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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 내면 풍경의 그림자를 찾아서

김종근

내면 풍경의 그림자를 찾아서


예술가는 이런 존재가 아닐까 ?

화가들은 매일 매일 그 자신을 둘러 싼 주변의 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자신의 예술적 안테나로 높게 달아 놓아 수신한다. 그리하여 안테나에 걸려든 이미지들을 채집하여 화폭 위에 모아놓는 “여러 사물의 수신기” 는 아닐까? 모든 예술가는 외부로 부터 주어지는 여러 감각과 메시지들을 자기가 명령하는 대로 창조 해 내는 숙명적인 존재로 보인다. 김정선은 이러한 측면에서 매일 서로 다른 주파수의 안테나를 세워놓고 끊임없이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는 전형적인 작가군 에 속한다. 그의 블루 그림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의 모든 작품들이 아주 정교하면서 예민하게 잘 짜인 퍼즐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빈틈없는 구도에 화면을 분할하고, 그 경계를 짓는 언덕에 상하로 나누어진 그 풍경들은 명확한 실재의 풍경과 그것을 반영하는 가상의 그림자로 나뉘어져 있다.

실재와 가상의 지평에 놓인 이 그림들은 그러나 대칭이나 구도에서 꼭 같이 닮아 있지는 않지만 세세한 풀잎의 줄기까지 구체적이다. 실재와 닮아 있어야 할 물속의 그림자가 닮아 있지 않다는 것은 김정선의 본심을 읽어내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다. 그는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바로 그늘에 드리운 그 그림자에 주목한다. 물에 비친 그림자에 자신의 메시지를 감정처럼 투영시킨다. 그러기에 그에게 식물의 사실적 묘사는 어쩌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해서 이러한 미술형식 또한 정통적인 화법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가 서양 예술에 끼친 영향을 그리스· 로마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네· 고흐· 뒤샹 등을 통해 풀어낸 스위스의 미술사가 빅토르 스토이 치타는 <그림자의 짧은 역사 (A Short History of the Shadow)> “서양미술은 그림자 베끼기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이것은 김정선 이 선택한 그림자놀이와 표현의 정통성을 말해준다. 피카소가 “그림자는 신체를 만드는 방법이자 해체하는 방식”으로 이해 한처럼 김정선의 그림자는 이미지의 재현을 통한 메시지 전달의 이상적인 방법이다. 궁극적으로 그가 전달하려는 그림자는 사물의 입체감의 확인이 아니라, 그림자는 회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방법인 것이다. 결국 작가는 풍경의 그림자 이야기들을 물속에 자신의 다른 얼굴을 가진 감정의 그림자로 대체하고자 하는 목적성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블루 톤에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진행 된 그림자 넣기는 본질적으로 김정선 내면의 욕망과 실체를 담아내는 적절한 수단으로 떠오른다. 그렇다고 구체적 지시나 형태를 가진 그림자가 아니라 전체적인 대칭과 구조 속에서 은유적으로 빛나는데 이 그림자놀이의 뿌리가 다름 아닌 김정선의 돌려 말하기 이다. 이미 김정선은 조그마한 풀 한포기가 갖는 식물에서 떨칠 수 없는 그림자를 통한 욕망의 존재감을 느낀다고 수차례 이야기 했다. 그 욕망의 존재감을 그는 블루가 있는 풍경에 모래언덕이 펼쳐지고 엉겅퀴 같은 식물들을 차분하게 정렬 할 뿐이다. 단순한 풍경의 묘사와 일차적인 의미와 주제에 탐닉했던 김정선은 비로소 질서와 콤포지션에 갖가지 요소를 장식적인 수법으로 정리하는 기술을 거침없이 선보인다.

그것의 다른 발전 중 하나가 다름 아닌 회회 속에 단순한 블루 필터의 렌즈 투시에서 엘로우 , 빨강, 핑크 ,녹색등의 렌즈로 배치하는 것이다. 왜 그가 블루의 담백한 지평을 버리고 다양한 색채들을 사용하는가는 분명 색채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전달 표현에 구체적으로 기여하는 이상적 소통방식 때문이다. 작가는 풍경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선입견 없이 색채를 캔버스 위에 칠해 간다.
그의 작업은 이제 극 사실풍의 붓 터치와 강렬한 다색 풍경의 인상으로 데칼 코마니 형식의 이미지로 탄생 된다. 그림 속에 비스듬하게 세워진 풀들이며 꽃나무들은 거대한 모래언덕이나 흙 언덕에 가로놓여 긴장감을 유발시키기도 하며, 서로 다른 실재와 그림자의 장관을 연출한다. 그에게 포착된 풍경은 마치 시작도 끝도 없는 언덕의 들판처럼 늘어져 있지만 그 속에 그림자는 은밀한 언어로 살아난다. 그러기에 그의 그림자는 작가가 존재하는 이유의 원형을 증거 해주는 하나의 중요한 표식이다. 작가는 물에 비침이라는 그림자라는 특정한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존재의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냄으로서 김정선 스타일을 정작 시키는데 성공한 듯 보인다. 또한 부분적으로 그림의 구성 전체가 감성적으로 보이지만 그 위기감과 긴장감이 내재된 드라마적 포토 이미지도 있다. 그러면서 마치 지상과 지하가 다르듯이 하늘과 물속의 경계선에는 빈 공간으로 둘러싸여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그런 하늘과 물속의 실루엣이 이뤄내는 매혹적인 하모니가 김정선 회화의 본질이자 끌림이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김정선의 회화는 하이퍼도 아니고 극사실주의도 아닌 김정선 만의 화풍이어서 관심이 배가 된다. 그러나 언뜻 초현실주의의 마그리트 화풍을 연상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뚜렷한 풍경의 형상을 통해 변형된 풍경을 연출하거나 빛과 그림자 효과를 통해 속마음을 전하려는 형식들이 그러하다. 김정선이 인상주의 화가들 그림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그림 속에 마음을 담아내는 형식을 구축한다는 것은 그에게나 우리에게나 매우 흥미 있는 화법임은 확실하다. 블루 세계가 펼쳐내는 작품에 환상적인 선명한 노을, 그 지평 위를 빛과 그림자로 집요하게 독자적인 색채와 시 형식으로 포착하는 작가 내면의 그림자, 화면 속에 치밀하게 드러내는 매력과 힘이 김정선 회화의 생명력이자 내공이다.

김종근 | 미술평론가 아트 앤 컬렉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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