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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철 / 순간의 삶에서 마주한 부재의 자리

박영택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내 앞에 무수한 존재들이 있다. 나를 비롯해 내 앞에 있는 저 존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의 이름, 생김새와 재질 등을 안다고 해도 그것은 존재 자체와는 별 상관이 없기에 여전히 낯설고 모호하다. 익숙하고 친근하다가도 문득 모든 존재/사물들은 느닷없이 이질감과 두려움을 안겨주는가 하면 수많은 상념을 부풀려준다. 그러니 모든 존재는 신비하고 더러 구멍 같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힘을 발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존재라는 사실이다.
 “일상 속에서 무심코 스쳐지나가는 이미지나 사물들이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올 때, 나는 그것들을 수집하거나 소중히 간직하려는 습관이 있다. 선택된 대상들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이들은 돌연 비일상적이 되기도 하며, 보여 지는 대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현존하는 존재가 되어 인식의 대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지석철)

 지석철은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한 존재(대상)가 이상하게 가슴과 의식 속으로 찌르고 들어와 형성된 그 느낌을 그림으로 그리고자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언어화하기는 어렵다. 내가 마주한 저 존재로 인해 생겨난 정서, 아우라는 언어의 그물 사이로 빠져나간다.  다만 막막한 느낌으로 덮친다. 그것을 그린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스쳐지나가는, 무시될 수 있었던 사물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어 특별한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작가란 존재는 무엇보다 바라보는 자이고 반성하는 자이자 자신과 마주한 존재와 함께 몽상에 사로잡히는 이들이다. 그 바라봄은 특정한 대상을 향하고 있지만 동시에 작가 내부로 파고든다. 결국 모든 그림은 대상을 빌은 작가 내면의 초상인 셈이다. 작가가 응시한 대상이 화면에 들어오는 순간 매우 평범한 저 일상적 사물은 시각적인 의미를 지닌 특별한 그 무엇이 된다. 프레임에 담기면 그것은 단지 정지된 사물이 아니라 감정이 깃든 사물로서 삶의 단면을 내포하고 그 이미지들이 모여 모종의 내러티브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곧 작가 자신의 삶의, 정서의 풍경이 된다.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생성의 현장을 지목하는 것을 이른바 현존이라고 한다. 흔히 실재라고도 한다. 그래서 현존이야말로 삶을 근본적으로 설립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지금 여기’는 절대적인 삶의 한계인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그 현존을 가장 강력하게 구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만 현존한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가장 근원적인 것이 된다는 뜻이다. 바로 이 순간의 삶에서 작가는 무엇인가를 보았다. 바다를 보았고 작은 돌멩이와 파도에 의해 무수히 문질러지고 있는 모래를 보았다. 주변에 놓여진 작은 화분과 엔틱 카메라, 장식용 조명기구와 주름진 천, 그리고 가죽 소파의 피부에 주목했다. 또한 외국 여행지에서 마주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나 해안가 풍경, 뉴욕의 마천루들이 솟구친 풍경 등을 응시했다. 순간 그 존재들과 자신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생겨난 ‘비일상적 상상’(지석철)이 번져나갔다. 그것들은 자신에게 다가와 상처 같은 것을 남겼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선명한 감정의 파문을 그려놓은 것의 자취를 따라가 본다. 공들여 그려본다. 그러나 그것을 재현한다고 해서 그 감정과 느낌을 오롯이 형상화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를 암시하기 위해 상황을 연출한다. 서정적인 느낌이 들도록 의도적인 연출을 했다. 그 결과 풍경과 사물 속에 작은 의자를 배치했다. 이 뜬금없는 의자의 출현은 익숙한 풍경의 맥락을 흔들고 배경과 의자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면서 모종의 이야기를 만든다. 의자가 마치 사람처럼 다른 사물을 응시하고 마주하고 있는 듯한 상황이 생겨난 것이다. 의인화된 의자이자 작가의 내면을 반영하는 매개가 되었다. 작가에 의하면 의자는 본인이기도 하고 한 개인 혹은 인간 군상이 되기도 한다. 무수한 의자들은 미미한 인간의 존재를 투영하고 아울러 애틋하고 쓸쓸함, 그리고 그 의자에 앉았다 사라진 숱한 사람들의 부재를 확인시켜주는 매개가 된다. 작가는 그 부재가 “시간이든 추억이든 회상이든 간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내면적 풍경을, 의자라는 메타포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한다. “의자는 현실이며 일상을 의미하고, 커다란 돌이나 황량한 바닷가의 정경들은 현실을 초월한 자연이다. 미니의자와 자연과의 만남은 분명 현실 저편, 심연의 것에 대한 갈망이며, 고독한 삶의 환희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석철)

