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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미 / 회화의 가능성을 행한 항해

박영택

어쩌다 미사리나 부산에 가면 순백으로 빛나는 요트를 볼 수 있다. 돛이나 기관으로 움직이는 작은 배를 지칭 하는 요트라는 존재는 상당히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자동차를 소유하듯 요트 하나를 갖고 있으면서 수시로 망망대해를 떠도는 꿈은 황홀하다. 요트의 돛은 목적 없는 낭만적 유랑, 육지를 떠나 바람에 의존해 대해로 나가는 해방감, 일탈의 욕망을 보여주는 매개다. 따라서 요트는 부의 상징이나 파라다이스의 추구, 노마드 적인 삶의 은유로 다가온다. 마치 인물산수화에서 한 척의 작은 배에 기댄 고사(高士)의 초상이 연상되는 것이다. 주어진 자연에 기꺼이 순응하는 태도, 흐르는 물을 관수하면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이의 모습, 그리고 세속으로부터 풀려난 이의 몸을 그 그림 안에서 본다.
최유미는 오랫동안 이 요트를 모티프로 삼아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나 정작 화면 안에는 요트를 연상하는 구체적인 이미지는 부재하다. 다만 돛을 떠올려주는 색 면, 문자와 숫자, 돛을 암시하는 끈/실이 부착되어 있다. 돛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바람을 받아 배를 가게 하기 위해, 뱃바닥에 세운 기둥에 매어 펴 올리고 내리도록 만든 넓은 천인 돛 그 자체가 화면에 부착되거나 일치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주어진 캔버스 천, 화면을 통해 우리에게 요트를 안겨주고 바람에 의해 떠도는 그 움직임의 한 순간을 접촉시키려는 시도 같다.

모호한 색채가 얼룩지고 은은하게 진동하는 색 면이 깔려있고 그 위로 속사의 붓질이 균질하게 뒤덮고 있는 형국인데 그 사이로 문득 문자나 숫자 등이 떠도는 그림이다. 이 색채추상은 화면 전체를 비교적 균질하게 채우고 있는 파스텔톤의 색채, 시간의 흐름과 몸짓이 감지되는 붓질로 진동한다. 작가의 화면은 문자로 규정되기 어려운 색채들로 문질러져 있다. 그 색채의 떨어대는 진폭이 풍경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그 색채는 미묘한 분위기와 아우라를 발산한다. 그것은 기묘한 공간을 열어준다. 이 핑크나 청색 등으로 섬세하게 조율된,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상은 작가의 기호에 의해 조율된 색이다. 그것이 캔버스 전체를 감싸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돛sail이란 단어에는 캔버스, 화포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돛은 캔버스 천이었다. 15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캔버스가 등장할 때 나무 틀에 씌운 천은 다름아닌 범선의 흰 돛이었다. 결국 대해양 시대를 열어가는 유럽이 발달된 범선을 통해 본격적으로 세계를 정복, 소유하러 나가려는 시기에 역시 눈에 보이는 세계를 망막에 복종시키려는 의지를 실현한 캔버스와 유화물감이 발명되었음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최유미는 주어진 화면에 ‘돛’이란 천을 올려놓는다. 원래 돛이었던 화면, 천에 돛을 상징화해서 가설했다. 그것은 추상화와 오브제 작업으로 병행된다. 우선 은은한 파스텔 톤으로 화면을 칠하고 덮고 그리고 지운다. 그것은 그리고자 하는 욕망이자 동시에 표현되기 어려운 것에 대한 막막함, 애매하지만 분명히 느꼈고 감지했던 것에 대한 기억의 몸짓이다. 그렇게 캔버스 표면을 신체의 흔적으로 안개처럼 덮고 있다. 색 면과 붓질로 도포된 표면이자 흔들리는 돛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의 자취, 그리기의 몸짓은 대개 사선의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또한 돛의 방향성이나 펄럭임, 바람을 암시한다.
화면에는 그려진 선과 실재하는 실/선이 동시에 겹쳐진다. 그것은 구상이면서 추상이고 저부조이자 레디메이드 작업이다. 캔버스 화면 내부에서 표면으로 빠져나와 늘어진 실, 바느질된 실,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선 등이 공존한다. 그 실은 실제 돛을 표상하고 더러 요트에 쓰이는 특수한 실로서 표면에 바느질을 하고 있다. 선은 수직으로, 사선으로 그어지면서, 설치되면서 안개처럼 퍼진 색 층의 화면 위를 가로지른다. 이 명료한 직선은 바탕 면과 대비되면서 충돌하는데 레디메이드인 실은 탱탱하게 조여지거나 중력의 법칙을 받도록 늘어져 있기도 하고 길이의 편차도 다르다. 그 선이 그림을 그리거나 터치를 남기는가 하면 그것 자체로 독립되어 사물로 자리하는 것이다.

작가는 돛의 일부분을 그리기도 하고 화면에 실을 부착하거나 천을 콜라주했다. 그런가하면 물감과 붓질로 칠해진 화면, 천에 다른 천을 얹혀서 찍어내고 그렇게 얻은 천을 다시 화면에 부착하고 덧붙인다. 물감이 묻어난 흔적과 찍혀진 부위가 다시 그림 안으로 수렴된다. 원본을 추억하는 천의 조각이 그려진 화면 사이로 개입하고 그 둘은 상반된 양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화면은 조각보처럼 여러 개의 면들로 구획되고 그 면은 그림과 콜라주로 구성되어 있다. 직접 붓질로 칠해진 화면과 우연히 묻어난 화면이 공존하고 추상과 실재하는 실/선이 조화를 이루는 이 상반된 요소들 간의 충돌과 절충으로 이루어진 화면은 회화에 대한 여러 가능성의 실험으로 다가온다. 결과적으로 화면에는 새로운 피부가 형성되었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주어진 캔버스 천의 물성을 강조하고 있고 그 평면 안에 색다른 평면의 세계, 그림과 오브제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천, 실을 올려놓는다. 캔버스 천의 물성을 강조하고 표현적인 붓질과 실이라는 재료, 그리고 캔버스 조직의 단위를 가지고 이미지를 형상화 시키고 있는 최유미의 작업은 상당히 복합적인 회화의 세계를 타진해나가는 여정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요트를 타고 헤아릴 수 없는 바다를 떠도는 모험, 수평선 너머를 꿈꾸는 미지의 여정과도 동일해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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