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폭풍, 제주의 사모곡

김종근



 그녀의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 우선 그녀는 지금도 서울에 살고 있지 않으며 이미 한국을 떠난지 올해로 30여년. 그 오랜 시간을 파리에서 체류하며 구준히 작업을 발표 해왔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1984년 한국을 떠나 프랑스의 디종 국립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파리-세르지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작가는 1990년부터 2015년 현재 작업에 이르기 까지 거의 25년 작업을 보통 화가들이 조심그러워하는 검은색과 흰색을 중심으로 독창성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에머슨이 “회화는 말없는 시라고 불리었고 시는 말하는 회화”라고 한것처럼 감정을 흑과 백으로 응축시켜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왜 그녀는 무수히 많은 색채를 두고 블랙과 화이트에 집중적으로 현재까지 자신의 색채를 던져 놓았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녀의 어린 시절의 각인 된 풍경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후 그녀의 유학시절은 그녀가 다른 무엇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림을 떠나서는 어떠한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던 것이 또 다른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파리 시절의 긴박하고 강렬한 순간이 그의 내면을 온통 지배하고 넘쳤던 것으로 추정 된다. 그녀가 화가의 꿈을 가지면서 아름다운 섬 , 고향 제주를 떠나 그녀가 도달한 파리의 그리움 속에는 중문의 물소리 포말 같은 파도와 중문 해안의 어두운 밤바다의 풍경을 결코 잊을 수 가 없었을 것이다.  


 그 시절 작가는 “10년 동안 이따금 새벽 5시 6시까지 미친 듯이 작업에 매달렸던 것 같다. 마치 그림을 위해 죽기를 원했던 것처럼.” 이 의미 심장한 몇 구절이 당시 그의 참을 수 없는 예술창작의 몰입 했던순간 들임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그의 고향 제주를 향한 끝없는 영혼의 몸놀림이자 춤사위 이다. 초기 그의 작품들은 1991년에서 출발 한다. 그녀가 스스로 분출의 시기로 불리는 ,깨어지고 부서지고 숫구치고 ,폭발하는 그 격렬함이 화폭과 만나는 앵포르멜적 서정성이 그 때이다. 그로부터 4년후 1995년 그녀는 또 다른 시기의 변화와 전환을 보여주는데 흑백으로 명상적 세계의 분출을 암시하는 이미지들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형상들이다. 


 곧 돌아온다며 어머니의 모습을 뒤로 하고 떠난 고향 제주 , 그녀에게 파리에서의 유학은 불효처럼 그리움과 외로움의 시간들이었다. 어머니의 운명을 보지 못한 자식의 한스러운 심경은 천번의 용서를 비는 딸의 찢어지는 가슴이 되었고 그것은 그대로 천개의 효심어린 마음으로 일어나 그림으로 탄생되었다. 그것은 어머니를 끝까지 홀로 보낸 회한의 눈물이었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예술가의 사모곡, 바로 절창 그것이었다. 이 시기 이후에 인간의 번뇌를 상징하는 108점의 작품과 그 숫자는 그 고통과 번뇌의 깊이가 어떠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10년으로 접어들면서  그녀의 화풍은 기법과 구성에서 더욱 단순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인다. 폭풍과 터뜨림은 평정 속에서 더욱 절제되고 단일한 형상을 가진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마치 커다란 파도의 한 조각을 떠낸 듯 한 작품은 점진적으로 철학적 사유의 단계를 거치면서 마치 이슬람 수도승의 회전하는 춤에 영감 받은 만다라적인 세계의 형상화로 승화되었다.  
   
 이러한 그 순간을 가장 가까웠던 프랑스의 피가로신문 기자이자 평론가인 미쉘 누리자니는 “단 한 번의 단호한 몸짓으로 서둘러 내던진 듯한 물감의 흐름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놀랄 때, 그는 이 간단하고 단순해 보이는 작품을 하는데 석달이 걸렸다고 말하는 순간들을 기억하고 회상한다. 그녀가 그리는 이 휘두름의 흔적이 그리 간단하거나 쉽지 않다”고 평가 했다. 이처럼 그의 회화는 마치 설원에 놓여진 헝클어진 발자국처럼 새하얀 화폭에 떨림으로 펼쳐진 알 수 없는 풍경 혹은 오래 사색하고 명상한 후 일어나는 해일 같은 존재였음을 확인시켜준다. 해일처럼 붓을 대는 그 순간, 붓을 떼는 그 순간에도,그의 그림 어디에도 용암 같은 뜨거움의 멈춤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마찬가지로 미련과 뒤돌아봄도 없다. 오로지 그의 그림에는 내면의 끓어오르는 열정과 폭발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그녀에게는 망설이지 않는 확신에 찬 제스쳐, 그 검은 물감들이 춤추는 역동적인 제스쳐는 그대로 그의 삶의 절대적 고독과 외로움의 언어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으로 표상되었다.  


