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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옥의 한국의 환상, 보자기 그리고 보따리

김종근

김은옥은 아름다운 보자기를 정말 진짜 보자기처럼 그리는 재주 있는 젊은 여류작가이다.
그녀의 전 작품을 보노라면 그녀는 우리 전통 보자기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 들어 부쩍 오로지 보자기만을 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보자기는 서민적이고 소박한 그러한 보자기가 아니라 , 전래되는 한국 고유한 것으로 상류층의 미적 효과를 중요시하는 매우 럭셔리한 형태의 보자기이다. 이런 그의 보자기는 우아하고 장식적이며 장엄한 색의 조합으로 그녀가 추구하는 여성적 특질과 개성이 돋보이는 독창적인 이미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이러한 보자기를 그린 것은 아니다. 초기 그의 작품들은 일상적인 정물화의 차원에서 흔히 발견되는 정물화 이었다. 그러다 점진적으로 보자기가 중심이 되는 화풍으로 변화된 그림으로 진행되어 왔다. 거기에는 사과나 기물들이 정물화처럼 중심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간헐적으로 사과나 정물들이 놓여있는 그런 그림들에서 출발한 그의 매끈한 천 그림은 점점 더 화려한 비단 보자기에서 강렬한 붉은 비단보의 색채가 있는 그림으로 변모 되었다. 특별히 반짝이는 천 질감과 빛깔 묘사에 탁월함을 보였던 김은옥의 작품들은 이제 보는것 만으로도 럭셔리한 감정, 마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감정이 넘칠 정도로 귀족감과 화려함을 준다. 천의 질감과 빨간 비단과 금빛 비단 보자기는 이제 단순한 장식의 단계가 아닌 여성의 마음을 담아내는 하나의 도구로 비춰지는데 충분하다. 즉 무엇인가를 곱게 쌓아놓고 기다리는 듯 한 그의 그림들은 분명 어떤 선물을 떠올릴 정도로 상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화려하고 빛나는 빛깔들 , 그 위를 화폭에 화려하게 수놓은 그의 보자기는 분명 전통 보자기 형태를 벗어나 궁중에서나 볼 법한 예의와 격식이 담긴 그런 멋스런 보자기이다. 흔히 생활에 사용된 옷이나 이불 등 기타 침구류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비대칭성 및 비정형화의 특징에 따라 작은 천 조각으로 만드는 것도 아닌 분명한 목적과 용도가 있는 황금빛 보자기이다. 오히려 김은옥의 보자기는 물건을 싸서 예의를 갖추거나 선물을 주는 데 필요한 격식 있는 의례용 보자기에 주목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보자기는 사람과 사람이 정을 나누는 선물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형식으로 ‘싸는 행위’의 보자기의 형식을 지향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한국적이고 여성적인 상징물로서 보자기를 이상적이고 완벽한 도구로 사용한다.

우리는 그의 가지런하고 잘 정돈 된 그러면서도 예쁜 장식성을 지닌 보자기의 정성이 곧 작가 자신의 내면적인 것들을 담아내는 가지런한 여성의 정성일 것이라 착각을 준다. 우리는 그 포장만으로 정성스럽게 포장된 여인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물론 한 때 보자기는 본래 물건을 전달하거나 보관하기 위한 실용적인 도구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보자기는 단순한 도구에 그치지 않고 종교적 염원과 바램을 위한 존경과 예절을 갖추기 위한 의례용 성격 까지도 아우르고 있다. 그녀의 보자기에 ‘福’이나 ‘壽’와 같은 문자를 넣어 무병장수와 부귀 행복을 비는 주술적인 소망도 그러한 맥락에서 보자기의 용도에는 주술적인 것도 있다. 또한 십장생, 용, 봉황 등과 같은 상징적 동물들이 이러한 선물을 주는 자의 예의와 품격이 장식적인 색채와 문양이 함께 하므로 그 의미를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작가 김은옥은 이러한 테마를 극사실의 기법으로 배경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내면서 여성적 의미를 드러내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김은옥의 보자기는 어떤 물건을 포장하는 사물의 차원을 떠나 작가의 내면이 이입된 보편적 언어와는 다른 차원의 상징적 오브제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보자기라는 가장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소재를 유효적절하게 응용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 한국성을 그는 보자기에서 극사실의 테크닉과 화풍으로 꼼꼼하게 재현 한다. 이것은 작가가 그러한 오브제의 표현을 통하여 한국여인의 정서나 내면의 이야기를 보따리로 풀어내는 그만의 방식이고 수사법이다. 그러면서 그는 표현구성에 다각적인 시점을 시도 한다. 위에서 내려다 본 정면의 보자기 그림이 있는가 하면 측면에서 바라다 본 시점의 여러 원근법적 시각들이 동원되고 있다.

그의 그림이 다양한 시점을 바꾸어 가면서 보자기의 형태를 새롭게 표현하는 것은 지루하지 않아 좋다. 그의 그림 소재가 지나치게 단일화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은 듯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그는 이 테마를 가장 한국적이고 이상적인 여성적인 테마로 승화 시킨다. 그러므로 작가의 작업에서 보이는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정성스럽게 싸여진 보자기에는 감추어진 어떤 여인의 향기를 발견하게 된다.

한국의 환상이라는 작품에서 말하듯 이미 소중한 자태를 풍기는 보따리는 화폭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여전히 그는 보자기를 통한 한국 여인의 전통적 내면의 이야기를 보따리로 풀어내고 있는 한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꼽힐 수 있다. 그의 이 명백하고 단아한 이미자는 어쩌면 시대를 뛰어넘어 다시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가슴과 마음으로 전달되어 온다. 그의 그림도 회화적 가치를 가진 그림이지만, 그 속에 담긴 보자기만으로도 재현적 가치를 지닌 훌륭한 작품이다. 아마도 기호와 상징적 가치를 지닌 화려한 장식의 예술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이제 그는 우리의 전통적인 보자기에 아름다움이 담겨있는 조각보에도 관심을 가져보길 권한다.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과 매끈함에만 치중한 표현이 식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집요한 정신과 끈기. 뛰어난 우리의 전통보자기의 조형성과 단순미 그리고 자연스러움 아마도 이러한 세계를 가장 멋있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가 김은옥 말고 또 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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