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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는 말한다 – 지석철의 ‘상황’ 그리고 의자가 된 나

김종근

의자는 말한다 – 지석철의 ‘상황’ 그리고 의자가 된 나 

김종근(미술평론가) 


작품은 과연 작가인가. 아닐수도 있다 . 그러나 적어도 지석철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몇가지의 피할 수 없는 선입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 
그는 바닷가가 있는 마산 출신이다 . 그리고 그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 부터 뛰어난 묘사력을 가진 타고난 화가 지망생 이었다 . 
그는 예술이 예술로 남아 있는 것보다는 인간 삶에서 그 무엇을 바라보는 ‘그 무엇’ 이 되길 갈망했다 .     

1. 의자는 상황이다 -쿠션의 시대   

1978년은 지석철의 예술행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 그것은 그가 중앙일보 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해라서기 보다는 오히려 그가 출품한 작품이 그의 예술세계를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훨씬 의미가 깊다 .
이 민전에서의 수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지석철 개인사로 볼 때 그에게 가장 큰 영광과 명성을 가져다 준 훈장 같은 것 이었다.
그 이후 그는 오늘에 이르기 까지 어쩌면 단 한 순간도 그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 . 이런 류의 작품으로 그의 예술적 세계관을 열어갔고, 순간순간 전환점에서 그는 투박하고 소박한 의자를 가지고 빛나는 <의자의 시대>를 만들었다 .
쿠션도 그림이 될 수 있다고 믿게 한 사람이 있다면 이는 지석철이다 그래서 쿠션은 지석철의 또 다른 별명으로 부를 수 있는 상징적 용어이다. 
1978년 . 그는 소파에 한 부분을 ‘반작용’이란 제목으로 리얼하게 묘사했다 .이 작품은 당시에 새로운 회화의 분위기를 꿈꾸고 있던 젊은 작가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반향을 일으켰다 . 
특히 그 충격이란 그의 탁월한 묘사력에 대한 경탄이자 놀라움 때문이기도 했다. 
이미 1965년에서 70년 뉴욕과 켈리포니아를 휩쓴 하이퍼 리얼리즘에 어느 정도 익숙 해 있었건만 지석철의 이 소파의 단추 풍경은 신선 했다 . 
사람들은 감쪽같이 그려낼 수 있는 그의 탁월한 표현력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오히려 그가 소파에서 보여 주었던 그 상황에 대한 이미지의 날카로운 포착에 더 눈길을 주고 싶었다 . 
지금은 헐려 없어진 홍대 앞 유정다방에서 그가 비스듬히 누워 바라다 본 소파의 표정은 정말 팽팽하게 잘 당겨져 있는, 그러나 너무 당겨져 한쪽이 그만 찢겨져 버린 단추. 그 순간을 지석철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
왜 ? 그는 이미 그 때 눈에 보이는 것이면 모두 똑 같이 베껴 낼 수 있었고 똑같이 그려냈는가.
소위 눈속임이란 트롱포르네이유(Trompe–l'oeil ) 라는 미술이 충분하게 가능 했기 때문이다.
한 동안 그의 회화에 시각적 관심은 쿠션을 통하여 온통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그  
기법은 특정 부분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데 올인 했으며, 소파의 모습은 소파를 선택한 것 이외 개인적인 감정은 철저히 배제 된 형태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그 소파의 본체인 의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 관심만큼 그의 의자는 이전 의자보다 서서히 보다 진보된 모습으로 전개 시켰다.
그래서 지석철을 이야기 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음 두가지를 들여다 봐야 한다 . 
하나는 그가 소위 ‘쿠션’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던 그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그가 진정 집중 했던 부분은 무엇 이었나이며, 또 하나는 그가 작품 세계를 의자로 확대한 1980년대를 지나며 그 자신의 관점을 보다 큰 의미로 확산 시켰던 의자의 본질은 무엇인가이다 .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그의 쿠션은 쿠션에 불과 할 뿐이다 . 그러나 78년도의 그의 작품 종이 위에 색년필로 그린 반작용의 작품을 다시 한번 회상 해 보면 초기 작품에 대한 시각은 ‘반작용’ (Reaction) 즉 쿠션이라는 하이퍼리얼리즘의 화풍과 테크닉에 무게를 두고 있다 .
우리가 지석철의 초기작품을 논할 때 어느 정도 극사실주의 또는 슈퍼 리얼리즘에 빚지고 있었다는 점에 대하여 그 자신도 그다지 거부하는 입장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
테크닉상으로나 당시의 정황으로 보나 그는 하이퍼 리얼리즘의 작가들과 동등한 시류와 관점에서 작업 세계를 연속적으로 이어 왔음은 잘 알려져 있다 .
( 당시 작가들에 대한 이러한 작업은 황인이 ‘형상 1978-84전 ’ 1994년 공간의 글에서 이석주, 한만영, 변종곤, 조상현, 김강용, 주태석, 고영훈, 김홍주 등은 하이퍼리얼리즘을 통하여 한국현대미술에 새로운 세대로서 정착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
그러나 이제 그의 작품에 본질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을 ‘상황’으로 인식 또는 관찰 해야 할 또 다른 렌즈가 필요하다 .
저 빛나는 70년대 후반의 하이퍼 리얼리즘을 가지고 등장한 화가들에게 물었던 ‘ 그들은 무엇을 추구했던 것일까' 라고 물었던 질문을 지석철에게 다시 물어보자는 것이 다 . 
적어도 70년대 말 80년대 무수한 하이퍼 리얼리즘의 작가들이 현대미술의 급류에 휩쓸려 집합과 해산을 반복할 때도 지석철은 쿠션의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 . 
어쩌면 떠날 수 없었는지 모른다. 적어도 그는 예술이란 것이 스스로를 자랑하고  훈계하는 것이 아니며 , 작가가 표현 해 낼수 있는 모든 것을 이것저것 다 해보는 탤런트가 아니라는 것을 익히 숙지하고 있었다 .
그가 쿠션에 매달려 소파나 단추가 보여주는 긴장감을 팽팽하게 그려낼 때 그는  오히려 화가의 입장이 아니라 마치 극적인 드라마 시츄에이션의 한 연출자로 전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놓여진 상황을 연출하고 기획하는 프로듀서.
  