 특히 그녀의 작업에서 깊이 묻어나는 동양적 감성 ,즉 검정색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 고독과 색면을 일필휘지로 통제하고 제어하는 기술은 우리 심장을 분명 얼어붙게 하거나 긴장 시킨다. 이처럼 원수열의 회화는 거칠게 몰아가는 붓 놀림속에서 흰 컬러와 검정물감이 얽히면서 하모니를 반복적으로 만들어 냄으로서 우리를 공간 안에서 떨리게 한다. 
그것들은 마치 하나의 제스처를 드러낸 일종의 싸이클 드리핑(dripping) 그 자체이자 전부이다. 그에게 그린다는 것은 이렇게 감정을 토해내는 것과 동일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 행위이다. 이것이 잭슨 폴락의 행위예술과 같으면서 다른 원수열의 독창성이다. 이는 진정한 제스쳐의 표출이라기 보다 제스쳐의 모방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형식으로 충분히 훌륭한 예술세계를 이룩한 세계적인 화가들을 잘 알고 있다. 그와는 다른 형태의 언어로 화면을 만들어 낸 블랙 페인팅의 한스 아르퉁, 피에르 쑬라쥬도 떠오른다. 


 일찍이 추상적 표현에서 시작하여 타시슴 회화의 선구자로 꼽힌 아르퉁의 화폭에는 다이내믹한 선의 움직임과 리드미컬한 구성으로 추상회화의 거장이 되었다. 원수열의 회화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읽혀지고 그 맥락 속에 놓여있다. 원수열의 몸짓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액션 페인팅도 아닌 원초적 인간 행위의 감정 표출로 그 언어가 구체적 묘사가 아니라 추상적 감정이입으로 그녀의 그림은 본질적인 인간에 대한 더 구체적인 개입 행위이다. 그렇다고 무감성적으로 무절제하게 추상 표현주의적인 감성에만 묶여 있지 않음 또한 흥미로운 사실이다. 철저하게 그리고 거침없이 펼쳐낸 공간의 구성과 배열, 그녀의 회화는 실상 매우 묵시적이고 억제 되어 있다. 그 폭발적 감정의 끝없는 소용돌이 속에 우리가 함께 휩쓸려 우리들을 그의 화면 속에 자꾸 중독되게 한다. 이러함 감정의 전달이 가능한 것은 그녀가 고향에 대한 애틋한 심장으로 부르는 노래 ,연가(戀歌)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그에 관한 많은 평문을 썼던 미쉘 누리자니는 그의 작업실에서 “이 특이한 예술가의 엄청난 힘 앞에 여유있는 자세의 눈부시고 새로운 능력, 거대한 화폭들, 펼쳐진 백색 속에 조용하지만 확실한 자신감을 가지고 휘두른 힘찬 붓질, 나는 훌륭한 솜씨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고 고백 했다. 그렇다. 원수열의 작업은 빠른 스피드와 다이내믹함으로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마치 붓글씨를 쓰듯 폭풍처럼 뜨거움을 토해낸다. 갑자기 정지하는 폭풍 같은 지상에서 다시 볼 수 없는 그 지진 같은 폭발적인 역동성이 증거이다. 


 명백하게 작가가 시리즈로 제작하는 그 원형의 춤사위와 자유로운 형식이 어떤 감동을 줄것인가는 왜 검정과 흰색 이어야 하는가처럼 불 투명하기도 하지만 아주 분명한 것은 그 색채와 형상이 그녀의 고향 제주도의 해안절벽과 흰 파도와 돌들의 색채와 동일한 연상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래서 나는 미쉘 누리자니가 그를 이해하기 위해 언급했던 ‘예술가는 미지의 세계로 전진하면서 모든 이론을 무색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파울 클레의 명언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것은 원수열의 작품에 대한 가장 탁월한 해석이며 그녀만을 위해 존재하는 언어이다. 그녀는 이 모든 30여년의 숨소리를 바로 그의 고향 제주에 대한 끝없는 노래로 풀어낸다. 당연히 그 노래는 마치 연어가 다시 그를 낳아준 고향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몸짓, 그 폭풍 같은 사무치는 격정과 그리움의 축제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