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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인형에 중독 된 목인박물관 관장 김의광

김종근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나는 제주에 사는 작가 한분과 함께 설록차 박물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차를 마시고 주변에 한 집을 방문했는데 그곳에 수없이 마당 가득 많은 옹기와 독 항아리를 200 여 개 정도를 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 그는 인사동 목인박물관 관장이 되어 나타났다.


오랜만입니다. 가끔 뵈었지만 이렇게 시간 내서 뵙기란 처음이지요. 제주도에서 뵙고 또 이제는 아주 서울의 명소로 떠오른 커피 프린스 1호점 산모퉁이 카페에서 뵙고 이제는 회장에서 관장님으로 요즈음 박물관은 어떠신지요? 재미있는 컬렉션이 많은 데 그간의 근황과 컬렉션을 시작하게 된 동기 좀 말씀해주시지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우표를 수집을 하는 등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어요. 그러던 1970년대 어느 날, 미 8군 외국인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 민속예술품인 반다지를 갖고 있더라고요. 그것을 보고 상당히 큰 문화적인 쇼크를 받았어요. 마침 제가 태평양에 근무하며 용기 패키지를 만드는 부서에서 일을 할 때였는데 그래서 출근해서 전날 이야기를 하니까 동료가 인사동, 청계천 6가 중앙시장 등을 소개 해줍디다. 그래서 당장 찾아가서 사서 모으기 시작 했지요. 그러다 이게 박물관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상여에 쓰이는 목인들을 모으게 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나요?

언젠가 월출산 차 밭에 갔을 때였어요. 상여가 나가는데 그게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후 민속예술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처음엔 관심이 가는 민속 예술품부터 모으기 시작했지요. 아마 당시에 내 월급이 8만원이었는데 그때 반닫이가 8만원이었어요. 내가 서울 사람이라서 처음 산 것이 호롱불 이었고 초등학교 때는 노리개도 산 기억이 있어요. 한 10년쯤 지났을까? 그는 어느 시골 마을에 갔다가 인형 하나를 발견했다. 신당 인형처럼 보이는 것이었는데 얼굴에 주름이 많이 가 있는 매력적인 인형인데 그것이 목인 컬렉션의 시작이었지요.


제가 알기로는 미술 쪽에 일을 하신 것도 아니고 일찍부터 그림과 골동을 좋아하셨다고 알려져 있는데 관장님 본인 소개도 간단히 부탁합니다.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을 하고 대학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은 후, 1975년 (주)태평양에 입사했지요. 1980년부터 설록차 사업을 맡아 했으며 태평양 장원㈜ 전무, 장원산업㈜ 회장 등을 거쳤어요. 그러다 2004년 녹차제품을 생산하는 장원산업의 회장으로 직장생활을 마감하고는 1950년대에 지어진 인사동의 양옥 건물을 마련해 서울 인사동에 목인박물관을 열게 됐다.


부친은 이승만 대통령 재임기에 장관직을 수행했던 김일환 씨로 알려져 있는데 ....

에이 뭐 그런것가지고.. 오히려 ‘녹차’하면 떠올리는 설록차와 제주도의 녹차박물관 ‘오설록’을 만드는 일에 제가 일조했지요. 아버지의 병풍이 가르쳐준 것 초등학생 시절 우표를 수집했던 추억이 컬렉션의 전부였어요. 아마 우리 민예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아버지가 물려준 병풍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그 병풍은 나중에 이화여대박물관에 기증을 했지만.....
그렇지만 당시에도 도자기나 서화는 비싸서 엄두를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인사동과 중앙시장 등을 다니며 민예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그는 회사 일로 찾은 지방 출장지에서도 그곳 민속품을 챙겼다. 그러다 목인의 아름다움에 눈뜬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모으기 시작 했어요. 그러다 1994년 전후 200여개 정도를 한번 에 준비할 기회가 있어서 수집하게 되었지요.

태평양 화장품 개발부에 근무할 당시, 그 친구들의 추천과 소개로 전통 민예품들을 보는 눈이 생겼고 이때부터 하나씩 물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월급쟁이가 고가의 골동품을 모으기는 쉽지는 않았으므로, 주로 지방으로 다니며 민예품 수집에 몰두했다.



