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바람처럼 자유롭게 우리를 홀리는 얼굴들

김종근

바람처럼 자유롭게 우리를 홀리는 얼굴들


지난해 베이징에서 약간 떨어진 헤이차오 예술촌 거대한 레지던시의 한 아틀리에에서 머리를 단아하게 묶고 작업에 몰두하는 한 젊은 여류작가를 발견 했다. 100평 남짓한 그 큰 공간에 놓인 대작의 그림들은 이미 그것만으로 충분히 시선을 끌 정도로 압도적 이었고 신선했다. 물론 그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간혹 중요한 전시장에서 본 익숙한 그림이기도 했다. 너무나 열중한 작업 순간이어서 방해가 될까봐 더 이상 그녀의 아틀리에에서 머물지 않고 조심스럽게 그냥 빠져 나왔다. 아틀리에서 만난 그의 작품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문신처럼 잊혀지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인상파 화가인 시슬레가 그랬던가? 예술작품에 생동감을 주는 것은 예술가의 이름으로 마땅히 해야 할 필요조건임에 분명 하다. 형과 색을 조형함으로써 감정을 표현한다. 이 감정표현은 다시 감상자에게 감동을 일으키게 한다.'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예술가는 최선의 자아를 오직 그림 속에 쏟아 붓고 있는 한 예술가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 했고 감동했기 때문이다.

박미진 작품의 테마는 오래전부터 인물이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왜 인물화를 고집하게 되었는가를 진지하게 밝힌바 있다. 처음 그는 아주 우연하게 친구나 원더우먼 같은 연예인 그리는 방법을 익히면서 초상화에 눈을 떴다. 그러면서 묘사력과 표현에 재능이 많았던 그녀는 고교시절 감히 소녀의 전신상을 그려냈다. 그의 집요함과 꾸준한 집중력은 2005년 대학원 시절에 이르면서 일대일 크기의 전신상으로 작품전을 가졌다. 인물을 그리면 그릴수록 그녀는 인물의 묘사에 몰입 했고 당시의 작품들은 다양한 포즈의 자세에 전신상으로 인물화는 다소 관습적인 인물 모습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충실한 인물 묘사와 필력은 그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후도 그녀는 단순한 배경에 실제 인물이나 스타들의 인물을 담아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사람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소박한 흔해 빠진 인물화는 아니었다. 2002년부터 지속적으로 시작했던 인물화는 2006년 그녀의 3번째 개인전에서 그녀만의 양식의 빗줄기를 보여주었다. 얼굴의 전면과 측면을 클로즈업한 대형 화면에 조선시대 초상화의 채색법인 안료를 여러 번 덧칠하면서 양화 스타일의 인물이 화면에 중심이 되면서 인물의 감정을 내면까지 담아낸 작품을 발표하면서 그는 주목을 받았다.인물화였지만 전통적이기보다는 마릴린 먼로나 원더우먼 ,올리비아 하세 같은 과거의 아름다운 스타들을 전면에 클로즈 업 시키는 시각적 화법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창작의 내면에는 영화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공간에 설정 해 놓은 캐릭터들은 재생산된 허상의 이미지에 불과하면 포장 된 것이 아닌가라는 작가의 물음에 응답처럼 해석된다. 작가는 여기서 그의 또 다른 인물 표현의 철학적 인식과 체계를 갖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가상 속에서 본질은 없어지고 외형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욕망의 껍데기만 남는 즉 ,박제론 이다. 그의 나비의 출현은 장자가 꿈속에 만난 호접지몽을 떠올린다. 여인의 얼굴과 종종 함께 등장하는 나비의 형상을 이용한 작품들은 그의 내면에 잠재된 예술의지와 세계를 가장 진솔하게 담아낸다.

