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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가 된 작가 부엉이 - 민병구

김종근



부엉이가 된 작가 부엉이 - 민병구


김종근 | 미술평론가

아마도 화단에서 민병구 작가만큼 부엉이를 많이 그리고, 잘 그리는 작가도 없을 듯하다. 
100여 평 남짓한 그의 청주 작업실에는 온통 부엉이 그림과 무대미술 도구와 장치로 가득했다.
펼쳐진 크고 작은 부엉이 그림의 생김새와 모양, 그리고 몸매도 몸짓도 표정도 천태만상이다.
날카롭게 쪼아보고 응시하는 부엉이, 크고 긴 발톱을 불끈 세운 채 노려보는 부엉이, 마치 먹을 것이라도 본 듯 금방 날아오를 듯 번득이는 부엉이, 호랑이와 장난치는 귀여운 부엉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단란 가족의 부엉이, 동백꽃에 묻힌 부엉이, 흰 매화꽃 잎이 흐드러진 가운데 선 부엉이, 칠흑 같은 심야에 보름달이 있고 그 앞 보란 듯이 당당한 부엉이, 앙증맞고 귀엽게 큰 눈을 부라린 부엉이, 아스라이 깊은 밤에 유령처럼 나타난 부엉이 등, 마치 부엉이 박물관에 온 듯하다. 아니 크고 작은 모든 부엉이들이 모인 단합대회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불문율처럼 특이한 것은 날고 있는 부엉이의 모습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과거와는 색다르게 특히 한눈에 순간 들어온 50호 크기의 부엉이가 있었다.

달이 크게 떠오른 보름달 밤에 부엉이 두 마리가 어두운 밤, 강렬한 붉은 꽃나무에 올라탄 부엉이가 단연 시선을 압도했다. 그 부엉이의 인상도 강렬했지만, 달빛에 번득이는 부엉이의 묘사는 흠칫 역동적이어서 그 살아있음이 바로 화면을 뛰쳐나와 달려들 것 같은 표정이다.
그 희끗희끗한 꽃잎에서 핑크빛 붉은 꽃잎까지 민병구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엉이 그림이었다. 
그 작품을 보는 순간 이제 민병구가 화가가 아닌 부엉이처럼 착각했다. 그만큼 부엉이는 살아있었고 분위기는 폭발적이었다.
밤새 야밤에 작업실 여기저기에 물감을 늘어놓고 올빼미처럼 작업하는 모습에서 작가는 거의 부엉이가 되어 있었다. 다소 불경한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다. 그때 운보 김기창의 부엉이 작품도 떠올랐다.

생전에 김기창 화백은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말하는 아내를 '부엉이'라고 불렀다. 네 자녀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고 우향 박래현이 집안일을 모두 마친 야밤에야 비로소 그림을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늘 깨어 있었고, 고단했고, 무척 예민할 수밖에 없던 아내에 대한 운보의 예리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이 돋보이는 여러 얼굴의 부엉이의 모습을 의인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그림이다. 민병구 작업실에서 만난 수십 마리의 부엉이는 모두 그렇게 탄생하였다.
나는 사실 민병구 작가에게 제일 궁금한 것은 왜 부엉이만 그토록 밤을 새워 그리는가이다. 그는 낮에는 전국 곳곳을 출장 다니며 연극 무대장치를 설치하는 종합 예술가이다. 그래서 밤에 그림을 그린다. 
이미 몇 권의 책을 가질 정도로 유명한 그가 밤에는 밤을 새워 작업실에서 부엉이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부엉이 그림을 그린다. 
어쩌면 작가는 부엉이의 삶이 자신의 삶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동병상련의 처지를 절대 공감했을 것이다.
틀림없다. 나는 이것을 민병구의 운명 혹은 숙명이라고 정의한다.

물론 부엉이는 예부터 상서롭고 신비스러운 새로 여겨져 왔다.
부리부리한 큰 눈은 적은 빛도 잘 모을 수 있어, 밤에도 먹잇감을 잘 찾아내 부드러운 깃털로 부스럼 소리 없이 날아 눈 깜짝할 사이에 먹잇감을 낚아채는 기술을 지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주 큰 눈은 사람처럼 눈동자를 자유자재로 굴릴 수는 없지만, 대신 270도까지 목을 돌려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부엉이의 탁월한 능력으로 동ㆍ서양에서는 예부터 부엉이를 여겨 신비스럽고 복된 상징을 표식하는 작품의 소재로 종종 활용해 왔다. 특별히 동양에서는 부의 의미로 여겼는데, 이것은 사냥한 먹잇감을 둥지에 모아놓는 습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재물이 샘솟는다는 뜻에서였다고 한다.
밤에도 두 눈을 부릅뜨고 주경야독을 하면서 모든 것을 다 본다고 하여 벽사의 뜻도 강하다.
생활 속에서 장식된 부엉이, 장수나 지혜, 부와 재물, 벽사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 모두 누리고자 하는 기원과 희망이었다. 또 티베트 등 일부 나라에서는 깨달음의 의미로 상징된다..
서양에서 부엉이는 지혜의 상징이자 수호신으로 간주 되었다. 부엉이는 어둠 속에서도 세상을 보는 신과 소통하는 밤의 영물이라고 옛사람들은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혜를, 부엉이살림, 부엉이 곳간, 재물을 상징하며 일본에서는 행운과 복을 중국에서는 지혜와 풍년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세계 곳곳에 부엉이는 이렇게 영물로 대표된다..
네팔의 제사장이 점을 치던, 밀랍으로 만든 주사위에 부엉이 문양이 새겨진 것도 그러한 연유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우리나라 조선 시대 민화에도 부엉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부엉이의 상징성이 얼마나 특별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작가는 이처럼 부엉이가 지닌 다양하고 천의 얼굴을 관찰하면서 찾아내고 줄기차게 표현 해왔다.
꽃을 배경으로 한 부엉이, 매화꽃에 파묻힌 듯 부리부리한 표정의 부엉이, 마치 사람들이 짓고 있는 세상의 모든 풍경과 몸짓을 작가는 부엉이로 모두 아우르고 있었다.

다채로운 표현의 거침없음과 자유로운 배경, 부분마다 독특한 색감의 풍부한 묘사력, 틀에 벗어난 자유로운 구성, 이 모든 부엉이를 힘 있는 필선으로 구사하는 민병구만의 살아 숨 쉬는 역동성으로 민병구 특유의 부엉이를 창조하고 있다. 운보의 부엉이처럼 익숙하고 세련된 그러면서도 자신과 감정 이입하는 의인화에서 민병구 부엉이의 독창적 양식이 완결 된다.
아무리 봐도 민병구에게 정말 부엉이는 행운의 상징임은 분명하다.
그 많은 부엉이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서인지 민병구의 부엉이 작품은 발표 때마다 그 반응이나 평가에 있어서 뜨겁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컬렉터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모든 행운이 부엉이 그림을 밤마다 그리기 시작한 이후로 그에게 행운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민병구가 오로지 부엉이만 그리게 된 인연일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부엉이는 그의 운명이고 숙명이며 민병구는 곧 부엉이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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