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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웅 / “붓 그림은 빠져들면 빠져 들수록 무궁한 매력이 있습니다. 붓으로 ‘진정한 나’를 그려 볼 작정입니다.”

김종근

“붓 그림은 빠져들면 빠져 들수록 무궁한 매력이 있습니다. 붓으로 ‘진정한 나’를 그려 볼 작정입니다.”
이정웅




김종근(미술평론가)



지금 사람들은 그를 인기작가라고 부르지만 그도 한 때 불우한 환경을 그대로 겪어온 화가이다. 1963년 동해의 ‘한 점’ 울릉도에서 태어난 작가 이정웅의 부친은 목수였고, 할아버지도 배 목수였다고 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울릉도에서 형과 누나를 병환으로 꽃다운 나이에 잃은 그도 색약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병에 걸렸다.
그림을 좋아하고 화가를 꿈꾸는 그에게 색을 판별하게 어려운 이상이 있다는 것은 예술가에게 또 하나의 ‘천형’이었으며 그에겐 꿈과 미래, 희망도 없었다.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색약 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실력은 뛰어났고 늦게나마 계명대 서양화과에 들어가, 대한민국 미술대전 3회 특선으로 그는 컬렉터들 사이에서 인기작가로 통하였다.
그 때 까지도 그의 작업 스타일은 꽃 과일 등 전형적인 정물화가 전부였다. 그러나 모름지기 작가라면 몇 번의 변화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보편적이고 흔히 볼 수 있는 꽃 그림이나 화분, 과일 등 초기의 정물화 작품에서 붓작업으로 돌아선 것이 첫 번째 변화이다.

2005년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붓(Brush)'시리즈에 집중했고 '붓' 작품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크게 주목 받으면서 일약 아시아 화단의 블루칩 작가로 떠올랐다. 그는 말한다. 밥보다 라면을 더 많이 먹었던 세월을 살아온 그였기에 더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런 자유로운 생각이 그를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와 표현으로 몰고 가게 했다.

그것이 작품을 대하는 그의 철학이며 이정웅이 화단에서 매력적인 작가로 떠오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아마도 그 매력 속에는 그림을 기가 막히게 잘 그리는 작가, “‘귀신같은 재주’로 사물을 재현하는 작가”(이진숙)이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는 정말 눈속임의 기술이 미술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
붓만을 그리면서 점차 붓에서 힘을 감지했고 , 그 붓이 주는 모티브의 강한 이미지는 작가의 내면 안에 잠재된 열정과 조우하면서, 그 어떤 것에도 구속 받지 않는 자유로운 그림으로 태어났다.
그는 최근 들어 몇 가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하얀 붓 그림 뒤 여백에 직접 붓놀림의 흔적을 보여주고, 그림 속에 조용하게 놓여있던 붓 배경이 붓놀림과 어울려 정중동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점진적으로 그의 붓놀림은 더욱 다채로우며 풍부하게 변모하고 있다. 그에게 두 번째라고 부를만한 변화는 지금의 그림형식에 만족하지 않고 비구상 즉 추상의 세계로 표현형식을 옮기는 것이었다. 쉬지 않고 변신하려는 그의 작가정신이야 말로 제일 인상적이다. 작가는 절대 “한눈팔지 말라고 힘주어 말한다. '오로지 그림에만 매달릴 것'을 그는 주장한다. 그가 잘 팔리던 정물을 과감하게 벗어나 새로운 붓을 찾아가듯이 , 인기 작가들이 변화 보다는 결과에 연연해 똑같은 그림을 반복하는 현실을 그는 우울하다고 본다. 이런 그에게 극사실 화풍이야말로 가장 마음속의 생각을 전달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즉 대상을 더 치열하게 모티브에 천착하면서 작가 내면에 숨 쉬고 있는 동양 정신의 세계와 만나는 지점이다 .

이전에 장식적이고 정물화에 머물지 않고 작가는 점과 선을 그리던 붓 한 자루의 존재에서 점과 선의 추상적 요소와 붓의 극사실 화풍의 장엄한 하모니를 연출해 낸다. 이 하모니가 동양적인 선과 획의 의미를 조화시킨 이정웅만의 철학이다. 그가 “그림이란 것은 마음으로 그리는 것이 99%”라며 “눈으로 보고 그리는 것은 1%로도 안 된다.”고 말하는 근본적이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작가의 깊고 철학적인 사유가 그의 그림이 단순히 붓 작업에 그치는 것이 아닌 세계적인 보편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이 될 수 있는 점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앞으로 변화 해 나갈 하나의 방향을 읽어 볼 수 있다. 그 화두는 단연 즉 동양적 추상이다. 그의 회화에는 여백이 있으면서 여백을 말하지 않고, 붓을 말하면서 붓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처럼 이정웅의 작품 속에는 동양적 자연을 바라보는 그만의 자연관이 있다. 붓 그림은 여기서 자신의 진정한 작가자신을 드러내는 도구이다.

