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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희 / 비대칭 오르피즘과 공간

김종근

이한희의 작품들을 보면 마치 들로네의 둥근 형태와 색상의 그림이 떠오른다. 아마도 색채와 형태의 구성에서 동일한 유형의 양식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피카소나 브라크 같은 입체파 화가들이 대상을 분석해서 화면을 다시 구성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들로네에게서는 색채보다는 오히려 형태의 추구가 더욱 중요했다. 입체파 화가들은 색채를 자유롭게 다루고 재조합 하더라도 형태는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들로네는 여기서 한 발 짝 더 나아간다. 화려한 색채와 형태로 마치 음악을 들려주는 것 같은 기분을 그림에서 충실하게 느끼게 해 준 것이다.

이한희가 최근 보여주는 그림의 원형은 기본적으로는 기하학적 분할과 사물의 형태를 생략한 형식을 창출하고 있다. 물론 초기의 불규칙적인 화면의 변화에 비교하면 최근 그의 작품은 지극히 규칙적이고 추상적으로 변모 한 것이다. 이 작품들은 때로는 강렬하고 명료한 색채와 빛의 파장에 의해 확산된 것으로 더욱 분명한 형태를 지니면서 마치 빅뱅의 이미지로 다양한 빛의 형상을 잡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형식은 들로네가 기하학적 분할과 색채에 사로잡히면서 취했던 형태와 흐름과 그 맥을 같이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한희의 회화를 오르피즘의 형식과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요소이다.

들로네가 추구했던 1913년 전후의 이 오르피즘은 들로네의 개인전에 초대된 비평가 아폴리네르가 시와 음악의 원리에 바탕을 둔 이 새로운 미술사적 흐름을 고대 그리스의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의 이름을 따 명명한 것으로 보통 추상의 완성이라고 부른다. 이한희의 이 들로네적인 스타일은 둥근 형태 속에서 쏟아져 나오듯 추상성을 띄면서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인상으로 구축적인 화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는 어떠한 이유에서 이러한 형상을 구하게 되었는가를 일부 작가노트에서 밝히고 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변화이다. 작가는 한 점으로 부터 시작 된 다양성을 생성과 소멸의 과정으로 보고, 대칭성이 깨지고 비대칭성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이 연출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한 철학과 신념이 사실 그림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의 화면이 기하학적 형태를 가지면서 비대칭의 형식을 가지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이다. 화면 속에 배치된 원형의 구성들은 대부분이 대칭적인 느낌만 줄 뿐 철저하게 비대칭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일정한 방향성과 운동성을 가진다. 동시에 그 모습은 빛이 퍼져 나오는 듯 한 확산의 동적인 형태를 균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들로네가 주었던 음악적 리듬감은 자동적으로 가지게 되고 독자성을 소유하게 된다. 철저하게 색으로 연주한 빛의 음악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이한희의 그림들은 기존의 입체주의가 경시한 색채를 단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비록 채도가 높은 색환에 의해 구성 되었지만 그의 화풍은 단정하고 시원하며 빅뱅처럼 경쾌하다. 이것은 작가가 단순한 구성과 색채의 조합으로 얼마나 회화가 아름답게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를 확인해주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어느 작품을 보더라도 화면은 담백하면서 절제된 색채와 원근법적 구성 형식에 바친 그의 열정을 보게 된다. 그 원근법적 형식들은 다양한 형태로 수축 되거나 팽창되어 확산되는 동적인 인상을 극대화 시켜주기도 한다. 아마도 작가는 현재로서 점진적으로 화법 상에서 견고한 구조를 지키면서 형태가 해체되고 빛에 의해 분사되는 패턴을 보다 발전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의 대칭과 비대칭성의 철학적 바탕이 바로 이곳에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이 순수한 프리즘과 스펙트럼 같은 율동적인 구성이 새로운 대상을 분석하고 화면의 재구성을 통하여 얻는 이상성의 추구에서 다소 불투명함도 존재한다. 다만 이러한 개념의 출발이 모든 생성과 소멸의 과정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모든 것이 출발한다는 일원론적인 철학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충분히 해석된다. 그 점이 사실은 들로네의 형태나 색채의 추구와 명백하게 구별되며, 그의 회화가 다분히 서양적인 형식에 놓여 있지만 그의 내면에 동양성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한희는 색채보다는 오히려 형태의 조합에 의한 빅뱅적인 구성을 반복해서 다루면서 스펙트럼에 나타난 모든 색채를 화면 속에서 동양적 신조형주의의 탄생으로 전환 시키려는 욕구를 감추고 있지 않다. 이러한 개념이나 철학이 화면 속에 나타날 때 그것들이 완벽하게 구체적인 색채와 이미지가 동일하게 나타날 수는 없을 것이다.

기하학적인 회화에 있어 본질적인 개념과 목적을 가지고 있어도 평면은 직선과 곡선, 색채의 분할로 규정 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작가는 여전히 빅뱅의 현상처럼 화폭을 밝고 선명한 스펙트럼의 중성적인 색환으로 존재의 본질을 이미지와 형태로 빗대어 형상화 한다. 특히 화면을 거스르지 않는 균형 있는 색채와 기하학적인 구성으로 화면에 동양적인 감성의 지평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구성의 묘미를 중심으로 한 동시성의 색상과 색채조형, 원의 구성, 리듬 등은 이한희만의 색채 감각으로 주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보다 그의 언어가 되기 위해 이제는 이러한 형식조차도 넘어야 할 시간이 기다리고 있음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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