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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현 / 무의식에서 길어 올린 흙벽

박영택

 1970년대에 들어와 이른바 ‘단색화’라는 집단적인 미술운동이 있었다. 쉽게 말해 색채 하나를 주어진 화면에 납작하게 도포하는 일인데 그 물감과 붓질이 특정 형상을 재현하는 대신 다만 물감의 질료적 상황, 붓질의 흔적만을 시선에 안기는 그림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단색화를 추구했던 작가들은 일정한 공유성을 보여주는데 우선 당시 미국에서 수입된 현대미술과의 형식성 유사성을 기본으로 해서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고 이미지를 배제하며 단색을 사용하되 그 색채와 그로인해 형성된 화면이 한국의 전통적인 이미지나 색감, 미의식을 부단히 연상시켜주는 쪽으로 만들어 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백자의 표면이나 먹의 번짐, 토담 벽 등을 상기시키는 작업들이 선보였다. 유신시대에 강요된 전통과 탈정치성이 결합한 예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단색화의 대표작가인 하종현의 회고전이 지금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6.15-8.12) 1984년도에 제작한 <접합>연작이 좋았다. 어떠한 이미지도 없이 그저 물감이 발린 흔적만이 침묵처럼 놓여져 있다. 안료가 얹히고 스쳐지나간 흔적, 자연스러운 상처들이며 입체감 있는 미세한 기복들과 재료의 물질적 조직이 드러나는 화면이다. 그것이 그대로 그림이 된 것이다. 작가는  마포로 화면을 만들어 그 위가 아니라 뒤에서 안료를 밀어내 앞면으로 누출시켰다. 화면 뒤에서 물감을 칠하고 문질러서 앞으로 밀어내는 이 작업은 순간 왕골로 짠 돗자리나 흙벽처럼 다가온다. 물론 그렇게 보기위해서는 돗자리나 흙벽에 대한 시각적 경험이 자리해야 하고 그에 대한 친근한 추억과 미감이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자란 하종현에게 새끼줄로 얽은 대나무 ‘발’의 양쪽에서 짚을 넣어 반죽한 누런 진흙, 그 황토를 툭툭 처넣어 바른 흙벽의 추억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리라. 오랜 세월이 지나 서구현대미술의 추상화 어법을 익힌 그가 결국 도달한 곳이 고향의 흙벽이란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물론 이 작업은 흙벽 자체를 재현하거나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만을 추상화로 떠낸 것이다. 그러나 이 화면 앞에 서 있노라면 소박하고 포근한 흙벽의 느낌이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연보를 보니 그가 49세에 그린 그림이다. 그 나이는 되어야 비로소 한 개인의 무의식과 경험, 살아 온 생애와 체득한 조형적 안목이 종합되어 무엇인가가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오로지 그 그림 하나가 그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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