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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미술에 미치다. 컬렉터 정해광

김종근

근래 아프리카 조각 컬렉션과 전시, 아프리카 미술의 현장을 책으로 출판하여 주목 받고 있다. 자기소개를 부탁하고, 어떻게 아프리카 컬렉션을 하게 되었는지 듣고 싶다.
나는 여주 태생으로 시인을 꿈꿔온 공무원 아버지 밑에 2남 1녀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배재고등학교에서는 낙제를 할 정도로 사고 뭉치였고, 유도를 배우기도 했다. 그런데 원래부터 무엇인가를 모으는 컬렉터로 태어난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동내 아이들 구슬 3만개를 모을 정도로 악착같았고, 5원짜리 동전을 모아 지금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로 지독하다. 또 고등학교 때는 여고 아이들과 미팅을 하면서 알고 지낸 여고생의 배지를 40개씩이나 컬렉션 할 정도였는데, 이처럼 모으는 데는 이미 일가견이 있었던 것 같다.

철학을 전공한 교수가 미술관을 만든 것은 별 다른 취미로 보이는데, 본인의 이력을 약간 소개 한다면?
원래 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고, 사물놀이 등에 좀 빠졌다가 1989년 3월에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를 연구하러 스페인에 유학을 갔다. 스페인의 마드리드국립대학(Univ. Complutense)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97년 4월까지 있었다. 한국인에게 아프리카를 소개하겠다는 목적으로 지난해 미술관을 사재를 털어 열었다.

대체로 외국에서 유학을 하거나 벼룩시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컬렉션의 유혹에서 못 빠져 나오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나 사고 또 귀국할 때는 어느 정도 모았는지?
좌우지간 컬렉션에는 뭐가 있는 것 같다. 1989년 스페인 유학시절부터 우연히 마드리드 벼룩시장에서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조각을 사면서 매력에 빠져 모으기 시작했는데, 귀국할 때 이미 약 200여점의 작품을 수집 할 정도로 미쳐 있었다. 그럼 마드리드에서 컬렉터로서 제일 처음 컬렉션 한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
1989년 어느 날 벼룩시장에 들렀다가 나무로 깎은 노인 상을 발견 했는데, 이 작품인데 보자마자 필이 꽂혔다. 당시 마드리드 국립대에서 철학을 전공하던 나는 시공을 초월한 듯한 철학적인 분위기에 반했는데, 그 때 가격이 우리 돈으로 거의 30만 원 정도였다. 학생 신분으로는 참 큰 돈 이었다. 거의 3개월 동안 비스킷과 코코아로 연명하며 돈을 모아 결국 작품을 손에 넣었는데, 이게 시작이었다. 유학생활 9년 동안 틈나는 대로 벼룩시장을 찾아다니며 조각을 샀고, 마음에 들면 밥값을 절약해 돈을 만들어 손에 넣었다.

그럼 아프리카는 몇 번이나 다녔는지, 현재는 대략 몇 점 정도 모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작품들은 어디다 어떻게 보관 하는지?
아프리카 조각 800여점, 회화 150점 등 약 1000여 점 정도에 달한다. 1989년 7월부터 모로코의 방문을 계기로 지금까지 20여 차례 정도에 걸쳐 아프리카를 여행했다. 아프리카 조각은 대략 서부에 있고 동부에는 없는데 세네갈만 3번, 케냐는 10번 이상, 가난 10번, 콩고는 4번, 말리는 3번 정도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이도 다녔다. 작품 보관은 전시장에 200여점 정도, 그리고 진열장에 200여점, 나머지는 집 여기저기에 보관하고 있다.

