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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결의 세계, 고향에서 추상 정신까지 – 이춘환의 근작

김종근



빛과 결의 세계, 고향에서 추상 정신까지 – 이춘환의 근작 


김종근 | 미술평론가 

예술가에게 있어 가장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단어는 무엇일까?
수묵화에서 출발하여 철학적 작품세계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서 독창적인 조형 세계를 구축한 이춘환 화백의 영혼 속에는 그 향수를 일으키는 “고향”이 있었다.
그간 작가의 30여 년 작품활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정열적이면서 치열하다. 무엇보다 안주하지 않으면서 쉬지 않는 창작활동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화가 이름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한 사람은 수화 김환기 또 한 사람은 색채의 마술사 화가 마르크 샤갈이다.

초기 샤갈이 유년기의 가난하고 우울한 고향 마을 비테프스크를 아름다운 환상과 색채로 꿈, 환상, 추억, 화폭에 담아 낸 것처럼 이춘환 화백은 20대 때 완도 섬마을의 풍경을 실경 산수 양식으로 그려내어 눈부신 주목을 받았다.
젊은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그 풍경 속에 정신적인 철학을 담아 산하의 ‘깊이’를 그려내려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자전적인 고백은 당시 그의 예술정신이 얼마나 각별했는가를 엿보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고향 덕분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고향 완도에 대해 “아름다운 곳”이라 칭송하며 청산도의 바다를 “눈이 멀 정도로 눈부셨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것은 마치 한국적 서정을 바탕으로 추상회화의 정수를 보여 준 수화 김환기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전남 신안 안좌도에서 태어나 8년을 거주한 수화의 달항아리 작품들이 이춘환 작가의 작품들과 교차하거나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김환기가 그곳에 머물면서 작품 속에 생동하는 기운을 획득한 듯, 이춘환 작가도 청산도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풍경 산수에서 자연의 소리를 담아내려 했다. 
그에게 있어 예술적 영감은 모두 자연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도 외형묘사가 아니라 동양 철학에서 보는 자연의 진리와 이치를 중시하는 정신성에 뿌리를 둔 것이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2005년 고향 풍경 속의 산을 표현한 <산의 기운> 시리즈에서 유감없이 펼쳐졌다.
이 작품들은 초기 수묵화에서 시작한 재료의 변화에서 벗어나 캔버스에 아크릴로 완성한 작품으로 외관상으로는 멀리서 본 산의 모습이지만 무엇보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의 서정이라 불릴만하다.
물론 <산의 기운> 시리즈 중, 무엇보다 백미는 손수 헬기를 타고 계룡산을 둘러보며 그림을 완성했다는 <계룡산의 기운> 연작이다. 
이 작품들은 파랑과 붉은색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강렬한 산 풍경의 형태와 색채의 대조가 돋보인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춘환은 고향의 자연풍경, 본연의 순수한 공간에서 온 아름다운 색채와 형태의 조화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한국적 미의식과 미감을 탐색했다.
그 계기는 이 화백이 경기 여주에서 2년간 머물 때 여주 금사리 분원에서 달항아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으면서 더욱 빛을 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바로 ‘달항아리-텅 빈 충만’ 시리즈이었다. 
조선 시대의 전통 백자인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은 정말 우연히도 수화 김환기의 항아리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미의식의 흐름을 발견하게 된다..
고향 섬의 달밤을 보고 작가의 고향 안좌도를 배경으로 그린 이 작품처럼 이춘환 작가는 나무, 달, 산 등 한국적이고 자연적인 소재와 고향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부단하게 보여 주었다.
특히 비어 있으나 비어 있지 않고, 가득 차 있으나 차 있지 않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달항아리에 공(空 )과 기(氣)의 미의식의 철학을 거기서 찾아낸 것이다.
비록 구상작품에서 시작한 연작 <산의 기운>, <달항아리>, <황금월매>의 반구상적인 조형 작업을 거쳐 이춘환 작가는 <빛+결>에 순도 높은 추상성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특히 달라진 것은 캔버스에 모래와 몇 겹의 채색을 덧입히면서 두꺼운 질감으로 고향의 정서를 보듬어주는 달항아리의 멋에 작가의 마음을 내려놓았다. 

<달항아리 >그저 꿈 같은 섬이요, 꿈속 같은 내 고향이다.” (「고향의 봄」, 1962.김환기)

이렇게 달항아리의 형태를 정적이면서 단순하게 장식 없는 깨끗한 색깔에 넉넉함을 그는 화폭에 진솔하게 담아냈다.
이춘환 작가의 <산운>은 풍경은 어김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한지의 소재로 검은 외곽선 풍경을 푸근하게 고향 완도의 산세를 빚어냄으로써 고향의 정취와 향수를 불러냈다.

이제 그 과정은 최근 시작한 <빛+결> 시리즈에서 그 원숙미에 절정을 더하고 있다. 종전의 작품과는 확연하게 다른 완전한 추상회화에 젖어 들은 것이다.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이 <빛+결> 아이디어는 1989년도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완도군 정도리 밤중에 파도가 치는 풍경과 소리를 발견하면서 그 소리와 함께 돌에 반사되는 달빛과 눈 부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서정 이춘환의 <빛+결> 시리즈는 단순히 전통적인 기법과 화풍을 계승에 있지 않고, 서양화의 기법으로 동양적 미감을 탁월하게 형상화하는데 그 우선적인 정신적 가치가 있어 보인다.
<빛+결> 시리즈의 작품은 온전하게 색면 추상작품으로 과감한 색상의 대비와 강렬한 밀도의 공간에 신비한 인상과 음양의 이치가 엿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수묵으로 물결 위에 비친 빛의 모습에서 색과 선, 질감의 표현으로 달빛의 결과 소리의 결을 조화시킨 것이다. 
특히 기법 면에서도 색상의 대비와 켜켜이 두텁게 쌓아 올린 겹을 통해 독창적인 질감의 색과 변화를 충분하게 얻고 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작가는 <빛+결>에 모든 색상이 충돌이 아니라 화합과 어울림으로 중심을 이루는 동양철학의 중용의 정신을 화폭에서 되살려내고자 한다. 

이제 이춘환 작가는 달, 산, 항아리, 매화 등을 떠나 김환기가 노래했던 우주와 그 깊은 자연에 귀의하려는 욕망처럼 추상적인 세계로 명상과 철학적인 정서를 엮어내거나 아우를 것이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 점을 찍는 일을 계속한다. ..... 살아 있는 사람, 흐르는 강, 내가 오르던 산, 돌, 풀 한 포기, 꽃잎, 실로 오만 가지를 다 생각하며 내 일을 알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며 점을 찍어 나간다……> 수화 김환기처럼 서정 이춘환은 또 다른 빛과 결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우리는 그에게 캐묻지 말아야 한다. 그를 낳아주고 길러준 완도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더 깊은 명상의 세계를 위해서 주저하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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