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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과 슬라이스의 흐트러짐 : 박선기

김종근



숯과 슬라이스의 흐트러짐 : 박선기


김종근 | 미술평론가


 “숯은 변화한 나무다. 즉 나의 모든 작품을 꿰뚫고 있는 소재는 바로 나무이다.”라고 정의한 박선기는 작업은 “끝없는 고행의 연속이고 고민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머릿속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출시키는 방법적 문제가 가장 큰 고통의 순간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온 작품은 또 다른 창작 발전의 에너지”라고 했다. 
작가의 이 자전적인 발언은 우리가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말해준다. 
그 화두는 숯이다. 이 숯 작업을 위한 고통스러운 작업의 순간들만큼 그의 작품에 쓰이는 오브제나 재료는 보편성을 거부할 만큼 특별하다.
숯이 하나의 훌륭한 미술작품으로서 오브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그의 작품은 어느 정도 파격적이다. 그렇다고 숯에 관한 일상적인 개념이나 의미에 큰 무게를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에게 미술 오브제로서 숯에 관한 선택이 본질적으로 철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은 경상북도 선산으로 몇 가구가 살지 않는 아주 작은 산골 마을 태생이다.
눈에 보이는 것 자체가 자연이 모두인 그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다가온 것이 산과 바람, 나무로 그 가운데 그는 나무와 바람에 관심을 가졌다. 가장 가까이서 보아온 자연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자연 가운데서 고민하다 나무가 산이나 바람보다 더 친근하며 표현하기 쉬워 나무를 소재로 출발하여 숯이란 재료에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나무의 본질을 버린 것은 아니다. 후에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  
이 피할 수 없는 레비스토로스의 환경 지배론처럼 작가는 태어난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는 숯에 대한 철학을 점진적으로 가지게 되었다.

나무 즉 숯의 생성이 작품에 결정적 모티브가 된 이유와 의미들을 검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숯 작업을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후반. 그는 숯을 놓아두기보다는 맨다는 방법에 오히려 관심이 더 있었다. 
그 이유는 비교적 단순했다. 줄에 물체를 맨다라는 것은 바닥이나 벽에 붙여두는 그것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인스털레이션적인 공간의 제약에서 쉽게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무에서 출발하여 작품 제작과 설치의 단계를 거치면서 그는 두 개의 목적을 이루었다. 하나는 작품으로 공간을 지배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브제로 재료의 확장을 통하면서 동시에 나무가 숯에 이르는 과정에서 생성과 소멸의 자연적인 이치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기에 박선기의 숯 작업은 국내외 전문가나 컬렉터들 사이에서 검은색의 숯을 투명한 낚싯줄에 매달아 놓은 한 폭의 동양화나 추상 작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빈번하게 작업의 방향을 하나로 일관되기보다는 두세 가지 스타일로 나누면서 작업을 전개 시키는 다양성과 미술의 열린 시각을 지니고 있다. 물론 분위기와 성격도 모두 달랐다. 
대표적인 숯 작품과 벽에 걸리는 부조식 조각 작품의 성향은 분명 본질적인 개념과는 다르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한 폭의 벽걸이 조각 같은 <point of view>시리즈 작품들은 숯 작업과는 이질적인 느낌이지만 그는 그것을 두 얼굴을 한 인간의 원초적 감성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그는 분명히 사람의 감정은 하나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감성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감성적이며 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주장한다. 그래서 그 두 가지 감성의 교차 속에서 박선기의 작품이 태어나고 있는 이유를 우리는 이해 할 수 있다. 두 가지의 작품을 병행하는 것은 한 가지에 얽매이며 고민하면 오히려 더디게 진행될 수 있으므로 유동적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가장 대중적으로 주목받고 인기를 얻는 작품은 벽에 걸려있는 입체 조각이거나 작품을 불규칙하게 나눈 슬라이스 류의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에서 그의 부조식 작품은 한 면에서 봤을 때만 정확한 사물을 관찰할 수 있는데 여기서 그의 작품들은 얇게 썰어서 흩뜨려 놓고 있다.