3. 의자는 그의 존재의 오브제이다

80년대 초 구체적으로는 82년 그는 소파에서 서서히 의자에로 그의 시점이 이동했다. 그의 변화는 제목 그 자체가 강조하듯이 ‘이미지로 부터 실제 공간’에로 라는 화두를 가지고 의자가 실제공간에 출현하는 직접적인 오브제의 출현을 예고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 거대한 의자는 그에게 적합한 미술에 오브제가 될 수 없었다 .  그러고 보면 그의 오브제 시대에서 간과 할 수 없는 미니 의자의 출현은 그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처럼 판단 된다 . 
그가 미니의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의 의자 설치는 단순히 미니 의자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 의자와 동일하게 나열되거나 비교 되는 이미지가 충실하게 대체된 오브제 였다 .   
1984년에 그로리치 화랑에서 보여준 설치 작업은 그 정리된 세계관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낸 시기였다.
석남미술상 수상 기념전으로 열린 설치작업은 그에게 시각의 확산 뿐만 아니라 평면에 대한 도전이란 전의를 안겨다 주었다 .  
그러나 그에게 있어 미니의자는 여전히 하나의 상황을 연출하고 분위기를 조성, 제어하는 탁월한 오브제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미니의자는 독립적인 하나의 의자로 이불이나 방석위에 가지런히 놓여지기면서 작은 의자들은 모이기 시작했다.
어떤 애들은 정말 쓸쓸하게 화면 아래에 모여 있기도 하고, 떼를 지어 군집의 형태로 화면에 일렬종대로 등장 했다.
반복과 나열이 주는 힘의 매력. 규모와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 등은 그에 기억과 추억의 공간 어디에서든 되살아났다 .   
그러나 그의 의자는 외로워 보였다.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누군가 와서 앉아야 될 의자 이건만 여전히 지석철의 의자는 한 없이 허전한 주인이 없는 빈 의자였다 .
1986년을 전후한 ‘어느 부재의 사연 ’이란 테마로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그 상황설정에서 이전 보다 서술적이며 감상적인 분위기로 빈 공간에 의자로 존재하고 있었다 , 
‘밀물 썰물들의 그대 들이여’ 에서 보여지는 니스 바닷가의 풍경은 그런 당시의 감정과 그의 고향 바닷가를 떠올리는 가장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 
지석철은 이 감정적인 향수를 때로는 고독한 분위기를 연출 할 때에는 기꺼이 가서 고독한 의자가 되기도 하고, 집단으로 가서 차례대로 서있거나 . 한꺼번에 쏟아져 놓여진 의자가 되기도 하였다 .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에서는 유년의 체험과 추억을 불러내어 자신을 회상케하는 의자가 되기도 했다 .
그로리치 화랑에 작품전은 그의 의식의 변모를 입체적인 관점에서 정립한 전시로 기록 된다 . 
개인전에 선보였던  'Installation View'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쿠션과 의자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었는지를 명확하게 뒤집어 보였다 .
내가 추구한 것은 이것이다. 거기에서 지석철은 초기 쿠션과 미니의자를 대질 시키고 있었다 . 
‘보아라 쿠션과 의자는 이것이다 ’라고 그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거나 발언을 남기지 않았다 . 
그러나 거기서 작가는 초기 쿠션에 있던 자신과 의자로 변화 해가고 있는 불가피성과 조우를 통하여 서로의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고 있었다. 
커다란 의자. 잘 만들어진 의자 .작은 나무 의자 등등등 