그러한 테마에 중심은 언제나 고집스럽게 여성이다. 그의 이상적 성별은 이제 여성이고 그 인물들은 사실 작가의 아이덴티티화 된 동료이자 투영된 이미지로 곧 환영이다. 그렇다고 그의 얼굴이 단순하게 아카데미의 인물화처럼 모두 같은 방식으로 구성 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작품 하나하나의 얼굴에서 새로운 표정을 부여하고 , 새로운 느낌의 인물을 만들어냄으로서 작품마다의 가치관과 새로운 감정을 발견하게끔 치밀하게 이끌어준다. 그의 작품이 단순한 인물의 얼굴을 담은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에게 매혹적인 끌림의 순간을 작품마다 주는 이유이다. 그러고 보면 작가는 그 자신이 여성의 인물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에 대하여 분명하고 확실한 이데아를 가지고 접근했음이 분명해진다. 나는 그의 작품에 진정한 매력을 이것으로 본다. 그의 화폭에는 때로는 분노의 표정도 ,슬픈 표정도 비극적 감정을 연출하고 절망과 좌절의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그는 그런 인물의 창출을 위해 이 그 자신의 욕망에 만족하는 순간에 다다르기 까지 오랜 시간 동안 수백 번의 색을 덧칠해서 완성하면서 작품의 절정을 완결 한다.

그가 흔하게 사용하는 아크릴이나 서양화의 기법을 거부하고 채색기법에서 중채로 색과 색이 더해지면서 혼합된 색이 배어나 온전히 작가가 원하는 색이 발색 될 때 까지 인내하는 그는 그런 점에서 끊임없이 색을 통하여 조용히 기다리는 기다림의 화가이기도 하다. 그 기다림의 표정은 그의 많은 그림 속 시선들이 그 누구를 향하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감정 속에 머물러 있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그러나 화면의 어느 부분에서도 함부로 다루거나 그리는 대상의 부정확함도 용서하지 않는다. 마치 '신사(神似)'를 제일 앞에 놓고 '형사(形似)'를 그 다음 위치에 놓았던 것처럼 단순히 인물의 외형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외모의 묘사를 통하여 인물의 정신과 감정을 그려내어 인물의 내면을 더욱 풍부하고 생동감 있게 살려낸다. 그의 인물화가 가볍지 않고 소중한 정신적인 면모를 포착하는 능력이 예사스럽지 않아 그의 작품을 주목하고 기대하게 되는 이유이다. 여전히 박미진은 그 인물들을 심미대상으로 삼아 화의(畵意)를 건드리거나 시적 감정이 묻어나게 하는 그림 속 인물 형상을 창조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일루전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빛나는 눈동자가 보여주는 처연하고 아름답게 맺힌 눈빛, 두 손을 얼굴을 감싸고 있는 회상의 제스처, 손을 얼굴에 혹은 입술에 지긋이 갖다 둔 채 기억을 찾아가는 안타까움 들은 그 누구를 바라보거나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채 작가정신의 뜻을 버리지 않는 냉엄한 시선이다. 박미진은 그러한 기다림과 인내를 비켜가거나 우회하지 않는다. 그가 단순하고 효과적인 기법이나 안료들을 선택하지 않는 점에서 그는 진실한 화가이다. 또한 감정을 위장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하는 관점에서 그는 순수한 화가이다. 비록 그녀가 어린 시절 방학숙제로 채집을 했던 시간들로 되돌아가 그가 박제 했던 나비들이 이제는 편린처럼 흩어져 화폭에 꽃처럼 각인 된다고 하지만 그 단순한 이미지의 채집은 영원성을 붙잡고 싶어 하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이 박제된 이미지와 함께 극명하게 농축 된 것이다.

최근 2008년 이후 대작으로 제작 된 그림들의 모티브들은 모두가 익명의 얼굴들로 등장한다. 이 작품들은 구성과 패턴에 있어 다분히 도식적인 형식과 분위기를 주지만 그가 박제 시킬 이미지와 만나면서 보다 열려지고 대중화된 지평으로 나아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기에 그의 일루전은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 낸 가장 힘 있고 아름다운 얼굴인 것은 틀림없다. 화면의 작품 뒷 배경에 꽃이 등장하고 , 나비가 동행하고 이것이 그의 “바람처럼 자유롭게” 거침없는 완벽한 비상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어떠한 것을 주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박미진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일정한 신체표현과 눈망울이 도드라진 촉촉한 표정의 인물들. 머리카락의 붓질에서 선 하나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그녀의 이성과 감수성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기에 그의 그림 하나하나에는 기쁨과 슬픔 혹은 전율의 순간이 주는 물결이 화폭 안에서 넘쳐난다. 서로 다른 표정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현실에서의 모습을 내려놓고 “심연“ 속에 갇혀 있는 본질적인 자신의 모습을 여행하길 권하는 박미진의 작품이 내 가슴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가장 간절한 이유이다.

김종근 | 미술평론가 아트 앤 컬렉터 발행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