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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커플의 피에타, G. Podgorski 재현의 수사학

김종근

파리에서 남 쪽 40km로 떨어진 시골 밤 12시가 다 되어 그가 사는 집 주변에 도착하자 밤거리에는 유명한 작가들의 벽화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들어선 포드고르스키의 작업실 앞마당에는 회전하는 사진 작업이 눈에 들어왔다. 무대세트는 다시 한 번 우리 시선을 압도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가 해마다 프랑스와 외국의 알려진 혹은 무명의 작가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골목골목에서 나타났다. 이 모든 것을 그가 스튜디오를 만들면서 디렉팅 하고 있었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높은 천정에 조명등이 걸려 있고 정면에는 무엇인가를 위한 하얀 무대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포드고르스키는 1965년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979년에서 1984년 바르소비 미술학교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1984년 프랑스로 이주했다. 1986-1987까지 그가 보여준 두 번째 데생 전시 도록은 이전에 그의 작업의 특징이 무엇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는 거기에서 우리 마음의 상태와 우주의 세계를 드러낸다. 또한 이상과 이미지의 퓨전, 회화적인 것과 시적 리얼리티 사이의 갈등에 주목했다. 이 때 이미 그는 여체의 표현에 주목했다. 그림 하나하나에 작은 시를 나란히 놓을 정도로 그는 감성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는 작가였다. 그러다 평소에 주목했던 여체의 나부 표현은 프랑스 이주 후도 계속 되었다. 그는 전공했던 드로잉과 미술을 포기하고 사진 작업에 뛰어 들었다.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 증언자로 바치고자 그의 회화작업을 포기 한 것이다.

1995년부터 그는 스튜디오를 만들고 잡지와 회사의 광고사진 일을 맡았다. 그는 처음부터 사진작가는 아니었다. 그러다 그는 1998년 말 피에타의 모습을 예술적 모티브로 가져 오면서 그는 미친 듯, 광적 열정으로 누드와 성격 있는 작품들을 찍으면서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집중에 놀라운 열정을 발휘했다. 그것이 바로 피에타 시리즈 이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경건한 마음, 경건한 동정이라는 뜻으로 “신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할 때 이 명사가 쓰인다. 죽은 예수를 마리아가 등 뒤에서 받히고 있는 상으로 상징되는 특히 미술사적으로는 중세 그리스도교 미술에 자주 등장하고 표현되는 주제로, 보통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안은 구도에 열광했다.

보통 죽은 예수를 마리아가 등 뒤에서 받치기도 하고(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 피에타 등), 예수의 시체를 지상에 눕혀 놓은 것도 있으며 (피옴보의 비테르보의 피에타 등), 시신을 둘러싸고 성모 마리아를 비롯해서 막달라 마리아 성자 등이 그 죽음을 애도하는 것도 있는데, 이러한 다양한 ‘피에타’를 오백 쌍의 얼굴로 재구성 했다. 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안은 구도는 그 뛰어난 예술적인 표현이나 번안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 예술가들에 의해 많이 다루어졌다. 예를 들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비롯하여 조반니 벨리니 등의 걸작이 속출했다. 루브르미술관의 15세기 패널화 《아비뇽의 피에타》도 그 중 하나이다.

미술에서 보통 이런 테마의 표현은 성스러운 금요일에 죽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그 시신을 매장하기 직전에 먼저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에 매달려서 통곡했을 것이라고 하는 심정의 시각화로 생각된다. 물론 포도르그스키의 이러한 사진을 통한 재현의 피에타는 그 메시지가 다르다. 그의 피에타는 무려 500쌍이 넘는 많은 모델들을 대상으로 피에타의 모습을 패러디하고 재현 한다. 복면이나 가면을 쓰고 있는 피에타, 여자가 여자를 안고 있는 피에타, 복면을 하고 마치 탈레반의 무장 강도처럼 총을 들고 있는 피에타. 흑인과 흑인 , 흑인과 백인, 이집트 여자풍 분장을 한 피에타에서 모던하고 기괴한 오브제를 든 피에타까지 그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 이러한 제작 스타일은 이미 그가 엄마와 딸들이라는 컨셉으로 몇 년간 작업 한 것을 염두에 두면 결코 그의 시리즈에 참여한 500쌍이라는 엄청난 작업은 예사스럽지 않다. 그의 창조적 사진 찍기는 인간의 창조적 충동에 대한 대상의 재현에 중점을 두는 모방의욕과 정신의 내면성을 추구하려는 예술의욕 두 가지를 다 아우르고 있다. 그것은 보링거(Borringer, 1881-1965)가 말하는 감정이입 충동과 추상 충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회화가 처음에는 전적으로 자연적 대상의 재현에 초점을 둔 사실적 회화에서 출발 한 것처럼 그는 누드의 표현에서 벗어나 그 여체가 주는 시간의 변화가 주는 리얼리티에 탐닉한다.

그에게 사진예술은 단지 인물이나 누드의 충실한 복제 이상의 어떤 것을 겨냥한다. 즉 예술작품이란 최상의 진실과 이상적 미가 군림하는 세계로 영혼을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이 보는 것은 물질이다. 그러나 포드로그스키는 삶속에 속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보며 창조적 시각을 드러낸다. 그러기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이미지 조합으로 피에타 커플의 이미지를 포착해내고 있다. 어쩌면 종교적인 것을 넘어서 현대의 피에타상을 물질 속에 은폐되어 있는 정신을 통해서 가장 내면적인 것, 인간의 영혼에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 것 같다.

포드로그스키 사진은 리얼리티한 모습의 재현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문제는 부차적으로 피에타의 이미지 이후에 오늘 우리시대가 갖는 이미지간의 시간과 현실을 모으고 있다. 조각작품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들과 마찬가지로 사진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그는 사진의 목적 또한 자연을 재현한다는 사물의 외적인 모습의 지각이 아니라 그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피에타의 성격을 현재의 시간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피에타나 얼마와 딸의 모티브적 존재가치는 어떻게 찍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어떠한 컨셉으로 찍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그는 이 21세기형의 피에타의 모습에서 당시 미켈란젤로가 가졌던 삶의 진지하고 참된 모습을 부활하려는 리얼리티의 세계 표현에 도달하고자 하는 전사처럼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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