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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숙경 / 철의 여인, 거미를 만나다

김종근

어느 저널리스트는 변숙경을 가리켜 “쇠를 자르는 여자, 자른 쇠를 다시 잇는 여자, 불꽃 튀기며 틈을 발견하는 여자, 틈으로 잎새를 돋우는 여자, 바람에 내버려두는 여자, 일부러 녹슬게 만드는 여자, 그걸 기다리는 여자, 습기를 빨아들이는 여자, 무게를 지탱하는 여자, 틈을 용접하는 여자, 쇳덩이를 세우는 여자, 우뚝 솟아나는 여자, 녹슨 불편함을 바라보게 하는 여자, 시선을 바꾸는 여자” 라고 묘사 했다. 이 말은 틀리지 않지만 정확하게 그녀는 거미집을 만드는 여자, 인간 거미라는 표현이 맞다. 왜냐하면 그녀는 끊임없이 거미집을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매일 똑같은 거미집을 만들지 않지만 그녀의 작품은 거미집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녀 자신도 거미집과의 인연을 이렇게 기억 했다. 2004년 개인전을 준비하던 중 전시 작품구상으로 밤을 하얗게 새우며 고민 하던 중 자신의 작업실 근처를 산책하다 나는 새벽이슬을 머금은 거미줄을 만난다. 그녀는 마당에 놓인 자신의 작품과 작품 사이를 가로 지른 가느다란 거미줄을 본 것이다. 불규칙적으로 엮어진 그러나 정교한 형태의 거미줄에서 그녀는 섬광처럼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 이것이 변숙경 작품의 근원이다. 그녀는 그것을 새벽에 만났다 하여 ‘새벽일기’라고 불렀다. 어쩌면 예술가인 그녀에게 이러한 절대적 예술적 영감은 숙명적이거나 축복에 속한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언제나 책상 앞에 앉아 기도했다.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언제나 시의 첫 구절을 떠올리는 영감을 달라고 말이다. 변숙경에게 거미줄과의 이러한 극적 상봉은 그 조형적 예술을 아우르는 영광된 항해의 신호이자 나침반이다.

물론 추상미술이나 추상조각의 역사 속에 대부분의 모티브가 자연의 형태에서 빌려 오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거미줄의 선은 완벽하게 기하학적 형태를 지닌 조형으로 이미 그 자체가 충분히 예술적이다. 특히 선과 선이 만나 이루어내는 면의 형태와 조형성은 그 어느 작가가 만든 것보다, 황금 비율 이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룬 걸작이다. 변숙경은 이것을 그의 조형적 예술세계의 화두로 삼았다. 철판과 철판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만나는 이야기는 그의 작업에 중심 스토리이다. 평면에서 만나 분리되고, 때로는 입체에서 선과 선이 만나는 최고의 어울림에 집중하고 탐닉 한다.

그녀는 녹슨 철판 덩어리에서 자연의 이치와 조형의 근본 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피카소는 언제나 그의 작품을 창작이라 하지 않고 자연에서의 발견을 추구한다고 했다. 변숙경은 조각의 원형을 자연이 만들어 놓은 기가 막히도록 절묘한 형태 속에서 끄집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변숙경의 진화는 그 발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 시선을 확대시켜 새로운 ‘선’의 세계를 벽에다 놓기도 하고, 완벽한 입체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방법을 보여 준 것이다. 즉 벽에 걸리는 회화적 부조에서 부조적 입체회화로 공간의 시각적 영역을 확장 시키고 열어 보인 것이다. 그의 작품이 벽에 나란히 퍼즐처럼 걸리는가 하면 독립된 공간 안에 우뚝 존재한다. 그러면서 그가 마지막까지 잃지 않고 견지하는 것은 거미줄의 본질적 형태이다. 물론 그러한 거미줄의 패턴이 작업장의 벽과 벽 사이 틈새를 이어주는 결정적 관계와 같이 하지만 그녀의 키워드는 공간과 선이며 연출은 거미이다. 즉 그것을 신의 도구처럼 형태화 하여 입체 언어로 화려하게 부활시킨다. 이것이 변숙경의 명료한 시각적 형태적 메시지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통하여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단순하게 거미가 만들어 놓은 부산물을 옮겨 놓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거미작가로 세상에 알려진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를 상상 할 수 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공감과 소통을 거미라는 상처받은 영혼의 곤충으로 형상화 하였다.

