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김병종 / 황홀한 화가의 여행중독

김종근

김병종이 돌아왔다. 1980년대 사회 참여 작품인 바보 예수시리즈를 그리다가 1989년 연
탄가스 중독으로 사경을 헤매고 건강을 찾은 뒤,그는 생명의 노래 시리즈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정확하게 20년이 흘렀다. 지독하게도 동서로 그림여행을 찾아 떠다니던 화폭의 시인 어쩌면 화가라는 이름보다 화첩기행의 작가로 더 세간에 잘 알려진 김병종, 그가 이제는 세계여행의 종착역이라 말하는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와 몰타를 잇는 북아프리카 일대와 카리브 연안을 샅샅이 여행하면서 그가 눈에 담아둔 색채의 감동을 ‘길 위에서-황홀’ 전이란 이름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들의 풍경은 정말 아름답고 황홀하다,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몰타…. 북아프리카의 자
연과 사람 냄새나는 그의 그림에는 그가 바라다보는 눈빛과 인간이 간단없이 묻어난다. 야자수 아래 젖가슴을 드러내고 춤추는 무희, 하얀 모스크 앞에 피어난 순결 같은 새빨간 꽃들, 눈이 시려 차라라 눈부신 에메랄드의 고요한 바다, 그리고 말없이 떼 지어 다니는 물고기들, 바다로 수시로 뛰어드는 그의 어린 시절 같은 아이들 그들을 모두 데리고 그가 서울로 돌아왔다. 2006년과 2007년 그는 안식년을 맞아 1년 동안 남미에 머무르며 남미와 아프리카를 향한 연가를 불러왔다. 그러고 보니 이십여 년 이상 생명의 노래를 화폭에서 불러 온 것이다. 천성이 마음여린 그는 아프리카 문화와 유럽 문화의 경계에 매료되어, 신비하고 독특한 색채의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그만의 시적인 언어로 화폭 위에 쏟아냈다. 이제 그는 고백한다, '모든 생명은 서로 바라보다가 마음이 이어지게 마련'이라며 '북아프리카 등 제3세계 역시 언어 이전에 시선교감을 하다 보면 따듯한 생명의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고 마치 생명의 노래로 그의 예술세계를 꽃 피웠던 그가 이번에는 아주 유혹적인 감탄사 ‘황홀’이란 주제로 그 속에 파묻힌것이다.
그의 전 작품을 보면 이번에 그의 화두는 북아프리카의 자연과 일상이다. 그 황홀 속에는 그가 화가라는 이유로 무책임하게 빚진 태양의 밝은 빛. 그리고 그가 다닌 흔적의 바닷가 길목에서 틈틈이 금수로 수놓은 듯 한 풍광과 마음속에 담은 인상적인 곳을 사진에 담아 스
케치 작업의 과정을 거치며 되새김질한 것들로 하나같이 강렬한 원색의 축제를 보여준다.

그는 언제나 빛이 현란하게 춤추는 작렬의 감동에 묻어 산다. 2008년 북아프리카로 발걸음
을 돌려 그곳에서 물감을 그대로 흩뜨려 놓은 듯 한 원색의 햇빛에 풍경도 그러했다. 그래서 이들의 햇빛과 색채가 빚어내는 조화는 아름답다. 김병종은 일찍이 서정적이고 센티멘털에 문학적인 감성에 그의 예술을 뿌리 내린 작가이다 .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그를 화폭의 시인이라고 그림 앞에 서 그는 새소리를 색채로 놀래키는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물감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국적인 풍경의 진한 꽃향기를 코끝으로 느끼지 않고 색채로 노래한다. 그는 쪽빛 바다의 색채에 태양이 변덕을 부리는 파도에 옷을 벗은 어린 아이들을 불러 세웠다.

파도가 출렁이는 푸른 바다 속에는 양 방향으로 일제히 행진하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 이번 모로코에서 발견한 〈마조렐 정원〉의 나무와 꽃이 전해주는 생명력에 그는 넋을 놓고 말았다. 그곳이 바로 세계적인 디자이너였던 이브 생 로랑의 것으로 그에게 무수한 패션과 예술의 영감을 준 곳인 때문이다. 모로코에서 본 마조렐의 정원, 그는 거기서 황홀의 덩어리를 느낀다고 했다. 이 이슬람식 정원에서 원색의 수많은 나무와 꽃들이 뿜어대는 영기에 취해 '초록색이 그토록 강렬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술회한다. 디자이너 이브생 로랑이 생전에 몹시 사랑해 화장한 자신의 유해를 이 정원에 뿌려달라는 유언은 그래서 김병종의 그림에서도 애틋하다. 그는 도처에 그 헤픈 뜨거움을 털어 놓는다. 모로코·튀니지·알제리 등 북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여행을 통해 색을 연구해 보고 싶다”고 한다든가.
〈시디브사이드〉는 튀니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춘기적 센티
멘털리즘 . 그는 또 시디브사이드에서 지중해의 튀니지 블루(blue)를 발견한다. 정말 여름의 푸른 녹음을 풀어 놓은 듯 신비롭고 경쾌함에 가득 찬 물색으로 예술가가 가지는 색채의 조화 튀니지의 블루와 화이트로 감탄사를 찍고 있다. 그가 화폭에서 풀어낸〈튀니지 기행 1〉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감각적으로 찍어내 자연스럽게 번진 붉은 꽃에서 생명과 한없이 교감한다. 그가 '생명의 절정에서 순간적으로 개화하는 모습을 그렸다'는 동양화 필법으로 어떻게 서양의 풍광을 표현해내는지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흥미롭다. 알제리는 한 때 문학의 끈을 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하던 “겨울기행” 의 시 같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체취를 느끼기로 할 만큼 중독성이 잇는 모티브이다. 그가 알제리 벨쿠르라는 극빈자 동네를 찾아가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책상에 앉아서 추억을 회상하는 이유이다.

이처럼 그의 그림에는 예외 없이 신비하고 독특한 색채의 아름다움과 역동성이 있다. 「히잡」아래 가려진 감출 수 없는 본능의 외롭고 유혹적인 눈빛들도 화면 전체에서 살아난다. 원색의 수많은 나무와 꽃들이 뿜어 대는 향기에 추해 이제 여행은 끝났다. 그러나 아직도 그 황홀한 풍경들은 눈앞에 잔상으로 남아 간단없이 떠오른다. 그 떠오른 풍경들은 화폭에 담아내는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그가 떠나는 우리와의 동행은 다시 시작되는 셈이다. 그의 그림 앞에 서 있노라면 새소리가 들린다. 이국적인 꽃의 진한 향내가 코끝에 스미는 듯하다. 그러나 길 위의 화가 김병종은 아직 이국적 분위기와 취향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동양의 정신성과 서양의 표현력을 아우르는 여백의 미와 색채의 황홀함을 섞어 정신을 중요시하는 마음속의 그림으로 담아낸다.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 비움과 채움, 순수함과 기운생동이 한 화면에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은 단아 김병종의 황홀한 중독 ,그의 숨길 수 없는 매력이다 .이제 좀 더 고요한 마음으로 화폭에 오랫동안 머무른다면 그의 여행은 어떠 했을까?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