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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 /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눈 일기

김종근

황주리 1957년 서울 생. 아버지 출판사 대표, 이화여대 서양화과,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뉴욕대 대학원 졸업. 1987년 이후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작업함. 25회 개인전. 100회 이상의 그룹전. 산문집 <세월>, <날씨가 너무 좋아요>,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 등을 출판했고 , 석남미술상, 선 미술상등을 수상했다.



이게 그녀를 알려주는 공식적인 이력의 일부분이다. 물론 그녀를 이야기하기 에는 이외에 무수히 많다. 나는 그녀와 같은 시절 미학과의 대학원을 다니면서 친했다. 물론 친했지만 자주 가깝게 만나지는 않았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한 번도 글을 쓴 적이 없었다.

이제 나는 그녀에 대해 그녀의 작품에 대해 글을 쓴다.

그러면서 내가 그녀의 작품을 가까이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들을 생각했다. 아마도 어떤 이유가 있다면 너무나 그녀의 그림이 가벼웠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음의 가벼움,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그 가벼움으로 충분히 그만의 목소리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그녀의 그림을 들여다 본다.

뉴욕의 거리에서 만나거나 전시장에서 만날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밝은 모습 이었다. 그리고 그 이외의 표정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지독하다. 오랜 시간을 그림과 결혼했다고 할 정도로 그는 그림만 그렸고 ,여행광이며 한 영화관에서 영화관을 옮기며 영화를 볼 정도로 광적이다.

스물다섯 번의 개인전이 이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나머지 그녀는 감칠 맛나는 글쓰기의 달인으로 세권이 넘는 책을 가진 에세이스트이다. 여러 정황으로 보면 제2의 천경자 같은 여자이다. 그러기에는 그녀에게 한이 없을 뿐이다. 아니 그녀가 한을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녀의 글처럼 그녀의 화술은 나이브 할 정도로 소박하고 정직하다. 왜냐하면 황주리는 정말 하찮고 흔해 빠진 그러한 평범한 이야기를 하나의 경쾌하고 아름다운 스냅사진처럼 기가 막히게 그림으로 건져 올린다. 사실 나는 그것이 그림이 된다고 보지 않았다. 진지함보다는 풍선처럼 날아 갈 듯 한 가벼움이 쉽게 날아갈 것 같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그림이기보다는 보고난 후 잊혀지는 그녀의 그림들이 내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녀의 메시지가 너무나도 팝적 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그림은 마치 일기를 보듯 온통 일상적이고 생활의 순간순간을 옮겨놓은 듯 그림일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제 그 경쾌한 일기들이 여전히 진지하지 않지만 그것도 우리들의 삶이고 우리 삶의 단편이다. 그러기에 황주리는 디지털 카메라의 렌즈 같은 작가로 현실을 포착한다. 여자로서의 삶, 예술가로서의 삶의 모든 내면과 거침없는 모든 시선속의 풍경을 그는 컬렉션한 안경처럼 어김없이 담아낸다. 한 때 황주리는 1980년대 중반 유행도 아닌 그만의 중후한 언어와 색채의 화풍으로 새로운 미술구상주의 계열의 젊은 여류화가로 주목 받았다. 90년대 들어 그녀는 다분히 문명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는 흑백 그림과 설치작업으로 사람들의 내면의 마음속 풍경을 서정적이고 시적인 언어로 형상화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슬프고 우울한 시절을 넘어 그녀가 살고 있는 이웃과 주변의 따뜻한 시선을 낱낱이 기록한다. 이제 그의 화폭은 언제나 화려하고 밝은 원색적인 색채로 충만해 있다. 또한 전혀 그림이 될 것 같지 않은 소재와 테마도 그녀의 손을 거쳐 가면 그럴듯한 그림이 되어 탄생하는 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인기작가로 변신했다.