즉 사물을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각 작품을 볼 때 관객들은 대부분이 한자리에서만 관찰한다. 형태가 일그러져 보이는 곳에서 작품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 관객들은 다시 작품이 제대로 보이는 자리로 돌아와 관람한다. 그래서 눈은 그냥 매개체일 뿐이고 자신의 관념으로 작품을 관찰한다. 
그래서 작가는 그 틀을 깨고 싶어 한다. 익숙한 형태로 볼 수 있는 그 부분조차도 슬라이스를 통해 변형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가 아주 주목하는 <시 지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에 대해 박선기는 중요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미술은 시지각이다. 눈을 통해 작가의 정신을 찾을 수 있을 때 그 작품이 항상 신선하고 영구불멸 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자명한 사실이다.”라는 15년 전의 메모에서 그의 모든 작품이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부조를 가졌는가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부조에 대해 가장 관심이 많았던 그의 이탈리아 유학시절은 부조 뒤의 벽면을 제거하는 틀을 깨는 작업에서 반 부조스타일의 입체가 탄생 된 것이다. 원래 조각에는 원근법의 공간이 없지만, 부조에서 파생된 입체이다 보니 시점과 원근법이 생겨났다. 그래서 어느 한 포인트에서 보아야만 우리의 관념 안에 있는 정확한 형태의 틀을 볼 수 있게 된다. 그의 입체 작품의 본질은 기존 작업에 이른바 '슬라이스 기법'을 추가해 시점의 변화에서 더 나아가 대상의 시각적 분열을 의도하는 것에 근거한다. 
작가가 시점의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조각 작품에 다시 한번 착시를 줄 수 있게 대상을 슬라이스(slice)한 것이다. 
그 오브제들은 사과·컵·펜·제도용 컴퍼스, 가방 등 우리가 일상에서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친근한 소재들로 흰색으로 평면화시켜 시점 변화를 강조한 입체 작품들이다. 

이러한 수사학적 화법으로 여전히 그는 시각이 가지는 허구성과 계산된 착시가 주는 재미난 흐트러짐을 관객들이 즐겨 주길 기다린다. 
박선기의 이 작업들은 압축된 조각처럼 보이면서 입체주의적 시점 개념을 조각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사물을 바라보는 관찰자들의 시점을 혼란스럽게 혹은 어지럽힌다는 점에서 그의 조각은 세잔 이후 많은 작가들이 추구해 온 벽걸이 조각만큼이나 신선하다.
특히 회화적 기법으로 제작된 조각은 전통적 조각의 특징인 양감과 덩어리를 덜어내면서 질감을 배제하고 이를 위해 보이는 시점에서 시작하여 한곳에서만 정상적으로 보이는 조각을 다시 한번 착시를 줄 수 있게 분할하는 것이다.  
박선기는 여전히 조각 그룹에서는 전통조각에 반기를 들고 생소한 ‘숯’이라는 소재를 17년 이상 부조작품과 넘나들며 자연을 주제로 인간의 감정 속에서 찾아낸 주목받는 작가이다. 
그러기에 나무는 박선기에게 있어 표현의 대상이 아닌, 사유의 대상이고 생성이자 소멸의 종착역에서 만난 예술적 오브제이다. 부조작품 역시 어떤 형상이든 멀리서도 읽혀질 만큼 단순하게 물질성을 넘어 새로운 입체의 영역을 뒤흔드는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지닌 작가이다. 

특히 직접적인 표현이나 재현보다는 철학적이며 시각적인 입체의 세계를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그의 작품들은 조각이 안고 있는 표현한계의 문제를 열어놓은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이처럼 나무의 경험적 순간을 포착하여 숯으로 전이시키는 박선기는 우리에게 보는 작품에 대한 기억의 한 층을 새롭게 시각화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작가 스스로가 “작품이 가지는 우월한 값어치가 있다면 단연 작품에서 우러나오는 깊이감이다” 라면서 “시각이 가지는 허구성과 계산된 착시가 주는 재미난 흐트러짐을 관객들이 즐겨 주었으면 한다”라는 작가의 독백이 우리들을 그의 작품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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