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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 이후 마이 라이프 키친 - 하정우의 그림들

김종근

초상, 이후 마이 라이프 키친 - 하정우의 그림들

 김종근 (미술평론가)
  

하정우는 <국가대표> <추격자> <황해> <신과 함께 > 등으로 널리 알려진 최고의 스타 배우이다.
그러나 배우이기에 그가 10여 회 씩이나 개인전과 많은 국외 그룹전 등에 작품을 발표해도 화가라는 이름보다 오히려 배우로 더 주목받는다.  
그림을 잘 그려도, 또 열심히 그려도 작가이기보다 배우로 먼저 불린다는 점에서 하정우는 많이 억울할 만하다.
차라리 신인 작가 같으면 세, 네 번째 개인전을 가져도 당당한 작가로 대우를 받지만, 여전히 그는 그림을 그리는 스타로 먼저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이러한 불림에 어떠한 이의도, 아무런 억울함도 내색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시선에 침묵한다. 다만 그는 그림을 정말 미친 듯이 그릴뿐이다. 이것이 하정우의 본색이다. 

과연 배우인 그에게 그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에게 물려받은 달란트가 쌀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영화는 쌀로 그 밥을 짓는 것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 다음 남은 것으로 술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솔직한 발언이다. 
그는 배우로서 영화에 몰입하고, 촬영이 끝나면 아니 촬영하는 순간순간 쉬는 시간에도, 무대 세트의 합판에 그릴 이미지를 떠올리며 사진을 찍거나 상상한다.
그는 말한다. “그림은 나의 피와 살이며 내 자식 같은 느낌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느낀 것은 세상에는 아무 의미 없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라고 했다.
그렇다, 그림은 하정우에게 온전히 자연적인 있는 그 자신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아주 값진 행위이다. 
그런 그의 배우 모습과 화가 모습을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종종 작업실을 들러 보며 작품들을 지켜보았다. 
갈 때마다 그의 작업실에 늘어나는 100호가 넘는 대작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화가들 못지않게 많은 작업량에 “혹 누가 대신 그려주나”하고 의심할 정도로 그림에 열정을 보여 주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가 미술대학 출신이 아니고 연극영화과 출신인데 어떻게 처음 붓을 어떻게 잡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그러한 궁금증은 부친이신 탤런트 김용건 씨의 지극한 그림 사랑을 알면 아주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린 시절 오치균, 박대성, 권순철 등을 비롯한 국내의 이름있는 화가들의 작품을 컬렉션하고 교류를 가지면서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림에 대해 친근감을 지녀왔다.
그런 아버지의 그림 컬렉션의 환경에서 성장한 그에게 대학을 졸업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방황하던 어느 날, 그는 초조함에 무언가에 집중할 대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모든 청년이 갖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그때 그는 정말 막연하게 그림을 한 번 그려 봐야겠다는 아주 소박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때가 모든 것이 불안하고 흔들리던 청년의 나이, 스물일곱 살. 그때 그가 붙잡은 것이 바로 그림이었다. 물론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미술 실기 대회서 금상을 타 전시를 할 정도로 약간의 재능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 후 배우가 되고, 그는 외국촬영 중 시간 나면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전시를 보며 더욱 그림에 대해 깊숙하게 눈을 떴다. 
어떤 때는 화가들을 주제로 한 바스키아나 폴락 등 미술영화에 탐닉했고, 그림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동료 배우들이 유명화가들의 화집을 선물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으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지만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얻을 수가 없었다. 정규적으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그에게 미술이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혼자 공부하고 독학했다. 거기서 그는 피카소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는 피카소를 그의 가장 이상적인 영웅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작가가 되기를 내심 강렬하게 열망했다.
또한,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잭슨 폴락이나 낙서 화가 쟝 미쉘 바스키아를 동경했다. 그의 초기 그림들에서 피카소나 바스키아의 영향이 유독 많이 돋보이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였다. 

