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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올려보기, 신은섭의 앙각(仰角) 시선을 찾아서

김종근

소나무 올려보기, 신은섭의 앙각(仰角) 시선을 찾아서 


예술은 인간의 서명이다. 그래서 미술작품으로서 그 서명은 독창적이어야 하고 새로워야 한다.
그 점에서 신은섭의 서명인 소나무 그림들은 충분히 볼만한 이유와 새로움이 있다. 
그러나 그의 모티브로서 소나무는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솔거가 그린 황룡사 벽화에 그림을 진짜 소나무로 착각하여 많은 새들이 부딪쳐 벽화 밑에 즐비했다는 전설처럼 진부하다. 
물론 역사적으로 많은 소나무가 그림이나 벽화 속에 나타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생동감 있게 표현된 평안남도 남포시 중화군. 진파리眞坡里1호분에 인동문 형태의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것도 소나무이다.
이런 소나무 형태는 중국 동진(東晉)의 위대한 화가 고개지顧愷之(334-406경) 그린 〈낙신부도권洛神賦圖卷〉에 고대의 수목 표현에서도 발견된다.
그는 冬嶺秀孤松冬 (동령수고송) 겨울 고개에는 외로운 소나무만 빼어나도다. 라고 소나무의 지조와 절개를 칭송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능호관 이인상이 탁월한 <설송도>를 남겼고, 남화 역사의 증인이었던 남농 허건의 <소나무> 그림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런 오랜 역사를 지닌 소나무가 우리에게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무래도 추사 김정희의 국보< 세한도> 일 것이다.
 추사는 그림의 발문에서 선비의 지조와 의리를 지킨 제자 이상적에게 이 그림을 준다고 기록하며, 버림받은 유배객을 잊지 않고 중국에서 귀한 책을 구해 보내준 정신의 품격을 추사는 《논어》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추위가 닥친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은 것을 안다)’ 대목을 인용하며 극진한 고마움을 표했다.
이처럼 심은섭이 그리는 소나무는 비바람과 눈보라의 역경 속에서도 변치 않는 꿋꿋한 절개와 의지의 상징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 때문에 율곡 이이도 세한삼우(歲寒三友)로서, 송(松) · 죽(竹) · 매(梅)를 꼽았고, 윤선도는 시조 오우가에서 소나무를 벗으로 여긴 것이다.
이외에도 꿈에서 소나무를 보면 벼슬을 할 징조이며, 솔이 무성함을 보면 집안이 번창하며, 꿈에서 송죽 그림을 그리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꿈 해몽도 있다. 거기다 오래 사는 나무로 알려져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의 하나로 꼽힌다. 
신은섭은 많은 나무와 꽃이 있는데도 이런 역사적인 소나무를 왜 10여 년째 그리고 있는 것일까? 바로 소나무가 이런한 상징성을 풍부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수묵뿐만 아니라 수묵채색에서도 뛰어난 기량으로 다수의 풍경화를 잘 그렸고 종종 그렸다.
그러다 2010년경 풍경화 작업 차 야외 스케치 현장에서 체험을 계기로 ‘소나무와 빛’을 그리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스케치를 하다가 잠시 휴식하느라 돗자리를 깔고 팔베개를 하고 누웠는데, 눈앞에 소나무 가지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 순간을 보며 커다란 전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때 작가는 “햇빛이 마주하는 순간 내가 표현하고 싶은 먹색이 느껴졌다”며 “그때부터 소나무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하는 데 매진했다”고 소나무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털어놓았다.
그것은 마치 모네가 수련을 만나 평생 수련을 그리거나, 소나무 사진작가 배병우가 경주 남산에서 소나무를 만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신은섭의 소나무는 다른 화가들의 표현법과 양식에서 그 시선이 분명하게 다르다.
한지와 먹이라는 수묵 재료로 그 시선을 아래에서 올려보는 색다른 앙각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동양화에서 잘 보이지 않는 소나무와 빛을 극적으로 조화 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통 화가들이 옆에서 혹은 위에서 내려보는 부감법의 화폭을 포착하는데 신은섭은 반대로 밑에서 위를 올려다본 즉 앙각의 시선으로 올려보기의 소나무를 포착한다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엄청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시선의 혁명이나 동양화의 시각적 반란임은 틀림없다.
이러한 내면에는 동양적 자연관인 자연에 대한 겸허한 시선과 낮춤의 미학이 근거한 것으로 해석 된다.
보통 작품에서 낮은 곳에서 물체를 올려다보는 심은섭 화풍의 앙각 기법은 살바도르 달리의 내려본 그림처럼 참신하며 흔한 기법은 아니다.

그의 새로움을 향한 필법이나 기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화의 기법상으로 좀처럼 쓰지 않는 서양의 입체적인 표현감과 원근법의 기법을 그가 전폭적으로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재료상으로 그의 회화가 명백하게 동양화이지만 표현양식상 서양화의 인상을 강렬하게 풍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그의 작품세계는 흔히 “한 줄기의 강렬한 빛으로 다가온 소나무”란 문장으로 불리며 압축된다..
그러기에 시각적 혁명을 추구하는 구도와 빛의 하모니를 우리는 감상자로서 발견해야 한다.
그래야만 소나무 껍질에 담긴 섬세한 음영도, 껍질의 소용돌이 치는 듯한 장중한 역동성, 그것들이 빛과 만나 연출하는 벅찬 빛의 감동을 우리가 비로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감정은 아마 살바도르 달리의 <십자가에 달린 성 요한의 그리스도>에서 위에서 내려다본 예수상의 감동과 같은 맥락이다.
특히 집요하게 소나무의 솔잎 사이로 쏟아내는 은총 같은 빛의 강렬함은 분명 '소나무를 향하는 접사의 시점과 하늘을 향하는 원근법적 시점인 다중시점은 정신을 중요시하는 동양화의 특성과 관계가 깊다“
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공감하게 된다.

나는 그의 회화가 수묵이라는 색채의 구속에서 조금은 벗어나 자유롭게 회화의 세계에 접어들길 소망한다. 그리하여 추사가 슬프거나 힘들고 억울할 때에도 붓을 들었고. 글씨가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썼다. 그렇게 마침내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했고 70 평생 열 개의 벼루를 갈아 버렸으며 1000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음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은섭의 소나무가 추사처럼 오래 빛나기를 '소나무의 그런 덕목들을 하나하나 담아서 한 점 한 점 작품이 완성되어 그것이 심은섭의 올려보기 소나무가 되길 기대한다. 그는 능히 그럴 기량과 필력과 시각적 반란의 힘과 시선을 지니고 노력하는 작가 이다.
그것이 그가 진정 이 시대에 소나무를 그리는 이유가 되며, 소나무의 내면과 외면을 닮아 가는 일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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