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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화 / 여성성과 환상성의 파스텔 회화

김종근

“색채는 생명이다. 색은 빛의 소산이며, 빛은 색의 모체이다. 우주 최초의 현상인 빛은 색채를 통하여 우주의 생동하는 영혼의 존재를 우리들에게 제시한다.” 라고 말한 사람은 <색채의 예술>이란 책을 쓴 색채학자 요하네스 이텐이다. 그만큼 색채는 모든 회화의 중심이자 근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이 색채의 마술사가 되길 원한다. 이경화의 그림을 보면 다양하고 혼합적인 색채가 모여 환상적 풍경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예술가들이 꿈꾸었던 환상적인 세계들과 흐름을 같이한다. “색채의 마술사' 라 불리는 샤갈은 그의 종교적인 세계를 품으면서 풍부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꿈속에서 본 것들을 그려냈다. 그것은 하늘로 붕붕 날아다니는 사람, 고향의 의인화 된 소, 악기를 켜고 있는 삼촌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경화는 그보다 훨씬 제한 된 테마와 내용으로 그 환상성을 엮어낸다. 그에게 이 환상성의 중심적인 모티브는 여인과 꽃이고 색채이다. 그것들이 서로 만나 어울리면서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어 낸다.

꽃과 여인이란 모티브는 화가들에게 있어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진부하리 만큼 다루어진 주제이다. 그럼에도 그가 다시금 이 진부함의 부담을 가지면서 주제에 탐닉하는 것은 아마도 화면속의 여인이 그 자신과의 아이덴티티를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 여인들은 꽃과 함께 환상적인 색채들과 어울려 있지만, 그 속에는 어떤 원초적인 여인의 욕망성을 가지면서 화폭에 묘사된다. 벗은 여인의 누드와 그들의 움직임과 표정이 신비성을 담고 있다. 신비함이라고 해서 이경화의 그림에는 르동의 그림처럼 초현실적인 사물들이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나 정물화로 뭐라 말하기 힘든 신비스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 정서가 비교적 풍부하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작가가 중요하게 취급하는 묘한 색채와 구성, 그리고 이들의 몽환적인 색상처리이다. 르동의 명상에 잠긴 듯 눈을 감은 얼굴의 푸른빛이나 우주의 깊은 곳에서 퍼 올린 것 같은 심오한 푸른 빛 등이 이경화의 그림 속 어디에도 없다. 다만 그 모티브들이 서로 교류하며 교감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아름다움을 드러내거나 표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어딘가 여인의 감추어진 여성적인 욕망과 섬세함의 끈 같은 것을 발견한다. 그것들은 꽃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꽃은 여인기도 하고 여인은 꽃이고 싶어 하는 상호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작가의 그림구성은 훨씬 그 배경에서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형식을 자아낸다. 특히 여인과 꽃의 조화에서 꽃 색깔의 독특한 형태와 조합, 그리고 배경의 혼합 색조로 이것이 단순한 현실적인 풍경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마치 가슴속에 품고 있는 꿈의 단편을 환상적으로 그린 몽환미를 전해준다. 색채의 혼합과 색조만으로 이렇게 신비함을 줄 수 있는 것은 숭고함 보다는 달콤하고 신비로움 같은 탐미성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꽃과 여인이 한 화면 속에서 어우러진 여인이 갖는 욕망의 환상세계, 그가 이렇게 분명한 테마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경화의 그림은 여성이 갖는 내면의 갈등과 고민 고뇌 등을 드러낸다. 이것은 사실 하나의 그의 꿈을 찾는 일이며 자신의 심경을 반영한다. 나비와 꽃이라는 테마도 결국은 꽃과 여인의 또 다른 비유적 상징이다. 여기서 이러한 분위기를 주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바로 파스텔과 크레용이라는 재료라는 것을 말해야 할 것이다.

실제 역사가 오래 되었음에도 요즘 화가들에게 파스텔은 그렇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 못하다. 파스텔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역사는 17세기부터 사용되었으나 정작 파스텔화에 널리 쓰인 것은 18세기 초의 일이다. 17세기 무렵에는 형광안료의 분말을 응축해 만든 파스텔(pastel)이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파스텔화는 프랑스 미술회화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베네치아의 여류화가 L.카리에르가 파리에 머물면서 상류사회의 주문 초상화를 그리면서 프랑스 파스텔화를 급속히 발전시킨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경화의 크레용과 오일 파스텔의 작업도 기본적으로는 손끝으로 문질러 화면을 정리하는 파스텔 기법이 보급되었는데 그의 작업도 이런 패턴을 따르고 있다. 우리 화단에는 분명 파스텔 작가가 드물다. 이런 현실에서 크레용과 혼합하여 부드럽게 만든 칠감으로 파스텔의 또 다른 묘미를 살려낼 수 있는 것은 그의 아동미술덕분이다. 어쨌든 그의 회화속에 여인들은 불투명한 인상이지만 꽃과 여인 주는 발색과 혼색의 운필 속도에 따라 부드러움의 효과도 넉넉하다. 특히 표현이나 농담이 자유롭고 문질러서 얻어내는 부드럽고 은은한 효과는 그의 그림만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색조가 아름답지만 광택이 없는 파스텔의 매력 때문에 작가는 당분간 파스텔의 매력과 분위기에 몰입 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우리 화단에 보기 드문 파스텔 화가로서의 색채의 마술사라는 칭호에 더 매력과 욕구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색채와 구성을 보다 큰 시각에서 돌아볼 필요도 있다. 예를 들면 주제 표현의 참신성과 자신만의 테마를 가진다면 더욱 파스텔로서 색채의 마술사의 길에 더 가까이 다가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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