4. 의자는 세상을 보는 눈이다 
이제 우리는 지석철에게 있어 도대체 의자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물어 볼 차례이다.
그러나 사실 그에게 의자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을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않는다 .  이미 그는 의자가 의미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의자는 그 자신임을 도처에서 지시하며 드러냈다.  
예를들면 하나의 커다란 의자가 있고 또 다른 곳, 대치하는 공간에 무수하게 놓여져 있는 의자를 보자.
그가 동일한 의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과 때로 그는 의자가 되고 싶지 않은 자신을 드러내는 습관으로 시멘트 조각을 끌어 들이거나 그 위에 의자를 놓아 특별화 시킨다 . 
화면 중앙에 위치한 대형 의자. 그리고 그 아래 무수히 일렬종대로 놓여 있는 미니의자들의 행진과 시위. 
이 모든 의자는 물론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의자인 척 하는 것 아니면 나를 설명하기 위해 연출 장치 해놓은 의자들에 불과하다 .
지석철이 빈번하게 반복적으로 의자를 나열한다고 해서 팝 아티스트들이 이미지를 나열하는 것과 동일 한 맥락에 서 있지는 않다 . 
이전 단계나 현단계나 의자는 명백하게 하나의 이미지의 대응물로서 오브제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현재의 나열된 의자가 그냥 하나의 일상적인 사물처럼 있지만 똑 같이 존재의 의미를 가진 의자이다 . 
이 의자가 무엇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우리는 미술의 역사상에서 수 없이 많이 놓인 의자를 만나왔다 .
한 예술가의 고뇌가 고통처럼 묻어나는 고흐의 의자가 있는가 하면, 인간존재의 격렬한 몸짓 자체인 프란시스 베이컨의 의자가 있다 . 
뿐만 아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재현된 복제로서 해석된 의자가 있는가 하면 조성묵의 완전한 형태로서의 의자도 있다. 
그러나 지석철의 의자는 더 이상 그런 의자가 아니다 . 거대한 하나의 의자와 익명의 군집 의자가 같이 공존하고 있는 철학적 대상으로서의 의자이다.
어느 평자가 그의 작품에서 쌰르트르나 까뮈의 냄새를 느끼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 다수의 의자는 다수의 군중일 수도 있고 , 하나의 의자는 불특정한 다수와 대립하고 있는 자기 자신인 화가 일 수도 있다 . 
어쩌면 지석철은 인간으로서 존재론적 상황을 드러내고자 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그런 지석철의 작가적 태도가 호감이 간다 . 
예를들면 그의 이런 타자와의 관계를 회화속에  일관되게 구체화 시키다든가 , 그것을 하나의 인물로 치환시키는 보다 성숙한 회화적 장치들을 화폭속에 끌어들이는 기술 말이다 .
그 장치들은 어느 특정한 공간을 가리지 않고 학교 교실 아니면 바닷가 .길다란 철판 위. 마치 우리가 가지는 상황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듯이 말이다. 
하나 지석철에게는 아주 특별한 버릇이 하나 눈에 뛴다 .

지나간 그의 그림을 가끔 뒤돌아 본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는 지나간 작품에 아쉬움이 있으면 다시 돌아가 불러 세우거나 어떤 것은 다시 붙들고 늘어진다 . 
그가 1987년을 전후하여 제작한 ‘어느 부재의 사연’ 이라고 밝힌 시리즈의 작품들은 10여년이 지난 다음에 다시 그의 회화에 약간 변형된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지나간 것을 반추한다는 것이다. 이 방법이 그의 회화에 어떻게 작용할까 속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완벽함을 위한 재현인지 아니면 습관적인 반작용인지를 구별 할 필요는 있다. 그의 회고적 투의 그림은 보다 세련 된 형태의 무늬를 가지고 나타난다는 점에서 우리를 안심 시키지만 그가 지향하고 세계관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 해 볼 여지도 있다  . 
최근 그에게 있어 주요한 변화로 불려질 만한 것은 가슴과 이성으로 만든 이미지 보다 손이 만들어 내는 회화를 복구 하려는 듯한 변화이다 .
그는 가끔 배경에서 그 단조로움과 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성을 추구한다 .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진정한 세계관으로 가는 악세사리에 불과하다 .
결국 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을 이야기 하기 위해 사람을 이야기 한다 . 화가는 사람을 말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 그러나 지석철은 사람들을 말하기 위해 의자를 말한다 . 이것이  바로 그가 의자이고 예술가인 까닭이다.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하나의 분명한 의미라면 이것은 의자가 지석철 자신과 완벽하게 아이텐티티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1997년 초기 작품 이후 그의 작품에 펼쳐지는 의자에 대해 이렇게 고백 한적이 있다 . 
“작품속에 등장하는 절대 한 미니의자의 영상은 각박한 현대생활속에 지친 인간사의 모든 문제에 은유된 의자들의 몰골이며 미미한 인간의 존재처럼 작고 텅비어 있으며 앉을수도 없다 , 이것이 주는 심리적 충격은 곧 고독과 괴로움이다” .  
언듯 보기에 지석철은 차가운 이미지와 오로지 사물의 물성을 주장한 듯 이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작가로 보인다 .
또 그가 단일한 또는 종종 인용된 사물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그의 회화를 오늘날까지 이끌고 왔음을 상기한다면 그의 이 자전적인 심경은 감추어진 그의 첫사랑을 고백하듯 애틋하고 감성적이다 ,  

