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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선의 공간표현과 블랙

김종근

미술이 형태나 색채로 만들어 낸 언어라면,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드러내 미적 효과를 얻는 미술이야 말로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색채 언어이다. 두말 할 것 없이 회화는 사물의 형태를 이루는 점, 선, 면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점을 나열하면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을 이루다. 그래서 이들은 회화를 만드는 가장 기본 단위로서 불려진다. 그 형태를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것이 색채이다. 다른 작가도 그렇듯이 신희선 작품 속에 보이는 기본단위는 색채와 선이다. 색채와 선은 그에게 모든 조형의 중심일 뿐 아니라 회화의 가장 근본이다.

신희선의 그 선들은 단순하고 일정한 형태로 깊은 입체감은 없으나 입체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눈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는 예술이기보다는 공간 속에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는 쪽에 더 가깝다.

평면 위에 일정한 형태와 색채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지는 그의 조형요소는 순수한 내면의 감정의 단계로 집약된다. 자세히 보면 그의 그림에서 무엇보다 중요 한 것은 일정한 형태의 기하학적 구성을 위한 선긋기로 보여 진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는 그만의 규칙적인 선긋기는 형태가 비교적 획일적이고 색깔은 거의 검은색이 대부분이다. 일반 회화가 색채의 대비나 양감의 관계에 민감하다면 그는 형태와 기하학적 공간에 침묵의 색채라 불릴만한 무형의 언어에 열중한다. 그 언어들은 때로는 일정한 크기의 공간으로 분할되어 침묵하는 듯 진지하며 사색적이다. 그는 이런 기하학적 추상작업을 일러 <생의 순례> 시리즈로 불렀다. 눈앞에 펼쳐지는 생의 풍경의 모든 파노라마를 단순한 먹의 색채로 완성 하면서 그것을 생과 연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 색채들은 마치 프랑스의 검은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한스 아르퉁이나 피에르 쑬라쥬가 보여 준 것처럼 검은색으로 정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견 동양의 몬드리안 작품 같은 그의 이 형태들은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더욱 먹이 가져다주는 동양사상이나 철학적인 감성을 느끼게 한다. 그는 많은 색채를 사용하지 않고 단일한 먹으로만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먹색이 주는 한없는 편안함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먹이 주는 단일함과 사유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신희선은 회화란 감각에 조형적인 형태를 부여하는 마음의 표현 언어라고 주장하는 듯 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화가란 형태와 색채와 기호로 그것을 되돌려 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특이하게 발견하는 것은 그러한 모노크롬의 색채가 우선적으로 공간을 표현하는데 집중되어 있으며 그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색채 또한 검은색이라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회화는 블랙 페인팅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가 이렇게 검은색을 선호하는 것은 검은색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동양에서의 검은색은 검은 색은 동양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북방 수이다. 水라는 것은 만물의 생명의 근원자리인 동시에, 만물이 쉬는 계절이다. 뿐만 아니라 검은색은 휴식의 의미로 다음 시간의 순환을 준비하는 곳이다. 계절로는 겨울을 상징하며 하루 중에서는 밤을 의미하며, 인생에 있어서는 노년기로 경건과 침묵, 또는 죽음을 상징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작되었든 아니든 색채는 그의 내면의 감성들을 반영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런 일반적인 의미 외에도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이것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반복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만남과 헤어짐이기도 하거니와 생의 윤회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가 만들어내는 선들은 이런 내면적 감정들을 아우르는 경정테이다.

특별한 이미지보다는 순수한 조형 요소만으로 표현하는 그의 완성은 전적으로 색-형태와 함께 완결된다. 여기에서 검은 색은 자연의 색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연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색이다. 자연에서 받은 작가의 주관적인 느낌의 색이자 작가의 감정이다.

화면 전체에서 느껴지는 밝고 어두움, 색깔의 진하고 흐림에 의해 화면은 선명해 보이기도 하고 부드러워 보이기도 한다. 물체에 빛이 비칠 때 나타나는 밝고 어두운 단계처럼 이들은 빛과 어둠의 단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신희선의 그림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부터 멀고 가까움에 따라 나타나는 깊이감과 공간감이 적절하게 조화롭게 표현 되어 있다. 이렇게 그의 화면공간은 편안함과 철학적인 사색의 공간으로 작가의 내면적 세계를 충실하게 담아낸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동양의 정신성 위에 회화의 구성요소를 만나게 하는 어법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조형언어이다. 특히 간결한 형태와 획이 만들어내는 여백의 구조, 화면 전체에 운용되고 있는 전면회화의 추상구조야 말로 신희선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표현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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