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서화동원, 정종섭 그림 속의 다선일미

김종근



서화동원, 정종섭 그림 속의 다선일미


김종근 | 미술평론가
 

조선 시대 초의선사(1786~1866)는 무안 출신으로 ‘동다송’이라는 책을 지은 스님으로 유명하다. 「동다송」은 동다(東茶) 즉 우리나라 차에 대한 예찬으로 차의 효능과 품질, 만들고 마시는 법 등을 적은 우리나라 최초의 차에 관한 저술이다. 그는 불문에 몸담고 있으면서 유학, 도교 등 다양한 지식을 섭렵했고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 같은 학자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서예, 시, 문장에도 아주 능했다고 한다. 그런 초의스님의 사상은 선(禪) 사상과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으로 집약된다.  차 한잔을 마시는 데서도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고 하였으며, 차(茶) 안에 부처님의 진리[法]와 명상[禪]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차(茶)와 선(禪)이 둘이 아니고, 시(詩)와 그림이 둘이 아니며, 시(詩)와 선(禪)이 둘이 아니라는 그 유명한 ‘다선일미’라는 차와 선의 정신은 하나의 맛이라는 것이다.

한국 국학진흥원 정종섭 원장의 많은 글과 그림이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가문을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경주 안강의 명필 집안 쌍봉(雙峯) 정극후(1577~1658)의 14대손이다. 일찍이 효종이 대군 시절일 때 사부를 지내면서 학덕과 인품이 뛰어났고 그 후손들 가운데 수많은 명필이 계속 배출되었다. 헌법학자로서 서울대 교수로서 「선비의 붓 명인의 칼」을 쓴 그가 바로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바로 정종섭이다. 전국 유명사찰 중 범어사에는 그가 직접 쓴 '祖師殿(조사전)' 현판 글씨와 대구 비슬산 대견사의 현판인 '大見寶宮(대견보궁)', 동화사의 '靑虛堂(청허당)', 강화도 전등사의 '無說殿(무설전)'도 모두 그의 명필이다.

이미 5세 때부터 '정몽유어(正蒙類語)'를 보면서 글씨를 익혔다고 하니, 명산대찰의 현판 글씨를 쓸 정도로 그의 필세는 탁월했다. 그래서 그의 글씨는 “조선 선비의 빳빳함이 있으면서도 어눌한 소박함도 담겨 있고, 은근한 풍류도 느껴지는 글씨”(조용헌) 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나라 말기 미술사학자 장언원은 『역대명화기』에서 ‘서예와 그림이 이름만 다를 뿐 같은 몸’이라고 (書畫同源論) 했는데, 서예와 회화에서 필선을 긋는 데 이런 학문에 밝은 그가 글씨만 쓰고 그림을 안 그렸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는 수많은 휘호와 글씨를 남긴 그는 지금 회화작품에 모든 정열을 쏟고 있다. 

자연스러운 그의 최근 유화작품을 보면 화폭에 조선의 찻사발인 다완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종종 이 찻사발을 모티브로 한 배경에는 초의선사의 동다송 글씨가 바탕에 가득 쓰여 있다. 무엇보다 이 다완은 독특한 질감과 형태로 전면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다완의 인상은 그 질박함과 소박함이 색상과 배경색들로 동다송의 글씨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구성과 의도가 다선의 정신을 지니면서 예술적 감성과 격조를 더 하고 있다. 이렇게 정종섭의 내면에는 다완과 동다송의 일체화를 색채로 아우르려는 강렬한 예술적 욕망이 곳곳에서 넘쳐난다. ​마치 주역(周易)에서 ‘글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다 나타내지 못하고, 언어는 마음에 숨은 뜻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는 글귀처럼 뜻을 전하려는 작가적 성취욕과 표현 의지가 강인하다.

