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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과 <사유>의 사이에서 만난 아름다운 그림

김종근

<그리움>과 <사유>의 사이에서 만난 아름다운 그림.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 한국미협 학술평론 분과위원장

닥종이 사랑과 화가, 스님, 그리고 30년. 여기 두 분의 화가가 있다. 두 분의 공통점은 하나는 부처님의 불법을 전하는 수행자로서 두분 다 스님이고, 동시에 깊고 그윽한 정신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화가라는 점, 거기다가 30년이 넘도록 두 분이 지독하게도 우정을 지키며 닥종이를 사랑한다는 숙명적인 만남이 여기에 있다.  영담스님과. 정오 두 스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런 두 스님이 경북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 소재 영담한지미술관에서  '닥종이 사랑 30년' 展을 갖는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볼만하고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하나는 우리 민족의 종이라고 일컬어지는 한지의 지극한 사랑으로 평생을 함께해 온 두 스님의 예술세계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영담 스님은 맥이 끊어진 전통 종이 6종을 재현해 냄으로써 닥종이의 장인으로 닥종이를 화선지 삼아 천연염료를 사용하여 채색과 변색, 탈색과 번짐 등으로 동양화를 여느 화가도 형상화하기 힘든 독자적인 기법으로 성공적인 작품창작을 담아왔다.
이미 영담 스님은 ‘청산에 살으리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로서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오고갔다는 ‘차마고도’ 의 작품에서는 철학적 감성을 표현했고 소박하면서도 부드러운 닥섬유의 특성을 충분하게 살려 오직 천연 소재만이 풍기는 감각과 내밀함으로 그 역량을 보여주었다.
특히 은밀한 대화처럼 몽환적이면서도 안온한 느낌의 ‘별 헤는 밤’ 같은 주옥같은 풍경들은 우리들 마음을 그리움과 추억 속으로 한꺼번에 사로잡는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45년간 한국의 전통 종이를 연구하고 오로지 이것을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 정진 해왔기 때문이다.
일찍이 영담 스님은 '청도 감물과 닥섬유의 만남'을 주제로 천연 닥종이와 천연염료만으로 조화를 이룬 '연리지', '헝클어진 심장', '두 사람' 등으로 이미 크게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화폭속에서 인간의 본질과 본성을 간파하고 이러한 물질, 즉 닥종이에서 다시 삶이 가지는 진정한 본연의 깨달음을 자각하는 철학을 얻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감히 다른 작가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영담 스님만의 표현법과 재료의 사용만으로도 우리 전통 닥종이가 가지는 한국적 우수성은 물론 새롭고 참신한 현대적 예술 형식이 가능하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영담 스님의 회화 속에는 재료에만 탐닉하거나 빠지지 않고 그 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과 탐색으로 수십 년을 추구한 예술가의 열정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어느 작품을 보더라도 흔한 미술작품이 가질 수 없는 변색과 탈색, 혹은 번짐과 스밈이 자연적인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화폭 자체에서 빛을 발하는 형상으로 답하고 있다.
아마도 이 작업들이 가능한 것은 청도의 산과 물, 바람과 햇살이 자연과 어우러지면서 모두 가능한 공간이었기에 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가슴에는 그들을 품고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그리움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게다가 부드럽고 은은한 종이 빛에 녹여낸 색채와 형상은 경북 청도의 감을 이용하면서 감물이 진한 갈색의 강한 착색으로 천연염료의 녹슨 듯한 쇠를 떠올리는 발색효과가 한지와 만났기 때문이다. 그 위에 다른 환상적 세계의 중심에 유년 시절의 그리움과 추억이 극적으로 얹혀진 것이다. 
이것만으로 영담 스님은 이미 한국 전통문화 속에서 닥종이 고유의 장인으로 빛나는 위상을 지닌 작가임이 틀림없다.
<달 뜨는 마음>과 <북두칠성>은 그러한 작가의 사유와 내면의 풍경이 가장 이상적으로 그리고 화해롭게 펼쳐진 작품으로 밤하늘에 반짝 빛나고 있다. 
오래전부터 자연 염색한 닥종이에다 여러 재료를 붙이는 서양의 콜라주 기법으로도 완성한 작품 ‘그 섬’을 보여주면서 그 예술적 탁월성을 확인시켜주었다.
결국, 스님은 얽히고설킨 닥종이가 수십 번의 물질로 채곡 채곡 겹겹이 쌓인 한 장의 종이로 탄생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과 같은 삶의 무게를 지닌 미술작품을 창조해낸 것이다.
결국, 예술도 수행도 삶의 모든 세계를 외연과 내면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최고의 경지에 작품이 탄생하는 것임을 화폭이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영담 스님은 닥종이의 새로운 현대적 예술 형식의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다양한 시도와 테크닉으로 표현해 낸 색채와 형상을 통해 30년 종이 인생의 예술적 성과와 깊이를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에 비해서 정오 스님은 훨씬 조형적이고 모던한 화풍으로 독창성을 확보하고 있다. 오래 전  정오 스님은 닥종이에 드리핑 기법처럼 잭슨 폴록이 시도한 물감 뿌리기와 던지기 제스쳐의 화풍을 거쳐온 경우라서 보다 서구화된 변형의 패턴을 거쳐 왔다.
