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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수 / 빈 공간에 그림, 빈 마음에 흔적

김종근

빈 공간에 그림, 빈 마음에 흔적


예술가의 예술행위란 사물과의 대화를 끊임없이 화폭에 시도하는 일이다. 그 사물이란 움직이는 것일 수도 또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평생을 벗은 누드와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어떤 화가는 돌과 이야기 하며, 물방울과 이야기 한다. 또 어떤 화가는 추상적인 조형의 세계 속에 묻혀서 그 자체를 노래한다.

하의수도 그러한 대화를 끊임없이 화폭 자체에서 시도하는 작가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그의 대화법은 여느 작가와 좀 남다른 데가 있다. 스스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 속에서 그네들끼리 대화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들만의 대화는 화면 속에 등장하는, 예를 들면 의자와 새 혹은 새와 꽃 같은 그런 대화이다. 우리는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도 없거니와 해독 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하의수는 처음 그러한 대화법을 보여 주었고 그의 재료와 형식들은 주로 판화로 시작했다.

그가 애초부터 판화를 시작하거나 전공한 것은 아니다. 처음 그는 미술대학에서 유화를 시작 했지만 재학시절 판화공방에 드나들면서 판화의 맛을 익혔고, 드디어는 미술대전 판화부분에서 정밀한 테크닉의 동판화로 우수상을 받으면서 판화작가로 더 알려졌다. 이후 그는 판화작업에 많은 열정을 보탰고 유화작업은 상대적으로 왜소해졌지만 작가로서 큰 유명세를 얻었다. 판화작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그에게 꼭 부정적으로만 다가온 것은 아니다.

그는 프린트가 주는 정밀하고 감각적인 표현과 기술을 충분히 터득했고, 프린트 작업이 주는 감성적인 붓질의 미감을 완벽하게 표현해 내는 역량을 발휘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이처럼 타고난 예술적 감각으로 간결미와 단순미의 극치를 오르가즘처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보시다시피 그는 화면에서 철저하게 군더더기를 배제한다. 색채도 한두 가지 색으로 완결하는가 하면, 자른 납 재료로 몇 개의 일정한 선을 만들어 화면에 부착한다. 주제도 꽃 혹은 나뭇가지 상징화 되고 패턴화 된 새가 화면의 전부이다. 구상회화의 인상을 가지면서도 실제 그의 종이나 캔버스의 평면은 미니멀 회화를 감상하는 듯한 최소한의 어법에 사물들 관계를 스토리로 만들어 놓는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스토리로서 다름 아닌 관계론이다.여기 그의 화면에 수시로 등장하고 비상하는 한 마리의 새가 날개를 펴고 있다. 그 새는 근처 가까운 책상이나 혹은 의자를 향하여 공간에 잠시 멈춰서 있다. 비록 멈춰 있지만 이러한 구도는 사물들에 어떤 감정이입을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는 잠시 멈추어서 말한다. 고정 되어 있는 사물의 의자를 향하여 “너는 참 편안하게 네 개의 다리로 앉아 있구나. 그러니 얼마나 편하니” 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로 의자는 새를 향하여 부러운 듯 말한다. “텅 빈 공간을 아무런 부대낌 없이 날고 싶으면 언제나 날 수 있는 그 무한한 공간이 주는 자유를 누리는 너는 얼마나 좋겠니?” 그는 그의 그림 속에서 이런 대화를 부여하고 마음으로 읽어낸다.

하의수는 일찍부터 이렇게 작품이 갖는 서로의 시선에 흥미를 두었다. 유화작업과 병행하면서 사물들이 갖는 서로의 사물을 바라보는 <일상적 관계>에 주목 했다는 것이다. 그 일상적 관계란 다름 아닌 재료와 형식 그리고 공간과 시간, 평면과 입체라는 서로의 끌림을 넘어서 서로 보는 것에 대한 시선에 대화를 집어넣는 것이다. 그가 지향하는 대화는 보통 화면과의 대화라기보다는 화면 안에서 사물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중심이다.

그의 그림 속에서 형성되는 대화를 이렇게 꿈꾸는 것은 마침내 모든 장르와 표현에서 자유로움을 꿈꾸고 기다리기 때문이다. 하의수의 이런 <일상적 관계>는 2004년부터 발표한 연작 시리즈로 제작된 회화작품으로 다중적인 기법이 혼용된 것들에서 그 특성과 독자성이 두드러진다. 그리하여 이 <일상적 관계>를 그는 매우 절제된 생략과 암시의 언어로 풀어내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초기의 작품에서부터 비교적 일관되게 흰색과 회색의 간결한 색채만으로 화면을 만들어내고 공간을 창조하고 단순한 배경을 납으로 된 새를 콜라주 하는 작업이야 말로 하의수 스럽다.

하의수의 화면 구성에 뛰어난 감성은 연출의 스토리텔링에도 흥미 있지만 시처럼 한두 마디의 붓질로 공간을 가로 지르며 균형을 찾아내는 추상적인 힘에 깊은 시적 매혹이 있다. 그 공간의 중앙 혹은 귀퉁이에 비교적 여린 필치로 섬세하게 묘사된 소통 할 수 없는 이 생물과 무생물의 대화가 동일한 공간속의 상황이야 말로 하의수 그림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그것은 동시에 소통의 부재를 인정 하면서 공존 하는 서로를 향한 숙명적 관계이다. 이처럼 하의수는 우리가 존재하는 삶의 동일한 공간에 타자들의 시선이 어떻게 소통 되는가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작가가 비록 소통이 불가능한 시선을 관계로서 묶어 놓지만 불통은 불통이다.지상과 현실에 존재하는 일상적인 관계의 부조리. 의자와 새들이 나누고 있는 설정은 어쩌면 그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고민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는 그러한 일상적 관계가 현실에서 불가능 하지만 꿈속에서 가능 한 아니 그러한 관계가 가능하다고 그림들은 들려준다. 자연과 사물을 보고 두 가지 대화를 상상하는 작가의 시각은 그래서 유혹적인 끌림이 있다. 예를 들면 침묵하고 놓여있는 꽃이나 의자 책상 등을 보고 한 마리의 비상하는 새가 뿌려 놓는 화법, 그 날아다니는 것과 고정 되어 있는 것과의 관계를 바라다보는 작가의 순수한 눈빛과 시선, 지상에 두 발을 디딘 채 삶을 영위하는 인간에게 늘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꿈을 꾸게 하는 그는 그래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화폭속의 새와 다르지 않다. 통영이 낳은 시인 김춘수의 시처럼, 하의수는 꽃에게 다가가 꽃이라고 불러주면 비로소 꽃이 되고 의미가 되는 그런 순결한 통영이 낳은 또 하나의 화가가 되었다.

@미다시 : 지상과 현실에 존재하는 일상적인 관계의 부조리, 의자와 새들이 나누고 있는 설정은 그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고민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는 그러한 일상적 관계가 현실에서 불가능 하지만 꿈속에서 가능한, 아니 그러한 관계가 가능하다고 들려준다.
@미다시 : 통영이 낳은 시인 김춘수의 시처럼, 하의수는 꽃에게 다가가 꽃이라고 불러주면 비로소 꽃이 되고 의미가 되는 그런 통영이 낳은 순결한 또 하나의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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