한 경계에 서있는 순간, 바로 그 시간대에 바라본, 잡힌 산을 담았다. 손수 만든 카메라의 화각에 담긴 그 산은 사진이미지와 그림 사이에서 요동친다. 짙은 색조에 잠긴 산 덩어리와 여백처럼 빈 하늘, 그 산 사이로 파고들어 산의 형태를 지우고 뭉개는 운무가 그야말로 그림처럼 펼쳐져있다. 수묵산수화가 보여주는 맛을 사진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기계적인 카메라의 시선으로도 우리 산의 매력을 실감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시도로 다가온다. 알다시피 동양화에서 중요한 것은 물리적 현상의 재현이 아니라, ‘현상의 경험’이었다. 단순한 물리적 재현이 아닌 정신적 재현이라는 얘기다. 그것은 눈으로써 사물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심안으로서 관조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활력을 자극해 실세계를 지각하고 그림 너머의 세계로 몸과 정신을 유인해주는 것이 바로 산수화였다. 산수화를 보면서 실재하는 자연을 소요하는 체험(정신적 활력)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관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동참시키며 그의 상상력과 지각작용을 독려하는 것이 산수화라면 임채욱의 사진 또한 그런 맥락에서 살아난다. 얼핏 보면 그의 사진은 그대로 수묵산수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사진이미지다. 그러나 시원하고 확 트인 페스펙티브와 여백, 단색조의 색상, 숭고미를 자극하며 펼쳐진 산세, 횡으로 종으로 펼쳐진 화면 등에서 그야말로 실감나는 산수화를 보는 체험을 안긴다. 사진으로 재현한 이 산수화를 통해 우리는 새삼 우리 국토, 산의 정체와 그 공간이 형성해놓은 심미적 문화의 전통을 헤아려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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