관장님 어떻게 하다 이런 목인을 모으게 되셨지요?
모으다 보면 어떤 에피소드 같은 것이 있을 텐데 소개 해주지요.

네팔에 가서 한 컨테이너의 나무 인형들을 산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목물들에 흙이 묻어 있다 해서 다시 돌려보내서 배로 다시 가져오는 우여곡절도 있었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공짜나 다름없는 싼 값을 달라고 해서 재빨리 그 인형을 사들고 나왔다. 막상 인형을 샀지만, 아무래도 양반들의 장난감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연구해보니 바로 ‘목인木人’이었다. 이때부터 민예품 가운데에서도 목인만을 중심으로 모으게 되었지요. 그러다 . 내가 반평생 모은 목인들을 혼자서 보고 즐기는 것보다는 더 많은 이들이 잊혀져가는 우리의 전통을 같이 보았으면 좋겠다 해서 이 박물관을 만들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목인이 무엇이며 어떤 예술적 가치가 잇는지요.

목인(木人)이란 목우라고도 하는데 나무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말하지요. 특히 목인은 관혼상제, 일상생활, 불교에 사용되는 목인 등 실생활에 사용되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를 통해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사용됐던 목인은 당시의 생활풍습과 신앙, 문화 등을 알 수 있으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우리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지요. 우리 조상들의 웃음과 눈물이 해학과 풍자가 그대로 묻어 있지요. 외국 사람도 한국 문화를 알아보고 음미하는데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뿌리를 모른척해서야 되겠냐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우리 조상들의 유물을 결정적으로 모으게 되었지요.


여러 종류의 인형들과 나라별로 정리가 되었는데 컬렉션 중에서 재미있고 흥미 있는 것을 소개 해주신다면 ?

영화 ‘왕의 남자’로 유명한 줄타기 하는 목인,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붉은 치우천왕, 첩과 가까이 있는 남편에게 눈을 흘기는 본처 목인, 아들을 손꼽아 바라는 부부 목인에, 아들을 바라는 부부의 목인, 호랑이를 탄 목인, 재주부리는 광대 목인까지, 박물관에 전시된 목인들의 표정이 재미있으면서도 다양하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하고 투박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정겹고 옛 것이라기 하기에는 정서가 현대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세월만큼이나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는 것도 있지만,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연상하는 데엔 부족함이 없다. 연꽃, 학, 닭, 기러기, 사당패, 가슴을 드러낸 기생, 봉황탄 어린이 등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작품들도 있다.



목인이 무엇이지요 그리고 용도는 ?

목인은 나무로 만든 사람 모양의 조각을 아우르는 말로, 크게 보면 마을 어귀에 세워졌던 장승, 절이나 신당 앞에 모셨던 동자상, 부처상 등도 전부 다 목인이지요. 특히 상여의 난간을 장식하는 꼭두는 현세의 기쁨과 슬픔, 죽은 자에 대한 애도와 명복의 뜻을 담은 것으로, 당시 옛사람들의 생활을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예를 들면 여기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광대에는 망자(亡者)를 즐겁게 해주고자 하는 소망이지요. 다정하게 손잡은 남자와 여자 꼭두는 전생에 부부의 화목을 상징하는 것이고, 관복을 입은 선비의 모습은 벼슬길에 오른 것을 나타내지요.


대략 이런 것들은 시대가 어떻게 되는지요.

대부분 조선시대 중기에서부터 근대까지 만들어진 것인데, 시대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과 다른 형태를 지닌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목인에는 죽은 자를 저승길까지 안전하게 호위해 주고자 하는 마음, 이승에서의 삶을 기억하고 저승에서의 삶을 기원하는 옛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이상한 골동품을 사들고 오거나 박물관을 만드실 때 고생이 많이 하셨을 텐데요.
많은 콜렉터들이 공통적으로 부인 몰래 가격을 속이거나 사서 놓았다가 나중에 가져오는 등
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데 관장님은 ?