5-시인같은 지석철의 눈

그의 회화는 오래 보면 볼수록 오히려 비회화적 분위기를 풍긴다 . 차가운 소파의 단추에서 부터 하나의 오브제로 옮겨 가면서 그것이 하나의 인간 존재의 자리를 드러내기 까지 그의 회화적 흐름은 하나의 문학 , 의자를 주제로 한 연작 詩로 다가오고 읽혀진다 . 사물을 날카롭게 묘사하며 동시에 놓여져 있는 상황만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구체시, 어떤 장면에서는 화자의 감정을 감추고 의자에 자신을 감정 이입 시키는 은유시 또는 대중과 맞닥뜨려 있는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감정을 담담히 풀어놓은 서정시 .     
사실은 이런 것이 인간 지석철의 참 모습일 것이다.
이제 그의 의자는 자신의 언어나 감정을 담아내는 하나의 오브제가 아니라 하나의 또 다른 자아로 완벽하게 구체화 되고 형상화 되어 나타난다 . 
우리는 ‘어느 부재의 사연’이 있는 연작에서 지석철의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돌이 되어 있는 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연민을 품는다. 
특히 그의 아틀리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만난 상처 난 바로 그 시멘트 조각을 기억하고 본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그렇게 강렬하게 나타난 작가의 감정 그대로를 우리가  썰물처럼 가슴에 밀려옴을 느낄 수 있다 . 
그만큼 의자는 강렬한 상황 설정이 빚어내는 내면에 들어가 마침내 의미 있는 형식의 무엇이 되는 구조적 오브제인 것이다. 
나는 이제 그의 의자가 이전의 제한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훨씬 상상력의 구름을 타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제치고 상황을 제시하는 긴장의 의자로 변모 해 가는 점에 큰 기대를 두고 있다 .
왜냐하면 그것은 그의 기존의 의자가 보다 깊이 있는 세계로 나아가면서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하며 그 의미와 정신이 깊어지고 거대해 지기 때문이다 .
마침내 그 때 우리는 그의 의자에서 마치 쟈코메티가 고뇌 했던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비극적 감정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약 그의 작품을 주의 깊게 판독 한다면, 그의 회화에 문법을 읽어 낸다면 경탄의 세계를 감지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미 모든 것이 규정되고 제한된 의자의 이미지가 한 방향으로 구속되는 것을 거부한 쿠션의 단추가 완벽한 하나의 배꼽과 동일하게 취급되며, 의자는 ‘영웅이 지나간 자리’를 설명하는 덧없는 권력 같은 상징성을 암시하는 도구가 되는 상상력의 힘 같은 느낌을 말이다. 
오래전 그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명료하게 진술한 작가노트를 들춰보자 .
‘ 일련의 의자를 모티브로 한 나의 작업은 철저한 사실에 기초를 둔 연상의 이미지로부터 오브제에로의 진행. 그리고 입체 체험이 복합적으로 변주된 개념적 이미지에로의 이행이라 할 수 있다 ’ 
그러나 아직 지석철의 발언은 끝나지 않았으며 계속 되어야 한다 .
피할 수 없이 예술은 더 강력하게 궁극적으로 자아를 찾기 위한 하나의 끝없는 자신과의 전쟁이며 분명 그의 회화가 우리 미술의 거대한 흐름중 어느 지점에 자리 할것은 분명하다 . 그러나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가야 하는 길은 애초에 주어지거나 이미 있었던 길은 아니다 . 아니 어쩌면 그 예술에 있어 길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길은 이미 있다라고 믿는 그 순간 부터 길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 
예술가란 한계의 거부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현대화가 드고 텍스 (Degotex )가 예술에 대하여 ‘ 아무것도 정의 될 수 없으며 , 회화작업을 시작하기 전 , 아무것도 말할수 없다' 고 한것은 그의 회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 그리고 그림을 보는 우리들을 위한 잠언 인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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