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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과 재치 ‘미술계의 출산드라’

김종근

‘비싼 그림 값의 작품이 반드시 좋은 작품인가’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기 있는 작가의 그림값이 모두 비싸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림값이 비싼 리스트 10대 작가에 꼽히는 보테로가 그 예이다.

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좋아할까. 그의 그림에는 유머와 가벼운 풍자,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켜 잡는 위트와 기발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유명 작가들이 풍요로운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보테로는 1932년, 가난으로 뒤덮여 있는 남미의 콜롬비아 메델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에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았고 19세에는 보고타로 이주하면서 그는 유화, 수채화 데생 25점으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처음 그는 이탈리아 화가 만테냐의 약간 뚱뚱한 그림에 매료됐다. 이듬해 콜롬비아 살롱전에서 국가상을 받은 그는 그 상금으로 스페인 마드리드로 갔다. 거기서 미술사가인 리오넬 벤추리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론’을 보고 이탈리아 거장들의 예술세계에 빠졌다.

그는 유명한 거장들의 그림을 베끼는 것으로 예술을 시작했다. 벨라스케즈나 티티안, 루벤스 고야 등의 모티브 그림이 모두 이렇게 탄생됐다.

그의 나이 31세에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12세의 모나리자’가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되면서 세계의 인기 작가로 떠올랐다.

루브르의 명화들은 보테로의 손을 거쳐가면서 마른 인간에서 살찐 비만의 보테로식 사람들로 변신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반아이크의 ‘아르노피니의 초상’들도 그러했다.

그는 보나르의 영향 탓으로 목욕탕의 풍경과, 화장하는 여인을 즐겨 그렸다. 물론 사과나 바나나 정물, 신부, 수녀, 그리고 그가 어릴 때 다녔던 투우학교의 투우풍경도 시리즈로 제작했다.

표현에 있어서는 콜롬비아의 상징 녹색과 빨강의 민족적인 색채를 사용하면서 조국의 현실을 설명할 수 없는 웃음으로 비틀어 놓기도 했다.

이 작품은 방금 목욕을 끝내고 돌아온 넉넉하고 빵빵한 여인 앞에 왜소하게 누워 있는 남자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마치 잠든 척(?)하는 남자 앞에 버티고 있는 이 육감적인 여인, 그 여인은 자신이 목욕하는 사이에 잠든 남자를 보고 어이없는 듯 수건을 잡고 망연자실하게 서 있다. 얼굴 표정을 보지 않아도 그 모습이 이미 충분히 그려진다. 이러한 구도는 보테로가 가장 잘 써먹는 대표적인 트레이드마크다.

코믹한 상황설정에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고 있는 보테로는 섹스를 연상시키는 옷벗은 장면을 익살스럽고 경쾌한 터치로 그려낸다. 실제 저 여인이 침대에 올라간다면 침대가 무너지지 않을까. 화가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보테로

화가들 가운데에는 정말 변두리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의 대통령보다 더 유명한 이들이 더러 있다. 멕시코의 프리다 카를로나 콜롬비아 출신의 페르난도 보테로가 그런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실제 보테로는 그 나라의 대통령보다 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성공한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보테로도 1932년 가난한 남미 콜롬비아 메들린의 몰락해가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궁핍하고 고독했던 어린 시절 투우학교에 다녔고, 고등학교 때에는 잡지에 데생을 실어서 학비를 충당해야 했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 보테로. 그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포기와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현대미술의 중요한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 한 군데도 없는 콜롬비아, 경제적 빈곤과 현실을 볼 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콜롬비아에는 어떤 그림도 없었다. 어떤 그림도 보지 못한 채 나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교회에서 본 성모상과 복사판들이 전부였고 그것이 우리들에게는 아름다움이었다고 했다.” 그는 보고타로 이주하면서 만테냐의 팽창된 스타일의 그림을 보고 모든 그림을 부풀려 그릴 것에 착안했다. 곧 루브르 미술관의 루벤스나 고야 같은 거장들의 명화를 베끼기 시작했다. 그는 한때 브라크의 정물이나, 키리코, 마티스 등의 영향을 받았다. 뉴욕으로 건너가서는 폴록과 드쿠닝의 추상표현주의 그림에 쇼크를 받아 고전주의와 표현주의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미스 루벤스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그는 그 특유의 인물의 에로틱함과 유머러스한 센스를 발휘했다. 그는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반아이크의 “아르노피니의 초상”은 물론 고흐의 그림까지 가져다 보테로 스타일로 만들었다 . 오르세이나 루브르 박물관의 명화들은 보테로의 손을 거쳐가면서 날씬한 여인은 살찐 배로 다이어트가 불가능한 전체 비만의 보테로 가족으로 변신했다.

그의 나이 31세에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12세의 모나리자”가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되면서 세계의 인기 작가로 떠올랐던 보테로의 인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전 세계 미술애호가나 콜렉터들의 러브콜을 받았고 급기야는 세계 10대 작가의 비싼 그림 값 작가로 떠올랐다. 여기 “애인들”이란 그림은 보테로가 1984년 파리에서 이탈리아로 아틀리에를 옮기면서 투우장에 열심히 드나들던 때의 한 작품이다. 그의 전형적인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경쾌한 에로티시즘이 풍부하게 가미된 그림으로 애인들의 사랑스런 모습을 담고 있다. 다분히 사진을 찍는 포즈처럼 남자의 다리에 걸터앉은 여인의 벗은 몸매와 금발의 머리,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 그리고 빨간 머리띠와 빨간 시트, 핑크빛 벽지와 조명이 이 그림의 에로스적인 분위기를 한층 돋워준다.

앞에 있는 두 개의 배는 그가 즐겨 그린 테마로 이제 곧 배를 먹어야 할 차례라는 것을 암시해 주는데, 흥미로운 것은 여자의 음모 묘사에서 보이는 앙증맞은 표현이다. 남녀의 몸매 또한 볼만하다. 언제나 그의 그림에는 비대할 정도로 뚱뚱한 남자와 여인이 함께 침대에 있는 장면이 종종 있다. 이러한 풍경은 주로 그가 보나르의 영향을 받아 그리기 시작한 목욕탕 시리즈의 한 장면으로 보여진다. 애인이라고 하지만 벌거벗고 있는 남녀의 표정이나 방의 분위기로 보아 연인보다는 유흥가나 유곽의 냄새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보테로가 가장 잘 써먹는 대표적인 구성법으로, 섹스와 에로티시즘을 연상시키는 익살스럽고 경쾌한 터치의 구성으로 짜여진 명작이다. 실제 저 남녀가 침대에 올라간다면 작은 침대가 무너지지 않을까. 그의 그림을 보면 난 그게 늘 걱정이다.

출처 : 스포츠칸 2005.11.14 / 미술속의 에로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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