그뿐 아니라 여행을 하면서 가졌던 감정을 드러낸다든가, 우연히 어떤 잡지에서 만난 사진 이미지, 길 가다 본 인상 깊은 풍경을 보면서 그는 인물들을 설정하고 이미지와 형태의 조합을 통하여 화폭에 풀어냈다. 
피카소나 폴록의 그림을 가끔 번안한 그림들이 있지만, 그는 실제로 수백 장의 그림이 될 만한 모티브의 사진들을 손수 찍어 보관했다.
마침내 그것들은 하나하나의 의미와 사연을 가지며 그것들은 후에 모두 그림으로 다시 화폭에서 부활했다.

예를 들면 한때 주목을 받았던 영화 <황해>를 찍으면서 그는 어김없이 아크릴과 스틱으로 캔버스와 합판 위에 광대들을 모티브로 한 <피에로> 시리즈를 시작한 것이 그러한 배경이 되었다. 
이제 하정우에게 더 이상 그림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취미가 아니라. 미술은 그에게 영혼을 풀어내고 담아내는 하나의 고귀한 의식이자 테라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는 한때 정규적인 미술대학에서 더 공부하기를 강렬하게 희망한 적이 있었다. 또한, 외국에서 레지던시를 하거나 유학을 꿈꾸기도 했다.
단순히 배우라는 이름으로 대충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는 것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런 선입관 없이 그의 작품을 주목할 만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본다.
언젠가 한 전람회에서 하정우의 100호가 넘는 대형의 작품을 본 원로화가 김흥수 화백은 그가 누구인지 그의 작품은 실제 정규교육을 받은 작가 못지않게 뛰어난 재능과 표현력으로 훌륭한 화가가 될 재목이라고 극찬한 적이 있었다.