작품 속 뒤 바탕에 서체의 필획과 필법, 다완의 고졸한 색조와 형태가 마치 그의 성격과 인품처럼 넉넉하고 정겹고 가히 명품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아니 그림 속에서 멋진 다완으로 깊이 우러난 차를 마시듯 향긋하고 정신이 맑아진다. 그뿐만 아니라 그림 속 다완의 기물에서는 고전적이고 우아미로 충만해 있어 붓글씨에 향기가 나는 것을 바로 직관할 수 있을 정도로 유려하다. 아마도 동양풍의 그림과 서화에 부드러운 절제미가 어우러져 그가 작품 속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인지하게 된다.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군자가 책상에 앉아 종이에 붓을 들어 만물을 정관할 때에 마음으로 모든 것을 능히 꿰뚫어 볼 수 혜안과 직관으로 그림 그릴 때의 정신이 극치에 달하는 경지를 정갈하게 드러낸다. 특히 붓의 지나감과 거침과 필체의 부드럽고 좌우 상칭의 고르기가 잘 어울려 건실한 기물묘사의 장중감도 건네준다. 그 필세가 자연스럽고, 붓으로 쓴 먹의 흔적에서 초서의 풍취를 남기면서 그의 다완은 경쾌한 작품으로 빛을 발한다. 가만 찻잔 안에 평범한 모양은 온화하면서도 경박한 느낌을 주지 않는 충실한 서체와 서화동원의 일미로 꼽힌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중량감과 균형미가 아낌없이 발휘한 매력적인 걸작이라 불러도 그리 과하지 않다. 지나치게 강조되지 않은 담백하고 야성미 넘치는 글씨, 굵고 가늠이 없이 무미하지 않게 마음에 다가오는 다완의 인상은 정종섭 회화가 지닌 매력이다.  

그뿐만 아니라 절대 화려하지 않으며 너그러운 조형미로 글씨와 그림이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는 미학을 보여준다. 힘차면서도 잘 짜인 서체와 구성미가 그 빛을 발하고 있으며 다완의 형상과 자유롭게 메이지 않은 서체에 그 찻사발의 어우러짐에 그림의 참맛이 풍긴다. 이러한 모든 회화의 조형적 요소들이 유려하고 다채로와 한없는 조선 찻사발의 정기를 깊이 간직하고 있다. 특히 화폭 뒷면의 글씨는 원필이며 강함과 부드러움이 다완과 더불어 잘 조화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교수 시절 수업시간에 '내가 한국의 칸트(Immanuel Kant)가 아니라 칸트가 독일의 정종섭이다'라는 파격적인 발언으로 전설적인 학자 정종섭. 서예의 필획이 쓴 사람의 성격, 인품을 나타내듯 그의 그림도 그린 사람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 그는 이미 시詩, 서書, 화畵 삼절三絶의 경지를 넘나들고 있어 감상자들로 하여금 풍부한 감동을 불러오게 만든다. 정종섭의 붓질이 호방하고 장식적인 맛이 있다면, 그의 화폭에는 꾸밈과 욕심이 덜하고 진솔하면서도 보는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매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마치 기운이란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화가가 날 때부터 알아야 하는 것이며, 높은 인품과 학식을 갖춘 사람은 자연히 기운을 갖추게 되며 기운이 높으면 생동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같은 철학을 발견한다면 과찬일까? 동다송 마지막에서 초의는 차선 삼매의 경지를 노래했다. “더러운 먼지가 없는 정기를 마시는데 어찌 큰 도를 이룰 날이 멀다고만 하겠는가”라며 선과 차의 일치처럼 시서화의 일치를 화폭에서 발견한다. 정종섭에게도 차(茶)와 선(禪)이 둘이 아니고, 시(詩)와 그림이 둘이 아니며, 시(詩)와 선(禪)이 둘이 아니었다. 가슴 속에 책 만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했던 추사(秋史) 김정희. 만약 정종섭의 화폭에서 그러한 정신과 철학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