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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주 / ‘초현실 공간에서 사유적 공간에로’

김종근

이석주,1953년 서울에서 출생, 197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1981년에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했다. 현재 숙명여대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이력은 이렇게 간단하다. 그러나 한국현대미술 속에 이석주의 작업은 결코 간단하고 가볍지 않다. 연극인 이해랑 선생님의 아들로 더 잘 알려졌지만 그는 사실 ‘한국현대미술에서 이석주는 1970년대 한국 하이퍼 리얼리즘 세대의 주역으로 손꼽힌다. 당시는 물론 텍사스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하이퍼 리얼리즘이 강세였지만 그의 작업은 우리만의 정서를 담아 놓은 서정적 극사실 회화의 세계를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30년 이상 줄 곧 극사실이란 작업에 전념해 온 그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극사실 수법을 취하면서 점진적으로 주제를 바꿔왔다.

이석주 작품을 이야기하기 위해 대부분의 평자들은 한결같이 ‘벽’ 연작으로 눈을 돌린다. 그의 벽 작업이 1978년경부터 시작하여 1982년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변화의 속도가 빨랐던 당시 분위기에 비해 비교적 오랜 시기까지 지속된 그의 이 연작은 작품의 완성도와 회화성이라는 측면에서 주목 할 만하다. 초기 청년기의 그의 작업은 리얼한 벽돌에 모습과 그 벽돌에 비친 그림자에 주목했고 후에는 익명이 도시인들 인간들의 뒷모습과 그 삶의 이미지를 테마로 삼았다. 그렇지만 그의 회화 흐름의 중심에는 언제나 조용하게 스며있는 서정성이다. 그 서정성이란 물론 그가 다루고 있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적인 모티브에서 비롯된다. 특히 시계라든가 기차, 단풍잎 흑백 사진등 그의 그림은 누구나가 간직하고 있는 추억을 떠올리는 내면의 풍경을 건드리고 있다. 푸른 하늘의 넓은 공간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기차, 그 일상의 모습에서 출발한 것이 그의 서정적 공간이다.

이제 그는 서서히 사유적 공간으로 들어섰다.
그가 사유적 공간으로 들어섰다는 것은 기존의 말의 자화상적인 모습, 시계라든가 하는 일상적인 오브제 풍경에서 점점 벗어나 아름다운 꽃, 오히려 꽃이라기보다 아름다운 식물에 대한 그의 회화적 관심을 의미한다. 그의 최근 사유적 공간에 테마는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명화속의 인물이나 책표지 등에서 보이는 명화의 부분을 그림 속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앵그르의 여인속 얼굴이나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 소녀 등의 화면에 인용이 그러한 대표적인 형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은 보다 클로즈업된 스타일로 조형적으로는 완벽한 테크닉에다 세련된 구성과 원숙한 표현의 절묘한 배치로 그의 내면의 심경을 감성적으로 드러낸다. ‘때로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는 의자, 들판 아니면 바닷가를 달리는 기차 , 변함없이 그림자가 늘어진 시계, 언제나 . 화면 위를 뒹구는 포플러 잎사귀 등에서 명화 속 인물과 아득한 풍경을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중경이 없이 아득하게 먼 풍경의 아스라함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알려진 인물들의 정겨움이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러한 풍경들은 때로 그의 풍경에 특징처럼 정말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아득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는 서서히 그의 삶속에 숨 쉬고 있는 내면에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삶의 깊이와 아름다운 자연, 식물의 풍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알려져 있다 시피 그의 작업실은 대성리 북한강변에 있다. 그의 작업실에 풍경은 두 가지가 인상적이다. 창밖으로 기차 철로가 있고, 진돗개 두 마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두 가지 사실은 한 때 그의 그림을 지배했던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모티브이었다. 그러나 그는 요즘 과거 한때 시계를 도시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던 고장 난 시계를 접어둔 듯하다. 오히려 도시적인 감성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꽃과 같은 식물, 즉 자연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그것을 그는 매일 화분이 있는 아틀리에 깊숙이 쳐들어오는 햇살 때문이라고 했다.

정말 북한강이 쏟아지듯이 펼쳐진 강변. 그의 화실 차창으로 흰 말이 뛰어 다니고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단풍잎들이 펄럭거리며 얼씬 거린 풍경 그것들이다. 때로 그의 그림에 알 수 없는 예술가의 고독과 향수, 그것은 그가 여전히 근원적인 예술가적 쓸쓸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지금 훨씬 예쁘고 따뜻한 이석주 그림의 전체적인 인상은 대단히 문학적이라 할 만큼 서정적이고 초현실적이다. 말깃을 곧추세운 백마, 아님 황망한 들판을 어디론가 부지런히 질주하는 그 모습들은 그대로 한편의 서정시를 떠올리는 영상미이다. 저 멀리 기차가 연기를 뿜으며 달려가고, 그 사이로 빨간 단풍잎 하나가 바람에 날려 이석주의 화폭 한가운데 하늘을 가로 지른다. 시간은 10시 30분 혹은 1시를 가리키는 고전적인 시계가 아득한 풍경 속에 흐려져 있기 일쑤였던 시계보다 이제는 낡고 닮아빠진 쇼펜아우워의 인생론 같은 퇴색한 헌 책들이 그의 풍경 속에 빈번하게 들어온다.

그가 들려주는 지금의 이미지는 어쩌면 시골 다방의 마담이 건네주는 찻잔처럼 촌스럽지만 짙은 분칠의 냄새를 풍겨준다. 가슴을 붙든다. 오랜 시간과 지나온 흔적을 보여주는 그의 회화적 공간에는 인간이 근원적으로 가지는 슬픔과 애틋함, 그 위에 예술가가 지니고 있는 숙명적인 감정들이 그의 회화를 둘러싸고 있다. 올 6월 그는 새로운 이 작품들로 또 하나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아직도 우리에게 가장 인간적이고 예술가적인 향기를 지닌 화가로 존재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온 열정과 감성을 고스란히 화폭에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남다르게 그의 최근 작품들에 주목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 조형적으로 중요한 나의 전환은 모티브의 하나하나가 조립 재구성’ 된 것이라고 고백한 이석주의 화폭들, 이제 그는 가장 인간다운 향기를 지닌 화가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이것을 그가 사유적 공간이라고 부르는 마지막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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