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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석 / 스님의 뒷모습

박영택

 얼굴은 거짓을 일삼지만 뒷모습은, 등은 거짓을 모른다. 그것은 모든 페르소나를 지운 이의 진실을 무방비로 드러낸다. 마구 발설한다. 얼굴이 말하는 게 아니라 기실 등이, 뒤가 무언의 진실을 전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뒷모습에 늘 가슴이 먹먹하다. 얼굴이 슬픈 게 아니라 실은 뒷모습이 더욱 슬프다. 그 등을 보며 개인의 생애와 심성과 정신의 누출을 눅눅하게 접한다. 한 전시장에서 스님이 뒷모습을 그린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노르스름한 색채가 투명하고 깊게 깔린 한지의 바탕 면 위로 검은 먹이 여러 색조를 자아내면서 스며들었고 단호하게 그어진 몇 개의 선이 흩어졌다. 간결하고 절제된 형태와 다채로우면서도 조화로운 수묵의 농담변화를 동반한 이 그림은 작가의 기량을 충분히 감촉시킨다. 김호석이 수묵으로 그린 인물화다. (공아트스페이스, 5.23-6.5) 어딘가를 바라보는 스님의 삭발한 뒷머리를 흐린 먹 색감과 채색으로 빚어낸 정교한 묘사, 간추려 낸 옷 선과 그 안쪽의 주름을 표시하는 먹의 은은한 번짐만으로 마감된 그림이다. 한지의 바탕면, 그 여백이 스님의 시선과 마음, 상념을 대신해서 보여주고 들려준다. 무엇보다도 나는 스님의 승복을 그려내고 있는 선의 조합과 그 사이로 얼핏얼핏 드러나는 먹의 농담이 흥미로웠다. 무척 격조 있고 세련된 수묵화를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김호석은 전통적인 초상화기법을 계승해 당대의 인물을 그려내는 수묵화가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기법에 정통하고 이를 온전히 구현해서 표현해 내고 있는 기량과 솜씨에서 높이 평가되는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본인이 지향하는 삶이나 정신세계를 표상하고 매개하는 존재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는 언제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전통적인 한국 회화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깊이 느낀다. 하지만 또한 나는 그 전통을 사람들의 삶에 근거한 것으로 만들 책임도 갖고 있다.' 그의 강한 작가적 자존심과 거의 종교적인 수준의 소명의식이 묻어난다. 자신만만한 자존감이 읽혀지는 대목이자 동시에 전통이란 것이 단지 지난 시대의 것을 보존하고 전수하는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부단히 해석되어야 한다는 소중한 전언이 담겨있다. 나는 늘상 조선시대 초상화에 감탄해왔다. 그 명맥이 끊어진 자리에 김호석이 그린, 선미가 가득한 스님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이 홀연 다가왔다. 더욱이 요즘 불교계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을 떠올려보니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번지는 스님의 뒷모습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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