그래요. 결혼해서 내가 낡고 헌 고가구를 집으로 하나씩 갖고 들어올 때면, 아내는 집 안 가득 쌓여만 가는 골동품 때문에 처음에는 좀 그랬어요. 그래서 제 고민도 시작 됐고요. 두 달 이상 고민하다 집사람과 외국 여행을 가게 됐는데 거기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은퇴 후에는 박물관을 하자’는 의견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람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게 되었지요.” 분위기 탓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 우리나라 민예품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의 탈, 중국 앤티크 가구, 티베트 및 캄보디아, 미얀마 등 아시아 여러 지역의 조각품까지 명실상부한 목인 전문 박물관이 되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집사람이 도와줘서 고맙고 아주 많이 도움이 되고 집사람도 큰 낙이 되었지요.


그냥 박물관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도 가지고 있지요. 개관 기념전으로 열린 ‘전통으로부터의 사유’전에선 평소에 좋아하는 분들 송수남, 이왈종, 김병종, 김선두, 문봉선 등 한국 현대미술에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지요.

소장품 가운데 명품 목인으로 꼽는 것은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살판’, 영화 <왕의 남자>의 광대처럼 줄타기를 하는 ‘어름’, 한 세트로 모인 광대 가족 등이 이지요.
오래 전부터 간직해온 박물관의 꿈 “한 번은 백여 개쯤 되는 목인이 한꺼번에 나온 적이 있어요. 그걸 사려면 목돈이 필요했고 또 박물관도 열어야 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저는 그걸 공공시설의 장식용품으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에게 구입을 권했죠.



전부 몇 점 정도 소장하고 계신지요.

목인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국내외 것을 모으면 대략 8천여 점인데 조선시대 후기부터 1960년대 사이에 국내에서 제작된 나무 조각 상입니다. 해외 목인도 3천여 점쯤 소장하고 있는데 보시다시피 공간이 작아 전시할 수 없어 분산되어 소장하고 있습니다.


여기를 방문하는 관람객들 한데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또 관계기관에 한마디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기회에 해주시죠.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무료 관람인데 약간 걱정이 되요, 정부에서 지원은 부족하고 그런데 직원 월급 하나 정도 줄 정도인데 일반인들이 입장료 내는 것을 아까워해요. 돈을 내고 보는 문화에 익숙해졌으면 해요. 그리고 미술관이나 공공문화기관은 문화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간판을 좀 더 걸 수 있는 배려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대중교통수단에 외국처럼 알려주면 좋겠고요. 기업이 문화에 투자하는 것을 좀 따뜻하게 바라보아야 할 마인드나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결국 애장품은 모을 때까지가 우리 것이지, 박물관에 모인 후에는 모두가 여러분의 것이죠. 30여 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우리 식구들이 이제 밝은 빛을 받으니 마음이 너무 좋습니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즐기는 열린 박물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무로 만들어진 국내 목인을 비롯한 조각상 5천여 점과 해외 3천여 점 을 소장하고 있는 목인박물관은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목인 전문 박물관이군요. 아마도 독일이나 외국에도 이런 것은 드문 것으로 알고 있는데 ?

네 없어요. 우리가 규모는 작지만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갤러리, 지하 라운지로 구성되어 있어 아기자기 합니다. 그리고 관람 후에는 멋지게 꾸며진 옥상 정원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후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소장품들을 통해서는 각 시대의 생활상과 의식, 문화, 복식 등을 이해할 수 있어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좋은 학습장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큰 전시 계획이나 프로젝트가 있으신지요,

네 있어요. 우선 전시로는 중국가면 전시 등 이후에 여름경에 올해가 소의 해라 소와 말을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 중입니다. 소도 웃고 말도 웃다 뭐 이런 것으로 한번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좀 더 알차고 규모를 키워 볼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밝히기에는 아직 좀 이릅니다. 후에 알려드리지요. 지금은 산모퉁이 카페 부암정에 이왈종 선생 작품이나 하나 걸어 놓는 것이 소박한 꿈입니다.


인터뷰 김종근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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