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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형의 조형적인 꽃

김종근

똑같은 대상을 보면서도 화가가 바라보는 시선은 모두가 같지 않다. 이 같지 않음이 많은 화가들이 갖는 독창성이다. 그래서 독일의 문학가 괴에테는 “꽃을 주는 자연이지만 꽃을 엮어 꽃다발을 만드는 것은 예술가이다.”라고 말했다. 강은형의 작업은 무엇보다 같은 대상을 그리면서도 꽃을 꽃처럼 그리지 않으려는데 다른 작가와 구별되는 흥미로움을 지니고 있다.
꽃을 꽃처럼 닮게 그리려는 노력들은 이미 오래전에도 있어왔고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우리들에게 새로움과 미적 쾌락을 크게 가져다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미 너무나 많은 화가들이 무수한 꽃을 그려왔고, 그 꽃들은 아주 특별한 세계의 꽃으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지루하며 소재주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의 꽃에 관한 환상적인 표현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그림으로 다가오고, 조지아 오키프의 꽃 속에 담긴 에로틱한 상징적 일체가 주목 받는 이유이다. 그러한 일면을 강은형의 꽃에 관한 작업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작가는 우선 꽃이라는 모티브를 조형적 대상으로 바라보려는 작가의 분석적 시선이 인상적이다. 여기서 분석적이란 시선이란 일상적인 꽃의 색깔을 사용하지도 않고, 주제의 형상도 의도적으로 단순화 시키려는 태도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장방형 캔버스의 일정한 크기, 기하학적 형태들이 적절하게 가미된 어울림이 그의 작품의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그것들은 다분히 도형적인 문양에 둘러싸인 꽃에 형식미들과 맞물려 구성미를 드러낸다.

작가는 일일이 정교한 꽃의 디테일한 부분을 묘사하지 않으며 또한 아름답게 그리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대상을 하나의 부피나 매스로 이해하려는 작가만의 고유한 방법에 하나로 해석된다. 같은 모티브를 가진 그림속에서 우리가 특별성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그려야 할 꽃을 하나의 형태로 인지하려는 작가의 주장이 필요하다. 그 구체적인 답변을 작가는 그의 꽃이 어떤 꽃인지 암시 해 주지도 않고 또 어떤 꽃임을 표시해 주려는 어떤 의도도 없다는 점이다. 강은형 회화의 이지적 첫 인상은 일상적인 색채의 톤이 아닌 작가의 고집이 엿보이는 추상 모노톤의 그림에서 더욱 두드러지다. 자연적인 꽃의 생김새나 구성에 묶여있지 않는 자유로움, 유독 꽃의 세부적인 색채의 흐트러짐, 텍스츄어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는 이파리의 크랙 현상도 다른 그림들에서 보기 드문 이채로운 부분이다.

일상적인 붓질에 의존하기 보다는 화면의 독특한 갈라짐의 균열 현상으로 꽃잎을 표현하는 작가는 독특한 이미지를 화면에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 균열은 일반적으로 마치 자연적인 효과로 얻어진 것처럼 다루어진 기법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것을 미묘한 균열의 선들이 보여주는 아기자기한 배경 뒤에 남아 여백이라는 동양적 공간과 매치 시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강은형 회화의 간결하고 짜임새 있는 그림에 차별성이라고 불러도 될 만하다.

'우리가 자연의 외형을 버리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 그림속의 수평과 수직선들은 어느 것에도 제약받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표현이다.' 라고 말했던 피에트 몬드리안의 이 발언은 이제 강은형이 앞으로의 작품에 있어서 어떠한 분위기와 형식으로 보여주려는 지를 암시하는 핵심적인 지향점이 될 것 같다. 대상을 해체하고 단순하게 축약시키면서 단순미를 추구하려는 강은형은 이러한 경계에서 고민할 과제가 주어진다.

물론 근작에서 눈여겨 볼 만한 화면 좌우에 절제 있게 공간의 여백을 살리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는 화면구성이 돋보인다. 이 꽃의 줄기처럼 가로지른 선들에 보이는 특징들은 전반적으로 높은 회화성과 조형미로 변화되어 그의 회화가 이지적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화면에 사용된 색채도 레드 계열의 톤과 색으로 완결된 추상적 형식을 따르면서 일정한 선과 면들이 만들어 놓은 균형 속에 꽃이라는 대상이 용해되어 있다. 이제 단순하고 편협한 주제에 불과한 꽃이라는 모델이 조형적으로 패턴화 되어 그만의 형식으로 재탄생 되는 시간이 남아있다. 그 현상들은 조형적 구상 회화의 분위기를 주면서 미니멀한 화풍의 신선함과 어울리는 회화의 맛을 풍기도 있다.

즉 기하학적인 꽃 그림을 연상 시키는 그 형태들 사이로 모노톤의 색채가 큰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여전히 그의 그림에 흥미로운 요소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 흔한 주제에서 공간의 미가 주는 여백으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림이란 이렇게 보는 사람들과 나누는 마음과 정서의 소통이다. 강은형은 진지한 어법과 일관 된 패턴으로 붉은 색과 흰색의 대조적인 화면안에 오랫동안 동양의 회화가 중시 했던 공간의 여백을 부활 시키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나는 그 점을 작에게서 중요하게 지켜보고 싶다. 물론 그의 그림만이 주는 다양한 조형적 구성과 풍부한 색상의 즐거움을 평면에서 회복 할 수 있다면 강은형은 자신의 스타일을 보란 듯이 구축할 것은 당연하다.

화면 곳곳에 정리 된 마티에르와 그 효과로 얻어진 간결미, 배려된 비어있는 공간이 주는 균형감들도 강은형 그림을 지금보다 훨씬 더 회화적으로 승화 시킬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여전히 꽃과 색채와 형태가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이 탄생된다는 희열에 머무르고 있는지 모른다. 진정한 그림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사물을 보고 작가의 감성이 스며든 것에서 참다운 가치와 진정한 의미와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강은형 그림을 보는 일은 마치 어떤 공간의 이끌림 속에 아직 덜 드러낸 꽃의 조형성이 마치 침묵하고 있는 순간을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무한대로 펼쳐진 화폭에 구성적 요소들이 서로 만나 비어있는 공간속에 생동감 있게 화합하는 힘, 이것이야말로 조형성이 빛을 발하는 강은형의 시선이며 그것을 담아내는 작가의 순수한 시각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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