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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고 사색하는 경건한 화폭 – 김정숙의 <커뮤니케이션>

김종근

침묵하고 사색하는 경건한 화폭 – 김정숙의 <커뮤니케이션> 

정교하게 다듬어진 화면에 붉은 색 그리고 푸른색 때로는 검은색 ,흰색, 그 위에 서로 부딪치지 않은채 기하학적 형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또 다른 작품에는 캔버스 공간에 끈으로 촘촘하게 엮은 붉은 색의 화폭이 있고 그 이웃해서는 색면 형태의 도드라진 삼각형 ,사각형이 있다.  
보는 순간 <커뮤니케이션> 연작으로 재작 된 이 시리즈의 이 작품들은 의외로 가슴 깊이 훅 파고들며 무엇인가 남기며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독특하고 심플한 그러면서도 균일한 패턴과 형식의 추상성이 확연하게 다가온다.
이것이 무엇이지? 
그 강인한 흡입력의 이유는 아마도 간결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전해주는 명상의 묵시적 메시지 때문으로 보인다.
그 흡인력에 비밀의 열쇠를 미국의 미술평론가 로버트 모건은 그의 작품을 보면서 '뉴욕의 색면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를 연상시킨다'고 묘사한 적이 있다. 그 점에서 로버트 모건의 생각은 옳았다. 
이미 마크 로스코는 “사람들이 내 그림을 대할 때 울음을 터뜨린다는 사실은 내가 인간의 기본 감정과 소통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예술에 관한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간파했고, 김정숙도 그러한 흐름 안에서 <소통>의 세계에 동의하고 동행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의 작품은 릴리프처럼 만들어진 요철,그것이 매끈한 평면의 강렬한 원색과 조우,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그의 예술적 영혼에 빠져 들것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이 묵시적인 김정숙의 인상적인 메시지는 결국 그림이란 그것을 보는 사람과 교감함으로써 존재하며, 거기에 예술작품의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제시한다.
또한 모든 예술은 궁극적으로는 그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에 의해 마지막 의미 있는 작품으로 확장, 성장 된다는 진실을 김정숙은 작품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20세기 현대미술에 있어서 최고의 변혁은 바로 구상미술에서 탈출하여 새롭게 등장한 추상미술로의 진행인 것이다.
단순하게 미술이 눈에 보이는 사물의 모습이나 형상을 따르기를 포기하고 점, 선, 면, 색채의 조형요소 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미술작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 추상미술이고 김정숙의 실체적 미술언어이다.
그가 작품 표면에 쓰는 모든 조형적 요소와 도구들은 모두 이 추상미술의 특징을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다. 
일찍이 그림이란 “화가의 영혼과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영혼을 잇는 다리”(들라크루아)라 한것은 작가는 보는 사람의 추상이해에 다리를 놓고 어느 정도 그들의 시선에 의지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김정숙에게 특별한 것은 이러한 추상의 개념 속에 다분히 동양적 관점의 사상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화면에 전혀 수다스럽지 않은 침묵적인 태도와 방법, 표현 등에서 내밀하게 드러나는데 작가는 종종 인터뷰에서 도덕경에 관련된 '숨겨진 것은 드러나 있고 드러난 것 또한 숨겨져 있다'는 구절을 언급한바 있다.
예술가는 최소한의 감정이나 마음의 상태, 기분, 혹은 존재의 방식을 드러내야지 특정 풍경이나 물체를 드러내도록 의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중심적인 세계관임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화면에 강도를 가진 한지의 표면 위에 먹과 아크릴 물감으로, 캔버스 위에 다양한 텍스츄어로 표면을 두는 이유도 조형성과 원색의 색채 조화가 내면 표출의 목적지임을 뒷받침 한다.

작가는 오랫동안 <자연의 소리>에서 자연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이를 표현의 소재와 방향으로 일관되게 작업해 왔다.
이에 관련된 “소리”가 그의 작품 세계의 근본을 형성한 것이다. 그래서 그 소리는 생각해보면 현재의 <소통>언어의 뿌리이자 바탕인 것이다. 작가는 내면의 소리 ,그 울림을 색채로 형태로 이 현상을 구체화시키고 싶어했다.
어쩌면 이것은 자연을 향한 예술가의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욕망의 표현에 해당한다. 
이제 그녀는 이러한 메시지를 타자들과 ,감상자들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김정숙이 화면 속에서 지시하던 사물이나 형상들 나무, 식물, 구름, 동물, 수풀, 산들은 타자와의 소통을 위한 훌륭한 도구에 자너자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김정숙의 작품들은 철학적으로는 자연의 본질에 주목하며 시각적으로는 표현의 소재와 방향을 자연, 그 소리에 두는 구조와 체계를 가지고 있다.
통속적인 미적 가치가 아닌 사유하는 자세만이 공유 할 수 있는 그런 깊고 그윽한 내면의 울림을 소통 하겠다는 것이다.
아주 분명한 것은 김정숙 작가는 단순함 만이 최고의 가치이자 아름다움이란 것을 너무나 현명하게 그리고 명료하게 작품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소통의 유일한 통로도 확실하다 . 여기에 회화는 그에게 최고의 소통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내 예술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살아서 숨 쉰다”라고 했던 마크 로스코처럼 자연의 외형적 형상을 모방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 표면을 꿰뚫어보는 능력으로 ‘진정한 자연’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선선하는 것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이제 우리는 그의 작품 앞에서 좀 더 경건하게 사색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그의 캔버스에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좌절과 환희에 이르는 모든 감정의 물결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마크 로스코의 화폭처럼 말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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