무엇보다 마이다스 손은 천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번득이는 재치와 감각이다.
안경을 뒤집어 쓴 그녀의 애인 불독 베티의 얼굴에서부터 , 화사한 꽃과 사람들이 가득찬 꽃을 피워내는 화장실의 변기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얼굴 , 안경에 비친 무수한 사람들의 표정, 카페의 연인들. 그녀가 눈 마주치는 풍경에서 집어낸 장면들은 우리들의 예상과 상상을 뒤엎는다. 아마도 그 상상력은 영화에서 얻은 듯 한 그녀의 독특한 발상에서 생겨나는 4차원적인 열린 상상력의 덕분이 틀림없다.
그녀는 매일 쓰는 일기처럼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바라다본다. 녹색의 따뜻한 이웃의 시선으로 그녀 자신에게 속삭이듯 세상의 일기를 써내려간다. 마치 세상을 바라보는 구경꾼의 일기처럼 그래서 그녀를 사람들은 구경꾼 혹은 타인을 들여다보는 관찰자로 묘사한다.
그렇다고 많은 타인의 얼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황주리는 적지 않은 자화상 작품을 남기고 있다. 실제 타인들의 얼굴이라고 하지만 그의 그림 속에는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만나고 커피 마시고 키스하고 그런 모습 들이다.
그런 모든 이야기가 꽃이나 식물들이 모티브가 된다. 그녀가 자신의 작품 시리즈를 식물학 이라고 붙여 놓은 뒤에는 이와 같은 세상살이의 천태만상이 그곳에 숨 쉬고 있다.
그녀는 세상을 사실 식물로 보고 있다. 거기서 그녀는 식물들을 바라다본다.
식물학의 도상 속에서 들려오는 도시인들의 슬픔과 소외등도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단골 고객이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는 일상 속에서 느끼고 찾아지는 즐거움과 행복, 정겨움이 숨어 있다. 그가 오랫동안 화폭 속에 기르던 식물들 사이에서 .
태생적으로 그녀는 덜렁되어 보이지만 작가의 다양한 상상력과 세심한 눈썰미로 특유의 입체적 발상으로 안경에 그림을 그리는 기발함을 지니고 있다. 돌 위에 그리는 등 상상이상의 섬세한 시선으로 작품을 만들어 낸다.
여류 소설작가 못지않은 ‘추억제’ 와 ‘식물학’ ‘그대 안의 풍경’ 같은 테마를 그림 속에 불러 세우는 황주리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관찰자의 많은 눈을 가진 작가임이 틀림없다.
그 모든 시선들이 화분 속에서 태어난 이상적인 식물이 되어 성장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는 사랑과 슬픔 연애와 이별과 사람들 사이의 세상 이야기가 껌처럼 붙어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바로 황주리의 눈이다. 세상의 속된 일들을 외면하지 않고 모두 들여다보고 담아내는 솔직한 여자 황주리.
그리하여 이제 다양한 그녀의 그림 속 이야기와 이미지들이 모여 그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그것은 합창이다. 그리고 인생은 이런 것이다 라고 노래한다.

그 노래 속에 가장 매혹적인 음색은 색채이다. 매력적인 그녀의 화면들 위에서 더욱 생기 넘치는 눈부신 생명력의 발랄한 색상, “ 언젠가는 멈출 수밖에 없는 시계 하나씩을 가슴속에 품고 산다'라는 그녀가 인용한 글귀처럼 황주리의 그림에는 거의 다 눈이 붙어 있다. 그에게 보는 것은 바로 사는 것이다. 어려서 '외할머니가 너 중학교까지 살겠니?' 하는 말에 충격을 받고 죽음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림을 생각했다며 이렇게 고백 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내가 고안한 게 그림그리기 이었다'
이제 그녀는 한국의 중견 여류작가로 인기작가로 서있다. 이제 우리는 그녀의 언어가 더욱 아름다워 질 수 있도록 그녀의 작품을 사랑 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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