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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봉 / 영원한 시간성과 오브제의 조화 .

김종근

“나는 나의 작품에 “영원한 시간성”을 담고 싶었다. 새로운 것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지속 될수록 이쪽저쪽 눈치만 보는, 나의 간절한 얘기보다는 곁눈질에만 익숙해진 나 자신을 보았다. 목마르다, 공허하다. 이제는 미술이라는 울타리가 만들어 놓은 멍에를 벗어 던지고, 홀연히 내 식대로 내 생각대로 나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

배수봉이 밝힌 이 작가적 발언은 그의 작품 세계는 물론 그가 작업 해온 과정들의 고뇌와 방향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배수봉은 지금 안동의 폐교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는 몇 년 전의 작업에서 그는 꽃이라든가 과일 등의 자연 모티브를 꾸준하게 다뤄오다가 최근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대상으로 테마를 옮겨왔다. 그런 그의 작업에 테마는 온통 고추가 대부분이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우리가 그의 발언에서 주목할 부분은 영원한 시간성이라는 부분이다. 영원한 시간성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멸의 내용을 다루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성의 의지는 이미 고대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집트인들은 자연 현상이나 동물 등을 신으로 숭배했고, 내세(來世)를 믿는 종교관을 바탕으로 영혼 불멸을 이상으로 간주 한 것처럼 그들은 현세의 것보다는 영생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집트 예술은 영원을 위한 예술로 모두 영원 불멸을 지향하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가는 그러한 시간성을 그의 작업으로 끌어 들인다.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이전처럼 모래시계를 그리지는 않는다. 그는 과거의 정신과 영혼을 현재까지 잇고 싶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원을 향한 이집트의 미술은 기하학적인 규칙성과 자연에 대한 관찰로 예술로 표현할 때 그들이 가장 중요시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완전함이었다. 그러나 배수봉의 작품에는 그 영원성이 과거의 흔적을 가지고 오늘에 다시 불러냄으로서 시간성의 힘을 드러내자는 의도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배경은 과거의 흔적에 대한 표현이 담겨있다. 그러한 영원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원이엄마의 러브레터이다. 왜 그가 갑자기 그런 영원성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가는 그의 작업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 그는 안동에 폐교를 얻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편지는 그곳에서 발견되었다.

1998년 안동시 정상동의 택지개발지구에서 발견된 이응태(1556~1586)의 무덤 속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향한 아내의 애끓는 심정이 담긴 편지와, 남편의 회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자기 머리카락과 삼(麻)을 엮어서 만든 한 켤레의 아름다운 미투리가 발견되어 큰 관심을 끌었다. 편지글을 쓴 이는 '이응태(李應台)'의 부인으로 1586년 남편이 31세 나이로 숨지자, 한지에 글을 쓴 뒤 남편의 관 속에 넣어 둔 것이다. 그러다 1998년 무덤이 발굴되어 412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남편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에 사무친 편지인 이 번역문의 내용을 보면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이런 남편을 잃은 여인의 심정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배수봉은 그의 변치 않는 사랑의 영원의 시간성에 감동, 그 사라의 변치 않음에 주목 한다. 그가 실제적으로 화면 위에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은 고추이지만 그는 그 이면에 그러한 시간의 영원성에 관심을 표명한다.

이 그림에는 원이 엄마가 썼던 그 편지가 바탕화면에 일일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 삼이나 모시 등으로 짚신처럼 삼은 신 지푸라기로 만든 짚신보다 정교한 서민층의 미투리 같은 꽃신이 놓여있다. 이 작품에도 배경에 많은 글씨들이 새겨져 있는데 다른 그림에는 훈민정음이 있는가 하면 도산 안창호의 글귀들이 실제작가가 글씨를 찾아 원문에 가깝게 새겨 놓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그가 과거에 혹은 이전에 있었던 것에 대한 영속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배경과 오브제로 재래적인 도구들을 사용한다. 항아리라든가 나무로 만든 소반으로 화면의 중심에 배치한다. 그러나 그 중심에 언제나 고추가 놓여있다. 그 붉은 빛의 고추들은 사각의 나무 소반 속에 놓여 있거나 그릇에 놓여있다. 뿐만 아니라 풋고추와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준다. 그 묘한 분위기란 마치 남녀를 상징이라도 하듯이 놓여 있다. 뿐만 아니라 흰 사시그릇에 홍시가 놓여있기도 하다. 또 어느 작품에는 마고동천이라는 안동의 운안동 마을 뒤 높다란 절벽과 그 일대에는 솔숲이 울창하고 골짜기를 흘러내린 맑은 냇물이 폭포를 이루고 아름다운 천석(泉石)이 절경을 이루었다 한다. 옛날에 마고선녀(麻姑仙女)가 내려와 이곳 폭포 아래서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지역을 나비와 함께 묘사하고 있다.

아직 그가 집약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고추와 정물들의 풍경이 그가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시간성과 영원이라는 개념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또한 아직도 부분적으로 사실주의의 오브제 이상의 의미와 개념을 주기에 그 아쉬운 부분이 있다. 즉 여전히 고추는 잘 그린 고추라는 정물적 이미지가 크며 철학적 세계를 드러내기에는 메시지가 약하다. 그러나 작가가 강조하듯이 “명멸하는 빛과 그림자.” 이것보다 더 명백한 시간적 증거가 어디 있으랴. 촌각의 시간이 모여 영원한 시간이 됨을 이하리의 자연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래! 영원한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짧은 시간의 반복만이 영원할 뿐이다. 망막에 스쳐지나가는 사소한 모든 것을 “영원한 시간성”의 다른 이름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그의 주장처럼 그는 그러한 이미지와 개념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의 뜨거운 열정과 노력이 그러한 명료한 메시지를 창조해 낼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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