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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환타지아 -김령의 근작들

김종근

김영의 작품들은 두 가지 점에서 르느아르의 그림과 고백을 생각나게 한다. “나는 누드를 바라본다. 그러면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색 점들이 있다. 나는 그 중에서 내 캔버스 위의 육신을 생동케 해 줄 색 점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그림을 설명할 수가 있다면, 그 그림은 이미 예술이 아닐 것이다.” 인상파 시대 최고의 누드화가인 오퀴스트 르느아르가 100점에 가까운 주옥같은 누드화를 그린 것처럼, 김영도 여인의 탐미적이면서 에로틱한 누드작품에 오랫동안 탐닉하고 이제는 그 아름다운 색점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신이 여성의 가슴을 그와 같이 만들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화가가 되었을까 라고 르느아르가 자문 했던 것처럼 김영도 여체의 아름다움에 빠져 누드에 열정을 바쳤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누드를 잠시 접어두고 꽃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도 누드화를 잘 그리던 화가로서 여체가 주는 아름다움을 보였기에 일견 그의 꽃 그림으로의 변신은 다소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가 누드에서 꽃으로 눈을 돌렸다는 것은 단순히 모티브가 바뀐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재료와 색조에서도 그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그의 그림의 특징은 작은 그림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으로 이루어진다. 다분히 조립의 형태로 완성된 그림들은 흡사 꽃으로 만든 영상사진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 다채롭기 조차 하다. 작은 소품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모자이크로 엮어내는 그 꽃들은 분명 김영에게 유미적인 누드의 시대에서 빠져 나와 자신을 닮은 이상세계에 도달하려는 더 벨벳 같은 그림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왜 그는 누드에서 꽃으로 옮겨 간 것일까? 그는 2006년 경 뉴욕에 다녀오면서 새로운 재료와 기법에 장식품에 유혹을 당했다고 했다. 스티로플을 오려서 부조작업을 하고 그것으로 꽃으로 만든 후 그 위에 반짝거리는 작은 비즈라는 알갱이로 화면을 장식하는 일에 빠진 것이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은 그에게 이 손작업은 이내 그를 신선한 화면 장식에 몰입하게 만들었고, 그 장식은 이전의 회화적 분위기에서 장식성이 강한 보석 같은 꽃 그림으로 변모 했다. 자연스럽게 이 흐름에서 가장 알맞은 테마가 꽃 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그의 놀이정신, 즉 “짓꺼리” 에 대한 숨길 수 없는 그의 마음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그는 이 무수한 꽃들에게 자신의 비밀스런 주문을 걸어두기도 하고, 기호를 은밀하게 감추어 놓는다. 그것은 꽃의 표정에서 읽혀진다. 자신의 감출 수 없는 열정은 붉은 색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욕망은 꽃잎의 형상에서 뜨겁게 일어나며, 평안은 절제된 색상의 안정감에서 보여 진다. 어쩌면 그에게 꽃은 이렇게 자신의 감성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충실한 그릇이자 의인화의 대상인 것이다. 이 점에서 김영은 언제나 거침없이 예술적 실험을 시도하는 작가이다. 최근 그가 공모에서 당선되어 작업한 조형물이나 입체적인 작품들은 그가 얼마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내밀한 호기심과 열망이 큰것을 볼 수 있다.

김영은 기존의 오일로 그려진 꽃을 그리는 방식보다는 그만의 스타일로 꽃을 표현하며 그 아름다운 꽃의 환영에 자신의 감정을 불어 넣거나 이입 시킨다. 그리하여 그의 꽃들은 눈에 비친 즐거움이 그대로 여인과 꽃이라는 아름다운 부케가 되어 르느아르가 말년에 꽃을 그리면서 “이제야 이걸 좀 이해하기 시작했어.'” 라고 되뇌였던 것처럼 기쁜 발견이 된다. 그의 화폭에 담긴 여러 비즈의 색채들이 모여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꽃의 표정은 너무 아름다워 삶의 아름다움을 모조리 빨아들일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사실 지금 김영의 그림은 지금의 꽃을 그려야겠다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잘 그리는 화가, 요술을 부리듯 아름다운 점 하나, 애무하는 듯 한 비즈 알갱이가 모여 독창적인 이미지와 매력으로 아름답게 태어나고 있다. 색조의 섬세한 어울림, 더 명쾌하게 그려내기 힘들 정도의 다채로운 꽃의 하모니 거기에 여자의 우아함과 부드러움, 매력, 그리고 열정의 욕망이 개화한다.
어쩌면 김영은 그 꽃들 속에서 꽃들이 지닌 영혼의 모습까지도 마음속으로 담아 그려내기에 그의 그림은 마법의 장미처럼 우리들을 기쁘게 한다. 장미가 주는 전달하는 그 기쁨이란 지나치지도 않으며 그의 감성이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또한 화폭에 나란히 놓인 꽃들속에는 미적인 질서와 정적인 관능이 꿈틀거리고 있다. 특히 작은 비즈의 결정체가 서로 어울려 빚어내는 화사한 아름다움은 그만이 주는 축복이고 특권이다. 김영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선물은 바로 그 꽃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만약 그가 꽃의 아름다움만을 전하려 했다면 그런 표현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하나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장미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니며 그만의 냄새를 지닌 다양한 색채의 꽃으로 탄생 되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고백 한다. “인간의 삶을 덧없이 시들어 버리는 꽃에 투영한다.” 그는 인생의 덧없음을 한 알 한 알 비즈 알갱이에 담으면서 본디 생명이란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에 불과 하다는 의미를 인간 예술과 삶을 확인한다.
“생의 시작, 우리는 설레임을 안고 기다린다. 그리고 개화. 꽃이 피는 동안 내적인 아픔과동시에 치유 될 수 있는 기쁨을, 빛나는 희망과 같은 감정을 체험 한다. 또한, 꽃은 결실을 예고한다. 그렇게 꽃의 일생이 이어진다. 한숨의 삶. 무상 한 듯도 하지만 그 때문에 삶은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이 표현만큼 그의 비즈로 만든 꽃의 축제를 명쾌하게 정의 할수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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