기본적으로는 ‘열반’ 작품을 비롯하여 서양화 기법에 한국화기법을 더하면서 한지에 배어 들어가는 제작 기술을 작품 속에 응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오 스님이 일찍이 동국대학교 서양화를 전공하고 프랑스 아카데미 들 라 그랑쇼미에르에서 양화 기법을 공부한 이력에서 그 배경을 엿볼 수 있다.
젊은 시절 아크릴, 동양 물감, 자연 물감 등 혼합물감으로 표현의 다양한 패턴으로 자유롭게 경험한 기교가 등장한 것이다.
열반에 든 부처님의 모습에서 반가사유상에 이르기까지 정오 스님의 작품은 담백함과 동시에 깊고 조용한 사색의 울림을 화폭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화폭을 향하여 물감을 뿌리고 던지는 이 액션 페인팅적인 제작법을 시골 청도 스님이 활용하는 것에 놀랐지만 결국, 이 서양화 기법으로 닥종이에 <사천왕>과 <반가사유상>으로 정착하는  정오 스님의 혁신적인 세계가 평정과 자유로운 사유에 있었음을 드러내것이다.
거친 질감의 닥종이에 부처님과 슬퍼하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출발하여 <반가사유>상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정오 스님의 시선과 사색이 더욱 사려 깊게 우리들에게 높은 예술적 풍격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사유란 무엇인가? 정오 스님은 이것을 욕망에 빠져든 것이 아니라 번뇌가 소멸된 고요한 즐거움이라고 정의 했다.
이러한 정오 스님의 예술혼은 그림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화폭 속에 아름다운 하모니로 펼쳐지는 빗줄기 같다. 
전통 한지의 아름다움과 대중성으로 세계화에 이바지하면서 높은 정신의 세계를 전달하고자 하는 그 차원 높은 메시지가 사유를 통한 반가 사유상인지 모른다. 
이 '반가사유'상 시리즈는 그 형태나 조형성에서 분명하게 독창적인 양식과 화풍을 구축하고 있다. 불교조각품의 숭고미를 지닌 대표적인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고대 불교 조각사 연구의 출발점이자 6, 7세기 동아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불교 조각품 가운데 하나로 널리 잘 알려진 불상인데 그것을 정오 스님은 모던하게 조형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반가사유상은 중국에서는 주된 불상에 종속되거나 한 부분적인 존재에 불과하여
단독으로 독립되어 예배 대상으로 조성된 예가 드물었지만 정오 스님은 이 반가사유상을 종속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조형성으로 회화속에 창조해낸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 반가사유상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자세의 안정 된 표현과 단순화, 동일한 단위의 옷 주름이 생략이 주는 도식성을 극복하며 부드러움과 잔잔한 미소로 다가오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숭고미와 사유하는 모습의 반가사유상은 생로병사로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을 상상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마 이 조각상으로 정오 스님은 자신의 형상을 투영 시키며 닥종이에 부처님의 태자 시절 고뇌하던 모습을 평면으로 재현하면서 최고의 조형성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마치 사유하는 듯한 자세에 묶여 있지 않고,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여 명상에 잠긴 자유롭게 그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의인화시키는 의도에서 그 작가의 의도가 읽혀진다.
금동으로 만든 반가사유상 중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최상의 아름다움을 뽐낸 이 반가사유상을 통해서 정오 스님은 단순하지만, 균형 잡힌 신체로 종교의 예배 대상을 넘는 우아한 회화세계 도착한 것이다. 
특히 이 정오 스님의 반가사유상은 바탕의 배경도 단순한 색채로 혼합물감을 쓰면서 닥종이의 담백하고 간결한 균형과 형태미를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다.
그 팔의 동세나 움직임 또한 무리 없이 편안하게 좌우의 형상을 거침없이 응용하면서 사유의 무게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세련된 역학적 구성과 표현주의 화풍에서 그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그 배경은 약간 뒤틀린 자세와 형상으로 색채도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와 옅은 톤으로 반가사유상의 깊이와 부드러움이 미를 더하고 있다. 
화면을 파내거나 분할하는 형식도 그 자유로운 형식의 사유상에서 빠질 수 없는 특질임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이것 외에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처럼 거침없는 붓질과 세련된 필치가 서로 다른 조형 감각을 풍긴다는 장점도 정오 스님 회화의 빠뜨릴 수 없는 회화의 큰 매력이다.
미술사적으로 조화롭고 균형 잡힌 형태와 우아하고 세련된 그 반가사유상이 입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면에도, 마음속에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정오 스님의 작품에서 새삼 깨닫고 발견 한다. 이것이 회화가 주는 최고의 즐거움이 아닐까. 정오 스님이 우리에게 주는 벼락 같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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