이 정도 작품을 사서 한국에 가져 오려면 세관 통관 등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있을 텐데.
대략 서울, 홍콩, 요하네스버그 등을 거쳐 다녀오는데 세관에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다. 뭐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것 사오느냐고. 그래서 문화철학을 가리키는 교수인데 교육용으로 학생들에게 보여 주려고 한다고 해서 지금 까지 모았다. 이태리에서는 산 조각들을 통째로 도둑들에게 털리는 사건도 있었다. 그래서 이게 아니다 싶어 잠시 포기하기도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이것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냐, 가나공화국, 코트디브아르, 짐바브웨, 자이레, 부르키나파소 등 아프리카 전역을, 조각을 찾아 원주민 마을과 벼룩시장을 전전해서 산 것이다. 정말 어떤 때는 신문지 한 장으로 밤을 새고, 털털거리는 자동차에 몸을 싣고 초원을 건넜다. 영어와 불어에 손짓 발짓을 동원해 작품을 산 작품들이다.

어쩌다 아프리카 미술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는지?
나는 철학을 전공하다가 진솔하고 강렬한 아프리카 미술에 빠져들었는데 아프리카 조각과 그림들은 인간을 새롭게 이해하는 방식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번이라도 아프리카 미술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 강렬한 ‘원색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들은 머리로 느끼고 가슴으로 생각하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뇌, 현실 세계로 끌어내린 신들의 중심에 인간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신을 믿지만, 신을 절대화시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을 ‘성전’에 가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 즉 신성神性을 인간의 심성心性에서 찾으려 한다.

소장품 중에 백과사전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작품도 있다고 알려 졌는데, 어떤 계기로 구입하게 되었는지, 가격과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대부분이 오지인 중서부를 돌아다니며 수집 했는데, 원래 이 작품은 기독교 선교 단체에서 선교 후 목사에게 선물을 준 것이다. 우연히 내가 바자회에서 몇 개월 동안 돈을 모아 산 것이다. 마드리드의 한 가톨릭 선교단체로부터 구입한 물건으로, 이 카메룬의 <바문족 잔 조각>은 세계백과사전에 실릴 정도의 귀한 작품이다, 원래 실린 것을 구입 한 것이 아니라 사고 나서 한참 있다 보니 실려 있더라. 세계적인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작품도 약 80여점 정도 된다.

최근 서울 사간동에 국내 처음으로 아프리카 미술관을 개관 했는데 왜 문을 열었는지 ,또 미술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조각 800점, 회화 150점 등 1000여 점의 아프리카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두 개인 수집품이고, 사람들이 아프리카 미술을 공예품쯤으로 치부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아예 수집품들을 일반에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보통 전시회가 끝나면 작품들이 창고로 들어가 우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들이 애정 결핍 증세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조각 체험실을 마련하고 아프리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산 커피와 차를 무료로 드리게 되었다. 요즘 아프리카 미술을 어떻게 소개하고, 또 어떻게 지내시는지.
지난 2006년부터 인사동 ‘상 갤러리’에서 「아프리카 미술- 인간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하고, 2007년도엔「아프리카 문화 체험전- 가족의 발견」이라는 주제로 ’어린이 예술 마당’에서 전시를 개최하였고, 같은 해 8월 「아프리카 미술-여자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인사아트센터에서 아프리카 미술품을 전시한 바 있다. 사간동에 문을 연 ‘아프리카 미술관’은 달마다 새로운 아프리카 화가들의 그림을 초청하여 회화를 전시한다.
그동안 수집해온 작품들이『아프리카 미술: 미완의 미학: 2006. 다빈치 기프트』,『아프리카 미술: 내전의 기억 그리고 색: 심포지엄』에 수록되어 있다.

마티스나 피카소, 모딜리아니, 쟈코메티 등 많은 현대작가들이 아프리카 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는데?
앞으로 아프리카 미술은 세계 미술에서 한 획을 그을 것이다. 더 이상 서구 미술이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제3세계의 아프리카의 회화나 조각에 눈을 돌려야한다. 아프리카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화폭에 담아내는 자유로움 등 배울 점이 많다.

정관장님의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지?
꿈은 ‘진짜’ 아프리카 조각전을 여는 것. 국내에는 돌조각만 알려져 있지만, 아프리카 조각의 진수는 목조각이다. 진정한 아프리카 예술을 널리 알리고 싶다.

인터뷰 : 김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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