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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폭풍의 울림 – 김민재 회화의 여운

김종근

난해한 폭풍의 울림 – 김민재 회화의 여운

그녀의 작품을 보면서 잭슨 폴락이 생각났다. 페인트를 붓고 물감을 떨어뜨리는 것이 예술적 기법일 수도 있으며, 그림 표면에 에나멜 페인트와 모래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폴락은 확신했다.
금세기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전사인 그는 이렇게 가장 다른 작업과 화풍으로 유럽의 현대 작가들과 동등하게 인정받았던 최초의 미국 화가였다. 그가 이렇게 위대한 작가로 성장한 배경에는 멕시코의 벽화가인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와 파블로 피카소, 후안 미로의 작품들에서 따온 모티브들을 자신의 그림에 적용하면서 부터이다. 폴락은 미술에서 전혀 사용한 적이 없는 물감을 떨어뜨리는 일종의 드리핑 기법을 구현한 것이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김민재의 작업은 앵포르멜적인 형상에서 자유로운 이미지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철가루, 모래, 천, 한지 등의 혼합재료를 적절하게 사용한다. 어쩌면 그래서 작가는 폴락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진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그렇게 다듬어진 화면에 긁고 부식되어 거칠어진 흔적과 행위의 반복을 화폭에 겹겹이 쌓아둔다. 그러면서 작가는 물감을 흘리고 붓고 뿌리기를 반복하는 숙련의 시간 속에서 ”무의식 또는 의도적”으로 그려진 형상을 통하여 인간, 사물, 자연 등 존재 속에 감추어진 흔적들을 끄집어 우리에게 건네준다.
 그녀는 이것을 ”축적된 인내의 시간“들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녀는 전적으로 무의식에만 기대지 않는 이성적인 사색을 행위 속에 이입시킨다. 게다가 잘 짜여진 화면에 균질한 질감으로 색채를 입히기 까지 한다. 그의 완성된 화면이 거칠지만 부드럽고 ,투박하지만 정교한 손길이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녀와 폴락의 무의식적인 드리핑 기법과 다른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때로는 과감하게 펼치는 화폭의 색채들은 비록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놓고 물감을 흘리고, 끼얹고, 담금질하는 그 순간들을 통하여 화면에 작가 내면의 열정을 폭풍처럼 쏟아낸다. 그것은 분명 작가의 내면을 통한 조용한 말 걸기이며 우리들을 향한 울림이다. 그것들이 모여 마침내 화면의 밀도와 작가의 격정적인 몸짓이 직접 캔버스에 기록 된다.
폴락이 말한 것처럼 모든 ”그림은 그림만의 독자적인 운명을 갖지만, 최종 작품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예술적인 의지에 좌우 된다“고 했던 것처럼 그녀의 작품들은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의 숨결과 목소리가 화폭에서 밀려온다. <가을 연가 > 같은 화폭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저 혼란스러운 빗금들의 반란처럼 보이지만 가을의 스잔한 정서가 색채와 만나면서 아득하게 우수로 내려앉는다.
작가는 이처럼 캔버스 위에 거친 빗금과 스크래치나 긁기를 통하여 끝없는 긴장감으로 화폭위에 덧입힌다. 물론 <청춘 예찬 > <유년의 초상 > 등은 다분히 드리핑적인 인상을 떠올리는 형식에 다가가 있음을 느끼게 하는 작품도 있다. 
그러나 근래에 접어들면서 그녀의 작품은 좀 더 구체적인 <인물>이나 < 꽃>의 형태를 서서히 회복하면서 자신만의 형상성을 구축하고 있다. <자연 예찬>이나 <무채의 향연>은 그러한 독창적인 색깔을 세련되게 전개 시킨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다. 침착하고 정돈된 컬러가 이미지를 만나면서 우연적인 표현의 효과에서 벗어나 의도적인 메시지를 충실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철저하게 계산된 창작 기술로 내면의 하고 싶은 말들을 하나씩 하나씩 화폭에 농축 시키는 과정을 노출한다. 아마도 이것은 김민재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질서와 형식으로 화폭이  완성 될 것임을 예견케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가가 겹겹이 혹은 층층이 물감을 덧붙이면서 그 안에서 안료들이 우연하게 번지고 퍼지며 만들어내는 
자연스런 하모니는 마치 보링거가 말한 것처럼 미술이 추상과 감정이입의 순간임을 확인 시켜준다.
그러기에 얼핏 보면 여전히 김민재 화폭의 첫 인상은 추상적이고 어지럽고 난해하다고 볼지도 모를 것이다. 아니 난해할 정도로 그 물감과 교차하는 반란하는 선들의 폭풍 속에서 카오스적인 감정을 전해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동시에 우리는 아름다운 색들이 주는 질서와 일정한 형식을 부정하는 그 파격의 어울림이 폭풍이 아니라 고요와 냉정이 담긴 은유임을 눈치 챌 수 있으리라 믿는다.
때로는 미술이라는 언어는 보여주는 형태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역동감을 표현하는 추상 회화에서 진정한 혹은 은밀한 작품의 아름다움을 발견 한다. 마치 마크 로스코의 회화 작품처럼 말이다. 
나는 김민재 작가가 좀 더 일관성이 담겨진 독창적인 언어를 화폭에서 담아내길 기대한다. 행위 보다는 언어가 중요시 된 그림 그리는 방식이 배제 된 물감을 뿌리고 흘리면서 미리 고안되지 않은 이미지 보다는 작가의 이념과 메시지가 돋보이는 그러한 철학적인 태도가 더 깊어졌으면 기대한다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종교적인 엄숙성과 고요한 차원의 상태를 동경한다. 비록 가독성이 억제된 형식의 추상적인 그림이지만 내면의 울림이나 여운은 격렬하고 긴장감이 묻어난다. 그러기에 나는 김민재 작가가 고백한 마지막 에필로그에 격하게 공감한다.
 ”의식 속에는 잊고 지냈던 기억과 시간의 조합을 통하여 남은 생의 행복까지 그려보고자 한다.“ 
그렇다. 모든 예술가는 행복해지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두께를 통하여 사물의 외형보다는 완성된 존재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시간의 자취에 의미부여를 더 하고 싶어 하는 이러한 작업의 정신만으로도 김민재의 예술세계는 충분히 철학적이고 깊이를 지닌 울림과 여운을 준다. 예술이 아름답고 숭고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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