 바닷가 모래위에 흩어진 돌멩이와 작은 나무의자, 파도가 쓸려가면서 남긴 모래위의 주름들, 길들은 부재를 떠올려준다. 그가 70년대 후반에 그렸던 소파의 쿠션 역시 부재를 암시했다. 의자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몸이 앉았다 떠난 빈자리, 그의 살과 근육을 받아주고 기꺼이 눌렸다 튀어 올라 현재라는 순간에  긴장감 있는 탄성을 유지하고 있는 가죽 질감의 주목이나 의자를 사람이 사라진 바닷가 백사장 위나 여자의 볼록한 배 앞, 헝크러진 침대의 주름진 천위에 놓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것은 모두 지난 시간, 기억을 회상시키는 통로들이다. 누군가 있었다가 사라지고 난 빈 자리다. 그/그녀의 흔적을 강하게 부감시키는 구멍들이다. 그것은 일종의 상실감, 부재의 자리를 부추킨다. 그런데 이미지는 실체의 부재를 전제한다. 이미지 자체가 이미 부재의 증거다.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한 소소한 대상들을 통해 자신의 취향, 기억을 환기한다. 그 사물을 통해 몽상을 한다. 순간 의도하지 않았던 모호한 생각의 고리들이 마구 이어진다. 그것을 연출한 장면을 만들고 이를 다시 공들여 그린다. 그로인해 저 일상의 무의미해 보이는 사물들이 순간 유의미한 존재가 되어 다가오면서 말을 건넨다. 따라서 그림은 자신에게 다가온 존재를 사진으로 담아두고 그 사진 안에 작은 의자를 컴퓨터작업을 통해 배치한 후 출력, 이를 바탕으로 사실적인 재현을 해 나갔다.  
 “나는 언제나 회화의 재현을 생각할 때 눈과 손이 옮기는 정치한 묘사력은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 대상과 이미지를 응시하는 개인적인 취향을 바탕으로 어떻게 각색되고 연출되었는가에 재현의 의미를 두고 싶었다.” (지석철) 

 사전적 의미의 재현은 묘사, 상징, 구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어떤 대상의 현존을 전제로, 그것을 다시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재현이란 단어는 ‘다시 나타나다 혹은 다시 보여주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재현은 표상이기도 하다. 주체와 대상 사이의 지울 수 없는 거리를 상정한 후, 주체가 대상에 대해 갖는 인식이 다름 아닌 ‘표상’이다. 그러니까 재현이란 ‘이미 있는 것을 다시 있게 하는 것이고 보았던 것을 다시 보여주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것은 존재하는 대상을 연상하게 하고 추측하게 해준다. 즉 재현이라는 말에는 현상에 대한 부정, 그리고 현상 뒤의 어떤 실체나 본질에 대한 믿음이 내포되어 있다. 더불어 그것은 항상 부재를 환기하는 안타까운 상실감의 정서를 간직하면서 진행된다. 지석철에게 재현이란 단지 눈앞에 자리한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 그 자체로 귀결되는 차원이 아니라 그렇게 재현된 존재들로 인해 환기되는 정서나 느낌의 고양에 있다. 주어진 대상의 즉물적인 묘사 너머의 무엇인가를 환기시키는 작업이란 얘기다. 그러니 다분히 관념성이 강한 그림이다. 결국 취향이란 그가 태어나고 살던 고향의 원초적 체험과 그로부터 배태된 경험에서 자유롭기 힘들고 이후 체득된 미술교육이 또한 그렇다. 서정성이 감도는 이 같은 연출은 지석철 개인의 취향이고 정서이자 동시에 그 세대 작가들의 공유성이기도 하다. 지석철의 경우 고향 마산에 대한 추억, 70년대 서구미술의 강력한 영향(미니멀리즘), 한편으로는 아카데믹한 미술교육(입시)를 통해 습득된 뛰어난 소묘력 등이 결합되어 이룬 그림이 ‘미니멀적인 극사실’과 ‘모노톤의 재현회화’로 스타일화 되었고 그 안에 고독이나 상실, 부재 등의 심리적 상흔을 삽입한 것이다. 일루젼이라는 구상적 이미지와 평면이라는 추상회화의 전제를 모두 사실이라는 개념 속에 포용하고 있는 것의 당시 극사실주의인데 그 위에 지석철은 자신의 취향과 정서의 세계로 변별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의자는 그렇게 해서 호출된 매개이자 그만의 도상(오브제)이다. 그 의자로 인해 촉발되는 부재의 느낌이나 아련한 회상과 추억, 인간 존재가 지닌 근원적인 상실감을 환기하려는 시도가 자신의 취향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덧 지석철 회화의 역사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것이 한 개인의 독자적인 취향과 감정의 세계를 어디까지 밀고 나갈 수 있으며 또한 그만큼 풍부한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문제는 그 역사 앞에 던져진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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