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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인사동과 베이징 798의 성공

김종근

1957년 독일이 지원했던 베이징 연합공장이었던 798은 따샨즈 거리에 위치한 공장 산업단지이었다. 독일 바우하우스 양식 풍으로 세워진 공장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초기 비밀 군수시설로 사용 되다가 한 때 정부가 개발을 하려다 쉬용 등 예술가들에 의해 지금의 문화예술공간으로 터를 잡았다. 90년대에 이르러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을 시작하여 이제 798은 중국의 심장, 베이징의 문화 아이콘으로 상징 된다.

2003년 미국의 주간지 <타임>지가 세계에서 가장 문화 상징성을 띈 22개 도시 예술센터에 이곳을 선정했고, 뉴스위크지가 선정 12개 도시 , 2004년 미국 <포춘>지가 발전성이 있는 도시 20곳에 베이징을 꼽았다. 이 모든 배경 뒤에는 굴뚝 없는 발전소라 불리는 중국 예술의 메카 798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베이징은 전 세계에서 최고의 예술 중심지가 되었다. 매년 따샨즈 국제예술제가 열리고 국제 미술시장의 메카가 되었다. 중국미술시장이 세계 2-3위를 다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이 곳에는 400여 개의 전문 갤러리와 카페와 아트샵들이 몰려 있어 수천 명의 관광객은 물론 세계에 거물들인 유명 컬렉터들이 모두 이곳을 거쳐 간다. 물론 페이스 갤러리 등 유명 갤러리도 자리를 잡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들이나 갤러리가 이곳을 통하여 작가를 발굴하고 아트딜러들이 그림 장사를 시작한다. 북한 그림만을 취급하는 갤러리도 여기에 있다. 그러다보니 2004년 독일의 슈뢰더 총리, 시라크 대통령, 사르코지 대통령, 배우 등 세계적인 명사들이 모두 이곳 798을 만리장성처럼 의무적으로 방문한다. 베이징 ‘798예술특구’는 불과 십여 년 만에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한국 현대자동차의 신형 아제라 발표회도 798 예술극장에서 개최 할 정도이다.

작가들 사이에서 국제적인 작가가 되려면 베이징에서 성공하라고 말한다. 화랑과 작가 작업실 등이 몰려있어 베이징 제1의 미술 촌으로 변모했고 이 예술구의 영향으로 그 일대에 9개 지역의 예술촌이 생겨나 공장지대를 갤러리로 바꾼 지우창(酒廠)과, 방공호를 활용해 창작촌을 만든 쑹짱(宋莊) 예술지구 등이 있어 이곳이 중국의 소호, 베이징의 첼시가 되었다. 지난 5월 정병국 문광부 장관은 베이징을 방문하여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1층에 국내 인기 작가들의 작품을 2층과 3층은 작가 스튜디오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 인사동은 어떤가? 조선시대 도화서로 부터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의 거리, 7-80년대 최고의 골동품 상가 및 화랑, 표구사이던 이곳이 이제는 싸구려 중국 제품이나 음식점, 커피 파는 흔해빠진 저자 거리로 타락해 버렸다. 더 이상 화가들은 인사동을 찾지 않는다. 컬렉터도, 화랑들도 비싼 임대료에 못 이겨 북촌이나 통의동, 청담동으로 인사동을 떠났다. 일부러 특구를 만들려고 해도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이 판국에 그나마 잘 있던 거리마져도 못 살리고 중국산 싸구려 인형 가게에 내어 주는 이 한심한 상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궁핍한 우리 미술시장을 중국작가들에게 통째로 내어주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결 같이 입을 모은다. 요즘의 인사동을 “술집과 밥집만이 사람을 모을 뿐 껍데기 문화가 판치는 거리” 라고 말이다. 문화는 정말 가꿀 줄 아는 민족에게만 가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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