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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격정과 카오스- 이선화의 신작에 관한 노트

김종근



 가장 위대한 색면화가 중 한 사람인 마크 로스코는 현대미술의 추상회화에서 가장 냉혹한 언어로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고 보는 법을 변론 했다. 추상작가인 그가 의외로 '나는 추상주의 화가가 아니다. 나는 그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라며 자신의 작품에 매우 침묵적인 발언을 털어 놓았다. 동시에 그는 관람자와 작품 사이에는 아무것도 놓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쓸데없는 설명이나 해석은 “관람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라고 일갈 했다. 
이선화의 작품들을 보면서 마크 로스코의 발언을 떠올리는 것은 강렬한 원색의 떨리는 흘림과  자유로운 필치들이 그가 추구하는 추상회화의 세계와 이념적으로 맞 닿아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그처럼 구체적 설명이나 사실적 이미지들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이선화 작업은 추상화의 흐름 속에서 두 가지 패턴으로 자신의 언어를 드러낸다. 하나는 흘림과 빠른 필치로 속도감을 주는 기법으로, 굳이 비교를 한다면 샘 프란시스 스타일 과 색면을 사용하면서 사물의 형태 보다 내면 감정의 느낌들을 색점의 붓질로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작가가 기본적으로는 추상의 울타리를 넘나들지만 이 두 가지 영역을 교차하면서 보여주는 것은 어느 한곳에 머물기 보다는 화면에서 표현의 자유를 즐긴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연출”이라고 말하지만 고의적으로 의도된 연출이 존재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그러기에 그의 회화에 색채는 때로 자유분방하고 화가의 의식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 자체로서 절대적이다. <챠크라>가 그렇고 <영성> <신성>의 구성과 감정이 그렇다.


 그들은 어떤 질서에 의한 것이기 보다 뜨거운 내면의 열정에서 분출 되는 형상과 태도에 훨씬 근접해 있다. 
특이한 점은 그러한 패턴과 흐름들이 매우 유희스런 형태를 취하면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눈치 챌 정도로 색들이 카오스의 세계를 이룬다. 예를들면 절제와 격정이 <치유의 바람>이란 작품에서 강하게 몰아치고 있다면 <기억속의 풍경 >에서는 절제를 뒤 덮는 아스라한 비정형의 풍경이 자유로운 격정과 감성으로 화면을 지배한다. 어쩌면 추상의 예술의지 속에서 꾸미지 않고 가공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감정표현에서 삐져나온 이미지로 형성된다. 그래서 그의 화폭 속에 만들어진 형태는 누구와도 무엇인가도 닮아있지 않다. 얼핏보면 화폭속에는 어떤 이미지의 몽상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질서속에 형태가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풍경이거나 우주의 모습을 내비친다. 그녀는 종종 자신의 격한 감정으로  화면의 용암 같은 분출을 꿈 꾸고 있다. 그 뜨겁고 자유로운 꿈 꿀 권리를 작가는 <명상>이라고 했고, 그 명상의 끝, 시간과 공간 안에서 그의 내밀한 작품들이 진주처럼 탄생 한다.


이런 다소 형이상학적인 작업태도와 주관적인 영토에 머물러 있기에 작가는 자신의 작품 감상법을 상세하게 안내한다.
 “예술가는 대상을 표현하려고 느끼며.... 감상자는 그 느낌자체를 위해서 느낍니다. 그러니 예술품을 보면 느끼십시오. 머리를 사용하지 말고 가슴을 사용하십시오.”라고. 물론 우리는 그의 가이드처럼 감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슴과 지식으로 함께 보려 하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들 대부분이 뜨거운 색채의 들끓음 만큼 함께 공감하며, 수도자의 그림 작업처럼 수행 속에 피와 땀으로 피어나는 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공유한다. 그래서 이선화의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의 그림은 격정의 분출이지만, 명상의 결정체로 우리들을 힐링하고 카타르시스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면서 새로운 체험에 도달하게 된다. 그 숭고한 체험을 위해서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놓쳐서 안 되는 몇가지 팁들이 있다.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붓질과 그와 일체를 이루는 순간이고, 붓과 색채가 만나는 순간, 그 순간 작가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뜨거운 온도가 얼마이며 그것이 어디로 흐르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단 가슴으로 말이다. 이러한 형식은 분명 그와 감상자가 화폭 속에서 만나는 흥미로운 경험이자 경이로운 체험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무아지경, 물아일체, 합일.. 아마도 이런 순간이 내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세계”라고 정의 한 것을 기억한다. 외할아버지 옆에서 그림 그리는 걸 보면서 화가의 꿈을 키운 작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화가 외에는 어떠한 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그는 이런 의지와 철학으로 사람들에게 생명력과  울림이 있는 감동을 주는 작가를 간절하게 희망했다. 이제 현대 회화는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이선화가 재현적인 것보다 인간 본연의 선험적인 감정에 호소하는 철학적 명상적 색채와 뜨거움으로 뉴 이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서는 가장 큰 이유이다. 
풀어 헤친 듯 물감이 덩어리가 되고 흔들리듯 모였다 흩어지는 붓질과 물감들이 교차하는 색면과 경계 속에서 그녀의 캔버스는 절망에서 환희로 감성과 냉정의 지평을 지나면서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 물결을 이루고 화폭에서 풍랑을 일으킨다. 


우리들은 이것을 보아야 하고 느껴야 한다. 마침내 이선화의 작품은 로스코가 말한 것처럼 모든 작품은 그 자체 스스로가 방어한다는 명제를 작품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명상 속에서 태어나고 무아지경에서 빛을 발하는 인간의 가장 은밀한 울컥함이 빚어내는 그리고 그 감정들이 가라앉아 평화가 드리우는 미지의 땅, 그것이 이선화가 도달하고 싶은 마지막 기착지이자 꿈꾸는 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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