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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조의 마음속 풍경, <자연과 시간>

김종근

이창조의 마음속 풍경, <자연과 시간>  


모든 작가들의 고민은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로 시작한다. 이창조 작가도 그러한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작업에 임할 때 화폭 앞에 서서 어떻게 작업에 임할 것인가에 관한 아주 중요한 발언 하나를 남기고 있다.
“나의 붓질로 마음속에 흐르는 생수의 강을 표현할 수 있을까 ?” 라고 반문하면서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눈을 감으면 잔상처럼 떠오르는 마음속 깊은 곳의 풍경”이 있다고 했다. 
그에게는 바로 그 “마음속 깊은 곳의 풍경”이 그의 예술적 화두이었다.


작업실에서 본 그림들의 풍경은 인상적일 만큼 다른 모습들이었지만 하나같이 자연을 바라보는 공통된 시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그가 발언한 “마음속 풍경”들과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물론 그의 작업에 다른 오브제와 풍경 등으로 읽히는 몇 가지 시선들이 있어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그의 자연을 대하는 시선만큼은 정적이고 서정적이었다. 
토기를 수묵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모습이 정적이었다면, 소나무나 수초들의 풍경은 너무나 서정적이고 역동적이었다. 
특히 그림들 가운데 조선다운 산천을 그려 진경산수 회화를 주도했던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푸른 인왕제색도가 눈에 와락 들어온다.
그러나 화폭 하단에 녹색의 두꺼운 색면의 띠가 자리하고 있어 인왕제색도와 파격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른 컬러의 역시 정선의 그림 <계상 정거도 >의 산수화도 예외가 아니다. 단색의 풍경화에 하단 붉은 색 띠가 시선을 적극적으로 잡아끌면서 화면에 신선함을 증폭 시킨다. 
이 조선의 산수들이 이창조를 만나 그 풍경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과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한 폭의 21세기의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어쩌면 원화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창조 작가는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내면적 해석과 주관을 더 그림 속에 개입시키면서 그만의 현대산수화로 전환 시킨다. 
그러기에 지금 보아도 새로운 정선 이후의 회화에 품격과 흥미를 부여한다.
이런 기법을 종종 빈번하게 화폭 속에서 사용한다는 것이 이창조 회화세계의 중심적인 방법론이 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그림이지만 ‘형사(形似 형태를 같게 그림)’ 보다는 ‘사의(寫意 뜻을 그림)’를 어울리게 드러내고자 하는 그의 예술 의지를 천명 한 것이라 판단된다.


이처럼 그의 작품 곳곳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풍경을 해석하는 형식으로 풍요롭다. 
먼저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비교적 오랫동안 표현했던 소나무에 대한 풍경이다. 그가 그려낸 소나무는 실제 존재하는 사실적인 소나무가 아니라 파란색 소나무, 녹색 소나무 등으로 그가 품어온 가슴 속 깊은 곳의 풍경으로 본래의 색과는 거리가 있다.
그것도 빠른 붓질과 필치로 다이내믹한 붓질이 흔들고 지나간 그런 풍경의 소나무로 사실은 마음속에 강렬하게 스쳐 간 소나무의 잔상 그 풍경일 뿐이다.
그는 이런 소나무 외에도 호숫가에 떠 있는 수초들의 풍경을 빠른 붓질로 다양한 풍경을 역동적인 붓질로 스피디하게 표출한다.
어떻게 보면 서양화로 동양의 마음과 정신 혹은 시간을 담아내는 작업이 곧 그의 작가 세계로 정의될 수준이다.
그러고 보면 그에게는 숨겨둔 수묵 정신도 살아있고, 마음에 담아 둔 내면의 정신을 표현하는 전통적인 언어가 생생하게 존재한다고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전통과 현대성을 한 화폭에 담아내고 싶어 하는 작가의 의지가 깊게 반영된 세계를 조화시키고 있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마치 전통적인 문인이나 산수 화가들이 지켰던 3가지 양식의 특징을 아우르고 있음과도 비교된다.
하나는 “자연을 직접 접하고 깊이 관찰한다. 실제 자연을 경험하였을 때, 산수화는 실경다운 맛이 난다. 둘은 자연의 재현에 있어서 일체의 대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깊은 체험에서 오는 미의식과 주관에 따라 새로이 재해석한다. 화가는 자신의 심미안에 의거해 자연 그대로의 산수를 순수조형 요소로 재구성”하는 원칙 같은 것이다.

단연 이창조의 작업은 일견 추상과 구상이 한 화면에 혼재된 화풍으로 김흥수의 하모니즘처럼 읽혀지나, 사실은 고전과 현대를 가로지르는 시간의 문제를 자연속에 녹여낸 혹은 개입된 풍경으로 해석되어야 정당하다.
특히 그것들이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는 동양적 사유를 담은 시선에서 출발,명상과 묵상의 경지에서 일필휘지로 붓질로 아우른 작업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특이한 것은 아마도 화면 하단에 자리 잡은 조화로운 색 띠들은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로 회화의 새로운 획을 그은 현대미술의 거장. 사진과 회화, 추상과 구상, 그리고 채색화와 단색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라는 매체를 재해석하고 그 영역을 확장시킨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화법과도 상통한다.
추상화된 작업을 하단에 배치하면서 형상의 재현적인 요소와 결합시키는 자유로운 기법이 이를 뒷받침 한다.
나는 현재 그의 작품세계가 다소 과도기적인 화풍으로 구상적 묘사에서 벗어 추상과 화합하는 중요한 변환점으로 이해한다.
토기의 그림이나 소나무 그림이나 과거의 꽃 그림도 그러한 다채로운 색채의 회화 출발에서 발생한 중요한 과정을 볼 때 더욱 그러한 경향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바보가 되지 않으면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명언처럼 그가 진정한 바보가 되길 기도한다. 
그럴 수 있을 때 그는 좀 더 분명한 자신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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