100세의 여류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에게 <마당> 거미는 내면의 상처이었고, 그녀 자신의 상처에서 출발하며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작품의 원동력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실을 뽑고 바느질을 하는 것과 떼어 놓을 수없는 관계였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거미와 거미줄이었고 마지막으로 거미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 이처럼 변숙경에게 거미줄의 형태는 세상을 향한 복음의 바이블 같은 것이다. “우리 집의 모든 여성들은 바늘을 사용하고 있었다.” 부르주아는 〈마망〉에 대해 '태피스트리를 수선하던 나의 어머니를 그린 것'이라면서 '어머니는 거미처럼 태피스트리를 실로 짜던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변숙경은 그런 아픔 보다는 새벽에 그녀가 받았던 그 맑은 예술가의 영감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사처럼 전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작품에는 어떻게 거미가 이렇게 넘칠 듯이 찰랑이는 고상한 형태를 흐트러짐 없이 질서 있게 만들 수 있는지 궁금증을 준다. 또한 기하학적 형태 안에 이렇듯 다양한 균형의 표정과 배열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이 대단히 흥미롭다. 그것은 분명 면과 면이 빚어내는 탁월한 하모니이며, 바로 변숙경이 만든 거대한 철판의 거미집이며 그녀만의 아이콘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어떻게 거미가 이렇게 넘칠 듯이 찰랑이는 고상한 형태를 흐트러짐 없이 질서 있게 만들 수 있는지 궁금증을 준다. 또한 기하학적 형태 안에 이렇듯 다양한 균형의 표정과 배열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이 대단히 흥미롭다. 그것은 분명 면과 면이 빚어내는 탁월한 하모니이며, 바로 변숙경이 만든 거대한 철판의 거미집이며 그녀만의 아이콘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변숙경의 내면 의지에는 사각형의 도형이 중심을 이루고, 거미가 만들어 놓은 구상과 추상의 관계를 정직하게 재현 한다는 것이다. 실제 거미는 무척 신비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거미의 몸에서 나오는 끈끈한 액이 밖으로 나오면서 찬 공기와 만나 실이 되고 이 실이 여러 겹 꼬인 것이며 머리카락 지름에 10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이 거미줄은 철사줄 만큼 강해 한번 잡은 먹이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변숙경이 거미줄이라는 자연적인 조형의 세계를 모티브로 조각예술의 극치를 이룬 것은 무엇보다 그가 발견한 공간에 대한 조각가의 새로운 해석이며 이것의 근원을 자연에서 빌려 온다는 사실이다. 추상화 된 기하학적 양식의 모양들을 가느다란 실을 통해 기하학적 공간에 풀어놓는 이지적 감성과 전환의 능력, 그것이 변숙경 조각의 진정한 매력이다. 그러기에 그의 형태는 굳이 어떤 에스키스나 드로잉이 없어도, 의미를 해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입체작품이 상상된다. 이제 그는 ‘철(鐵)’로 쓴 새벽일기’ 라는 주제로 그의 6번째 일기를 공개한다. 그녀가 날카롭게 잘라낸 면들은 예상된 선들이 빚어내는 오케스트라 같은 화음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또한 분절 된 면들이 서로 봉합하면서 지적인 형태로 되살아나는 것은 부르주아의 거미처럼 분절과 봉합이라는 상처의 치유를 담아내는 것은 아닐까? 변숙경은 이미 많은 평자들에 의해서 “철판 위에 실존하는 선을 그리는 작가”로 불린다.

그녀는 실제는 철판 덩어리를 질서 있게 자른 후 그것들을 다시 거미가 만든 거미줄처럼 원래의 형태로 이어 붙이는 재현적 추상조각가의 일기 같은 것이다. 조각의 출발 역시 거미가 만들어 놓은 실제 형태의 공간 안에서 유희하며 출발하지만 변숙경의 조각은 하나의 물질을 떠내거나 빚어내는 전통적인 조각이 아니라 덧붙이는 건축가에 가깝다는 것이다. 작품들을 바라볼 때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그 거대한 철판을 떡 다루듯이 주무르는 거침없는 테크닉이다. 커팅과 센딩, 용접과 설치 등 그녀의 기술은 남자 기술자들의 비교를 거부한다. 1993년 전후 대우 조선을 방문, 바닷바람에 녹슨 쇳덩이를 보고 한눈에 반한 변숙경. 그녀는 그 때 대우 조선에서 용접을 배우고 용접 자격증까지 얻었다고 한다. 이러한 치열하고 몸을 아끼지 않는 열정과 순간이 있기에 오늘날 새벽일기에 보여지는 대형 벽면 작업이 그녀에게는 가능 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의 작업을 사실 철판을 자르고 용접하면서 거미줄의 형식을 빌린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거미가 만들어 놓은 설계도대로 그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변숙경만의 집을 짓는 것이다. 그 집에서 우리는 그만의 내밀한 작가의 생명줄 같은 선과 형태를 만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거미줄은 그녀가 지향하는 가장 정직한 인생을 향한 진정한 눈물이자 표현의 결정체이다. 재현의 전통을 포기하지 않고 자연으로부터 찾아낸 순수 기하학적인 추상의 세계를 끝까지 열어 보이는 그런 예술가의 마지막 희망. 진정한 조각의 의미가 삼차원의 공간 속에 물질로 나타나는 변숙경의 작품들은 거대한 자연이 준 형태를 인간의 손으로 유희하는 추상적 치유의 아름답고 따뜻한 힘인 것이다.

그의 조각이 이처럼 정갈하고 단순하며 단아한 메시지가 넘치는 것은 허버트 리드가 말한 것처럼 “결국 예술은 인간의 감정에 관한 것이고, 이 점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 이라는 진실의 순간을 그가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따르기 때문이다. 재현의 전통을 포기하지 않고 자연으로부터 찾아낸 순수 기하학적인 추상의 세계를 끝까지 열어 보이는 그런 예술가의 마지막 희망. 진정한 조각의 의미가 삼차원의 공간 속에 물질로 나타나는 변숙경의 작품들은 거대한 자연이 준 형태를 인간의 손으로 유희하는 추상적 치유의 아름답고 따뜻한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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