어쩌면 이정웅은 붓'을 통해 동양의 정신을 말하고 서양의 기법으로 이러한 눈속임과 내용과 형식을 그림 속에서 온전하게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2003년 '붓'을 만난 순간 그 정신은 한국의 정신일수도 있고 동양의 정신일수도 있다. 그의 그림속의 붓은 이처럼 리얼리티하면서 정적이고 동적이며 획에 있어서는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정중동의 표정으로서 그림이다.

이 그림들이 절묘하게 동양적 사유의 깊이와 붓 그림과 조화를 이루어 진정한 회화적 가치를 형성한다. '카메라 뺨치는 그림', 붓 한 자루만 있는 화면의 여백 또한 정중동을 암시하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동시에 그의 붓과 여백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이미 붓 작업도 추상화로 인식한다. 또한 구상과 추상이 함께 있는 중의적인 작업들의 작품은 자세히 보면 한지와 먹을 사용한 동양화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유화를 사용한 서양화, 그리고 먹 뿌림의 행위예술 과정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다.

“문방사우를 주제로 작업을 하던 중 붓의 생명력과 움직임에 매료돼 시작하게 됐다”고 한 이정웅의 작품들은 붓놀림과 배경에서 자신의 신념들의 사색을 담고 있다.이정웅은 그림으로써 이 사색적인 물음에 답한다. 자유로운 표현방식 속에서 가장 생생하게 자신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정웅의 작품은 액션 페인팅과 '동양 붓의 액션페인팅'을 조합한 퓨전처럼 보인다.그러면서 그는 퓨전의 지평에서 먹물이 튀는 작업보다 선과 면을 연구해서 보여줄 생각으로 같은 붓 시리즈지만 선과 면을 다룬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이정웅의 붓시리즈는 분명 우리에게는 익숙한 붓이 주는 극 리얼리티의 마력, 이방인들에게는 신비한 감성을 눈속임의 즐거움을 준다. 즉 붓과 먹이라는 대상이 서로 만나 익숙하면서도 낯선 마력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의 붓그림은 동양화의 화구인 붓을 그려도 재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에 들어 시작한 , 한국적 소재로도 손색이 없는 그림이다. 그는 붓을 그리는 도구에서 소재로 변신시키며 붓이 동양적 선과 획의 의미를 가지면서 사실적 요소로 다가선다. 그의 작품은 붓 그림의 사색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동양적 세계와 우리와의 깊은 조화를 느끼게 하는 데에 있다.
한지를 때리며 흩어지는 먹물의 튀김. 즉 붓의 액션페인팅.
흰 여백의 공간에 힘찬 붓의 움직임 , 율동적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전체를 관조하며 여백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힘 있게 자리한 존재감 있는 붓그림의 시선을 만나게 된다.
지금도 그는 하루 14시간씩 작업하면서 ‘붓 작업’을 통하여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며 자신의 시선으로 세계 속에 머물길 희망한다. 그것을 연결하는 소통의 코드는 무엇보다 동양적인 추상인 듯하다. 그 속에 여백도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무한(無限)을 담은 그림의 선(禪) 세계”라고도 한다.

그것은 이정웅의 세계이기도 하다. “나이 40이 되기까지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하다 보니 남들보다 잘하는 것 하나라도 부여잡고 싶었습니다. 극사실화는 하나의 방편이었던 셈이지요.”
다음의 에피소드는 이런 집요한 장인정신과 치열함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 알려주는 일화이다. '몇 년 전 중국 상하이 아트페어에서 제 그림을 보던 두 명의 중국인이 말다툼을 벌이는데 '그림이다', '사진이다'는 논쟁을 벌이던 두 사람이 다음날 돋보기를 들고 전시장을 다시 찾아 왔다. 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정웅의 집념을 보게 된다. 그 집념으로 그의 그림에는 극사실과 추상, 행위가 공존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그림은 놀라운 눈속임과 감탄사가주는 울림을 준다.
초기에 그가 붓을 묘사하는데 그쳤다면, 이제 그는 붓에 먹을 찍어 추상적인 점과 선, 면을 한 화면 안에서 아우르며 화해시키며 완성하는 그의 철학과 동양적 사유의 깊이,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미술의 또 다른 힘과 정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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