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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실 풍텅이로 세상을 놀라게

김종근

실 풍텅이로 세상을 놀라게 - 이선미 



이선미의 작업을 보면 마치 세잔의 사과 작품을 보는 듯 깊은 착각과 환상에 빠져든다. 그는 평소에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절대적이고 굳은 신념으로 이렇게 말한 세잔은 그의 말대로 마침내 파리뿐 아니라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고 마침내 근대 미술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바로 사과라는 모티브 하나로 자신이 생각한 모든 사물의 입체적 표현에 도달한 것이다. 
우리에게 이선미의 털실 뭉텅이는 그렇게 세잔의 사과처럼 보인다. 
그가 털실 작업을 지금까지 오직 하나의 주제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고집을 생각하면 이러한 비유는 결코 무리가 아니다.


이선미의 털실 작업은 2014년 바구니에 담긴 털실 뭉텅이를 수채화로 그린 것으로 시작한다.
 털실 작업을 본격적으로 그린 이 예쁜 작업은 위에서 내려다본 바구니 속의 털실 뭉텅이를 아주 세밀하게 표현한 것이다.
비록 이 그림은 아주 평범한 정물화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 작업을 계기로 이선미는 집요하게 털실 작업에 집중하며 올인한다.
이런 이선미 실 뭉텅이 그림이 여타의 정물화와 다른 것은 우선 그려진 작품의 특징에서 남다르다. 먼저 이 정물화는 그 털실이라는 주제와 수채화라는 기법에 크게 방점을 두고 있다. 


초기 그뿐만 아니라 그의 털실 작업은 대상 자체를 마치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해 사진보다 더 진짜 같은 극사실주의 화풍이 대부분이다.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너무나도 실물과 너무 똑같아서 그의 탁월한 묘사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특히 수채화라는 기법도 기법이지만, 원근감에서나 색채의 구성면에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탄탄한 그만의 표현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선미는 그 실이라는 소재가 지닌 형태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색채로 사실적인 묘사로 그 리얼리티의 극점까지 도달하고 있다.
다소 의심스럽지만 왜 실 뭉텅이에 집중하고 있는지에 대한 목적이 아직은 명료하진 않지만, 대상을 복사하듯 똑같이 그려내는 기법은 다분히 사물에 객관성을 주려는 시도로 대상을 거리감 있게 보려는 시도는 분명해 보인다. 
세잔은 그리려는 대상을 백 번을 그리고, 백 번을 고쳐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적어도 이선미의 작업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녀도 실 뭉텅이를 눈앞에 두고 며칠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다시 보고, 산책하고 돌아와 다시 보며 사과라는 본질을 파악할 때까지 세잔이 생각을 멈추지 않은 것처럼 실 뭉텅이의 묘사에 '자신이 보고 느낀‘ 실 뭉텅이를 냉정하게 그려낸다.
세잔이 대상을 똑같이 그리지 않고 사과를 가장 사과답게 보이게 하는 색채와 각도, 그리고 안정감 있는 구도만이 중요했다면 이선미는 극히 그만의 시선과 형태 색채를 가지고 때로는 하나씩 아니면 여러 개를 주관적인 방식으로 그의 실 뭉텅이를 탄생시킨다.
그녀는 그가 선택한 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작가 노트에서 밝히고 있다.
“그저 세상에 널려진, 색을 지닌 물건 중 한 가지 ‘실’을 택해 drawing하고 있을 뿐이다. 관람자는 작품에서 인연, 해결, 미완, 몰입, 우주, 화려한 등등 여러 가지 다양한 각자의 감정으로 바라본다. 아무런 느낌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
작가는 그의 그림들이 주는 느낌을 관람자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즉 그림을 그린 사람에 손을 떠나면 전적으로 그것이 보는 사람들의 몫으로 건네주는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먼저 무엇을 이야기하거나 주장하기보다는 실 작업에서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수많은 선으로 이어진 끈 같은 인연, 잘 정리되어 둥그런 형태로 정리된 해결, 그 안을 알 수 없는 미완, 무엇인가 파헤치면 있을 것 같은 몰입, 둥근 형태의 우주, 여러 가지 색채가 주는 화려함 아마도 이러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을 위해 작가는 극사실주의란, 정확하고 세밀한 묘사의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반복한다. 동시에 작가는 이것이 한 예술가의 삶 일수도, 예술가의 몫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즉 일상적인 실 뭉텅이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적인 세계의 한 모습을 담아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것도 한번 잘못 그리면 수정이나 변경작업이 어렵고 불가능한 수채화라는 작업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수채화 작업을 고집하고 있다. 유화 작업보다도 훨씬 인기가 덜한 까다로운 작업을 그는 마다하지 않고 수행하고 있다.
그대로 현실 속의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실 뭉텅이가 주는 아름다움과 조화로움, 포근함과 여유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지 모른다.
필자의 시각으로는 이제 작품 속에 어떤 의미나 메시지를 담아내면서 실 뭉텅이가 더욱 가치 있는 오브제로 보이길 욕심 내본다. 
하지만 작가는 여전히 그 시각적 형태의 현상 자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감상자의 편에 서서 그 과정 속에 있는 작가의 마음을 읽으라고 주장한다.
마치 극사실주의자들의 화법처럼 말이다.
보여주는 현실 그대로의 풍경에서 작품의 의미를 찾게 만드는 그리하여 묘사 속에 그녀의 시선이 합쳐진 아름다운 오브제의 평화로움을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그는 작업한다. 
모든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이 땅에 존재하는 오브제들에 이름과 생명의 가치를 부여한다, 시인들처럼. 
덩그러니 놓인 그림 속의 실 뭉텅이, 손으로 누르면 그대로 마치 손닿을 거리에 있는 것처럼 더 선명한 촉감을 느끼는 이 그림들은 오히려 주장하지 않아 더욱 거리감 없는 새로운 풍경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그 털실이 갖고 있는 “포슬포슬한 따뜻함을 수채화의 습식(wet in wet)으로 채색”하는 것이 작가에겐 최고의 목적으로 두고 있다. 
털실만이 가지고 있는 한없이 부드러운 곡선의 행렬, 그런 실들이 서로 모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실 뭉텅이들의 어울림과 조화, 작가는 그것을 “화면 속에서 그려낸 색채들이 공간을 둥둥 떠다닌다.”라고 말하며 즐기고 있다. 
아마도 당분간 그녀의 털실 작업은 이렇게 지속할 것이다. 


에밀 베르나르가 '세잔은 사전에 깊이 생각하지 않은 붓질은 단 한 획도 한 적이 없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의 눈을 시원하게 하는 절묘한 색채감으로 사물의 본질을 구성하는 색채의 마술사였다.'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이선미는 그 실 뭉텅이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선을 그어가며, 그 선들에 영혼에 색채를 올리면서 맑고 투명한 물로 다시 물감을 덧칠하며 그 공간들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것이다. 우리와 함께.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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