이번 그가 보여주는 작품들은 그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사색적으로 담아낸 이전과는 다른 독창적인 작품들을 대거 선보인다. 
한때 그는 약 2년 사이에 50여 점에 이르는 광대 시리즈인 “피에로” 연작을 중심으로 전시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인물 시리즈에 흥미를 보인 적이 있었다.
그런 Pierrot 시리즈는 그동안 나무판 위에 오일크레용으로 인물들을 단순화하여 의미 있는 숫자와 좋아하는 노래 제목 등으로 구성한 작품들로 그의 내면에 생각이라는 메시지의 흐름이 오늘에까지 이르는 것을 엿보게 한다. 
우리는 <광대> 시리즈에 보다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잘 알고 있다.
 일찍이 피카소나 샤갈 그리고 조르쥬 루오, 배르나르 뷔페 등은 이 <삐에로> Pierrot 테마에 열광한 적이 있었다. 
삐에로는 일단 희가극에 등장하는 익살꾼으로 극 중에서 감정을 위장하여 때로는 시대의 비판을, 때로는 비극적인 입장에서 현대인의 감정을 대변하는 시대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루오는 이렇게 기록했다. “광대는 바로 나였고, 우리 모두였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광대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엔 우울함과 아픔이나 고통 그리고 숭고함이 묻어나지만 그것은 그의 진정한 내면이자 우리들의 숨길 수 없는 얼굴이라는 것이다. 이번 하정우의 작품은 그러한 내면의 고뇌와 생각들을 풍부하게 담아냈다.
배우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자신들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며, 그들의 아픔과 고달픔은 <삐에로>를 통해서 드러난다. 
그래서 그 삐에로는 배우인 동시에 우리 자신의 얼굴이기도 하다. 
하정우의 작품에 나타나는 강렬한 색상과 간결한 선들은 이번에도 여전히 빛나며 그 인물의 특성과 명료함을 더해준다. 
물론 그가 묘사하는 인물에는 다양한 배우들이 익명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의식적으로 틀리게 쓴 “모나리나” 라는 다빈치의 작품을 패러디한 그림에는 몇 가지 알듯 모를 듯한 숫자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숫자들은 나름대로 고유한 의미를 지닌 숫자들이다. 
예를 들면 비근한 작품으로, 500이라는 숫자는 스타가 첫 번째 계약하는 500만 원이라는 상징적인 계약금이며, 168cm에 46센티며 가슴 사이즈며 그들은 그려진 것처럼 꽃이며 스타 즉 별이며 그들은 칼의 모습처럼 얼굴에 상처를 가진  우리 시대 여배우들의 조건이다. 
자세히 보면 얼굴에는 꿰맨 자국과 수많은 상처가 있다. 모나리자 원작에서 보이는 단아함보다는 여배우에 대한 곱고 꽃잎 같은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상처와 흔적들이다. 
이러한 이미지와 아이디어는 배우만이 가질 수 있는 자전적인 내면의 사유와 흔적들이기에 가능하다.
어떤 그림들은 색을 칠하지 않고 얼굴은 장난스럽게 몸이 끈으로 묶여있는 모습으로 이 이미지는 어쩌면 자유스럽고 화려한 풍경 뒤에 갇혀있는 스타들의 사생활과 그들만의 프레임 안에 갇혀있는 리얼한 그들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이렇게 그는 그림을 그릴 땐 “식물이 되는 느낌”에 젖는다고 할 정도로 집중적인 몰입에 강력한 스타일의 작가이다.
그뿐만 아니라 양식적인 면에서 평면적인 패턴과 표현으로 원색적인 색채와 생략으로 화폭을 완성하는 단호함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 영향을 샤갈 작품에 빨간색과 짙은 녹색을 섞어 쓴 유대인 할아버지 초상으로 느껴진다.
언젠가 그는 그 그림을 보고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지금 그의 색채감각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화려함을 좋아하고, 베스트 드레서인 아버지의 패션 감각 덕분이 아주 분명해 보인다.
만약 하정우의 작품이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게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명확하게 강렬한 색채와 함께 삐에로인 배우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그가 진솔하게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스타인 그에게 광대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무엇인가? 광대는 자신들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슬픈 존재가 아닌가? 
그러기에 하정우 작품에 중요인물인 삐에로 시리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에겐 초기 작품에 없는 일관되고 자신의 개성이 돋보이는 테마를 성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대중에게 인지시키고 싶은 배우들의 뒷모습을 포착하는 이면에는 대중과 소통, 그리고 공감의 울림에 자신의 속마음을 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모든 작품을 통해 깊이 있는 감정이입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높은 상징성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형식을 발견하고 있다. 
그는 영화 촬영 후 그림을 그릴 때면 “식물이 되는 느낌”에 젖을 정도로 집중적인 몰입으로 작업을 해왔다. 
동시에 촬영 중의 이미지와 영감을 캔버스 위에 극 중 배우들의 캐릭터를 살려 쏟아낸다.
그리하여 초기 쟝 미쉘 바스키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하정우만의 스타일로 현실과 영화 속 캐릭터를 의식의 흐름으로 리얼하게 형상화했다. 
그것은 마치 1917년 쟝 콕토의 무용극 '파라드'의 무대 장치와 의상을 맡았던 피카소가 무대 위의 광대 인물들에 크게 흥미를 지녔던 것처럼 노랑, 빨강, 주홍과 같은 색채로 코믹하게 삐에로의 특징을 선보였다.
배우를 비유하는 그 현실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배우의 비애와 그 화려함 뒤의 슬픔을 추체험한다.
거침없는 먹선으로 자신의 얼굴을 숨기고 광대의 본성을 파고드는 날카로움에서 때로는 비장미에서 하정우 내면의 진정성과 쓸쓸함의 매력을 포착한다. 
물론 그가 연기하는 광대, 구경하는 광대 이런 광대의 아픈 모습으로 베르나르 뷔페처럼 숨은 속살을 보여줄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 최근작들은 그의 예술가적 열정과 감각으로 사람들의 표정에 진지하게 답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의 작품은 주목받아 마땅하다. 
나는 그가 하정우라는 존재의 극적 표현이라는 시각에서 결코 흔치 않은 독자적 깊이를 지닌 작품으로 변모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인물의 깊이는 하정우만이 표현할 수 있고, 그만이 가진 인간 속의 상념들을 가장 이상적으로 그려 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번 그림의 배경은 그가 그의 지친 삶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휴식하는 정신적 파라다이스의 고향 하와이에서 일어난 영혼의 모든 숨결이라는 점에서 그 호흡과 숨결이 우리들 가슴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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