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한지현 / 나만의 유희 공간

박영택

작가들에게 작업실이란 현실적 삶의 공간에서 의도된 유배나 은둔, 일탈과 몽상이 가능한 유토피아일 수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상적 공간을 가설하고 그 공간 안에서의 은밀한 삶을 꿈꾼다. 좁게는 자신만의 방, 혹은 고립된 영역 내지는 자연 속에서 유폐나 안치를 선택한다. 그림 그리는 이들에게 작업실이란 공간은 노동의 공간이자 유희의 공간이고 또한 일상의 번잡함과 고단한 속세의 온갖 압박으로부터 잠시 벗어난 도피처이다. 그래서 모든 작가들은 자신만의 공간, 작업실을 간절히 꿈꾼다. 혼잡한 도심 속의 작은 방이나 한적한 자연공간의 처소이든 작가들에게 절실한 것은 바로 자신만의 공간일 것이다. 이 공간에 대한 욕망은 비단 작가들에게만 허용되거나 꿈꾸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들 또한 놀이터에서 그 유희와 몽상의 시간을 보낸다. 소비자본주의사회가 허용하고 유혹하는 온갖 방들도 생각해보면 각자가 꿈꾸는 유토피아의 공간인 셈이다.

한지현의 그림은 자신의 작업실 현장과 상상된 놀이터 풍경으로 나뉜다. 전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의 시선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나 연장, 온갖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린 테이블이나 작업대 풍경이다. 작가는 그 연장, 물건들과 함께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작업대 장면을 내려다 본다는 것은 자신의 일, 생활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관조하는 일이다. 그 연장들과 함께 보내는 유희의 시간, 몽상과 일탈의 순간을 다시 보는 일이다. 따라서 이 풍경은 일종의 자화상의 변주인 셈이다. 테이블위에는 그림 그리는 여러 연장들이 놓여져 있다. 캔버스와 노트. 종이, 온갖 필기구, 가위, 자, 접착제 및 주전자, 면장갑 그리고 선인장이 있는데 그 사이로 목각인형이 부유하고 있다. 그림 속에 그림이 있다. 특정한 그림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그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 그것을 그리기위해 보내는 공간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놀이터에 놓인 놀이기구와 몇몇 동물들과 식물, 애드벌룬이 떠있는 풍경이 등장한다. 일상의 공간에 맥락 없이 놓인 놀이터는 원색의 색상에 확대된 장난감 형태로 다가와 보는 이들을 순간 동심에 젖어들게 한다. 아이들에게 그 놀이터는 좁은 실내에서 벗어나 흙과 모래를 감촉하면서 자신의 몸을 놀려 다양한 기구를 타고 노는 장소다. 일종의 해방구이자 유토피아인 셈이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의사자연이자 한정된 놀이기구의 연출로 마감된 제한된 장소이긴 하지만 도심 속에서 놀이터란 그나마 아이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여백이고 틈이다. 전경에 위치시킨 이 풍경은 구체적인 장소이기 이전에 유희와 놀이가 가능한 공간이란 개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주변 풍경은 지워져버리고 오로지 단독의 놀이기구와 느닷없이 등장한 팬더곰, 카멜레온, 그리고 목각인형과 달팽이가 등장한다. 이 낯설고 이상한 장면 위로 뜬금없이 생명체들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생명체들은 작가 자신의 은유로서 등장하는 일종의 페르소나들인 듯 하다. 일종의 자아 이미지인 셈이다. 그런가하면 견고하고 딱딱한 일상의 사물들 사이로 스며든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란 존재는 경이롭고 흥미로운 존재다. 아이들은 모두 그 생명체를 유희의 대상으로 접촉하고 또는 두려워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생명체란 호기심과 상상력을 작동시키고 그것과 놀이를 도모하고자 하는 매개가 된다. 아이들은 동물 또는 의사동물(인형, 장난감)들과 늘상 접촉의 꿈을 키우며 그것과의 적극적 놀이를 몽상하는 이들이다. 어른들 역시 여전히 그 생명체를 자신의 삶으로 끌여들여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작업대나 놀이터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생명체는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거나 자신만의 유희의 공간에서 느리게 이동하며 천천히 주어진 시간을 음미하고 소요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나뭇가지에 붙어 꼼짝 않고 있는 카멜레온, 특정 사물의 피부를 타고 넘어가는 달팽이, 유사인간인 목각인형의 무명성의 얼굴과 모종의 동작은 이 급박한 현실계의 시공간에서 빠져나온 몸들이자 현실계가 강요하는 모든 압력에 저항하는 느림이기도 하다. 창공을 유유히 떠다니는 애드벌룬도 역시 그런 맥락에서 개입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림은 납작한 색 면으로 처리하고 흐릿하고 중성적인 톤으로 감싸 어딘지 비현실감이 감도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선명히 구획된 색 면과 함께 느리고 흐릿한, 메마른 붓질이 겹쳐서 스친다. 구체적인 풍경이면서도 낯설고 모호한 공간 사이로 작가의 분신인 달팽이, 목각인형 등이 꿈처럼 출현한다. 경계를 넘나들고 구분을 지워나가는 일은 항상 현실 속에서 다른 삶을 꿈꾸거나 몽상하는 행위이다. 작가란 존재는 늘상 그렇게 완강한 현실적 삶의 구속과 경계를 지워내고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누리면서 모든 경계를 흔들거나 타고 넘어가는 이들이다. 일상의 공간에 자기만의 유토피아를 가설하고 그 안에서 노동과 유희, 몽상과 욕망, 일탈을 꿈꾸는 이들이다. 한지현 역시 작은 작업실에서 그런 꿈을 꾸며 이를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작가에게 그 꿈꾸기는 달팽이의 느린 움직임으로, 자신의 신체로 사물의 모든 단면을 직접 접촉하면서 타고 넘어가는 순간순간 부풀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른바 포월의 논리로 일상을 넘어가며 또 다른 삶을 도모하고 꿈꾸는 일, 그것을 그려내는 일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