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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네이버 : 제스처의 본질 ,회화에의 반란-하종현

김종근

현대미술 네이버 : 제스처의 본질 ,회화에의 반란-하종현



접합이란 ? <접합 2000-1-4> 하종현 작품을 명명하고 정의하는 단어는 접합 conjuction 이다. 1970년대부터 무려 40여년에 이르는 동안 그는 오로지 <접합>시리즈에 그의 예술가적 인생을 바쳐 왔다. 접합이 무엇이기에 그는 이 접합에 온 혼신의 힘과 열정을 다 했을까? 그냥 흰 마포에 글씨인 듯 낙서인 듯 혹은 기호인 듯 가로지른 그 제스처 속에 그가 진정 담아내고 싶어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의 작품의 의미를 해석 한다는 것은 바로 이 접합이 무엇인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접합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한다. “물감을 성긴 마대 뒤에서 밀어냄으로써 하나의 물질이 자연스럽게 다른 물질의 틈 사이로 흘러나갈 때, 그리고 흘러나간 물질들의 언저리를 느긋이 눌러 놓았을 때, 내가 바라는 것은 가능한 한 물질 자체가 물질 그 자체인 상태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를 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법은 그 자신이 고백했듯이 '뒤에서 짜내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실험을 하다 발견한 것이지 어떤 영감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리시대의 대표작가로 주목 받는 이유는 ‘드리핑 기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회화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제시 했다는 사실이다.
<접합>시리즈는 물감을 마대의 뒷면에서 앞면으로 밀어내어 물감과 마대라는 물질들이 자아내는 표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캔버스 뒷면에서 안료를 성긴 마대 틈으로 밀어 넣고 흘러나온 안료를 앞면에서 손이나 나이프로 물감 누르는 것이다. 이 작업방식은 전통 인물화의 배채법에 비유 된 강한 물성을 드러낸 작품 들이다. 마치 평론가 필립 다장이 이들 작품에 대해 “난폭함과 금욕주의를 하나로 엮어 놓았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치밀하고 밀도 있으면서 절제된 형식으로 재료를 개성 있게 표현한 이 화포에는 그린다는 것보다 밀어낸 물감들을 다시 터치하는 제스처와 액션을 더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칠하는 것이 회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던 개념과 본질에서 하종현은 사실 이를 뒤집은 것이며 반역을 행한 것이다.

회화의 출발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시가적인 옵티칼(optical)한 작품을 시도하다 곧 관념적인 작품으로 옮겨 갔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세계를 모노크롬으로 보기보다는 추상미술을 제작하는 장인처럼 보인다. 하종현의 회화적 출발은 196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예술을 하자는 의미로 모인 전위적인 미술집단 아방가르드협회를 이끌며 한국 추상미술의 지평에서 전개 된다.
전후 한국 화단을 뜨겁게 했던 비정형(informel)회화가 시들 할 때 제작된 <무제A>1965와 이 재료와 형태가 나중에 <탄생 B>1967에서 세련 된 형식으로 완결 되었다. 초기 작가는 주로 신문지 등 입체적인 것으로 작업하느가하면 통에 로프를 넣는 등의 전위적인 실험과 철사와 용수철, 나사 등을 이용해 사회 현실에 대한 도전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작가로서 그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1965년 파리 비엔날레>에서인데 이 시기에 작품은 “ 말라비틀어진 오징어를 연상케 하는 칙칙한 마티에르의 철늦은 앵포르멜 화풍” 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67년 <탄생 67>에서는 앵포르멜 분위기에 기하학적 형식이 가미된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그는 전후 최초의 기하학적 작품으로 평가 되는 <도시 계획 백서>와 같은 화려한 색채에 동일한 패턴의 질서 있는 배열이 돋보이는 기하학적 회화를 보여 주었다. 이후 '오브제 작품'을 발표 하는데 이 시기가 하종현의 'A.G. 시대'로 '평면화 된 오브제로서의 회화' 시대이다. 입체에서 단순한 평면으로의 회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던 그는 색다른 작업을 위한 중요한 실험을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하종현의 예술세계를 본질적으로 결정짓는 제스처 회화가 탄생된다.


접합의 본질, 명령과 복종 무엇인가 ?
그의 작업양식이나 패턴이 잭슨폴록과 동일한 의지와 예술적 이념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이 두 작가를 구별 짓게 하는 기준이다. 하종현의<접합>의 개념과 의미는 글자 그대로 물질과 작가 자신의 접합이며, 작품의 객체와 작가의 인격의 일체화이다. 바로 이 지점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가 접합인 것이다. 여기서 신체는 폴록의 행위처럼 다만 '물질들(마대, 물감)로 하여금 그 스스로가 말하게 하라'는 명령에 복종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하종현 작품의 본질은 서양의 회화세계나 본질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의 해석이다. 캔버스 앞면에 그리지 않고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 넣는 이 배압법이 유럽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평면회화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그의 평가는 놀라움과 함께 깊이 주목의 대상이 된다.
두말할 여지없이 안에서 밖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이야말로 그들이 상상 할 수 없는 독특한 문화적 예술적 정서이다.뿐만 아니라 굵고 튼튼하게 짠 사각의 틀에 거친 마대를 팽팽하게 당겨 부착한 다음 뒷면에서 유성 물감을 밀어 넣는 하종현의 이 제작 방식은 알다시피 한국의 전통 한옥 공법을 닮았다는 발견은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중요한 한국적 시선이다.


고요함과 추상적 리듬의 조화
80년대 물질과 물질의 만남이 빚어내는 세계로 관심을 돌렸을 때에도 그는 ‘접합’에 관심을 가지면서 캔버스 앞면에 물감과 붓으로 그린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깨는 작업을 시도하는데 1974년에서 1979년의 초기 실험에서 보여 준 거친 물성, 1980년에서 1984년에 이르러 정적이고 명상적인 물성의 '관조성'을 강조한다. 이 시기 <접합>의 표면은 마치 해면이나 한국의 고풍스러운 옛 건물의 벽을 떠올리게 하지만 1985년에서는 <접합>의 표면에 정적이 아닌 동적인 제스처가 두드러진다.
이후 작가는 접합86-24시리즈에서 균질 된 질서를 가진 조형감각으로 황갈색·흰색·청색의 지극히 기본적인 색채로 공간을 채우거나 단순한 작업의 반복으로 공간의 평면 화에 몰입한다. 그것은 이전 <접합 1970s >에서 더욱 혁신적인 방법으로 조형적 공간을 창출 한 것이 된다. 거기에는 동양의 여백의 미도 들어있고 선의 유려함과 자연스러움도 있다. 그리하여 이 독특한 동야성과 부드러운 작업은 “앞면에 스민 감촉은 마치 서리가 내린 토양이 전부터 머금고 있던 수분들에 의해 울퉁불퉁 위로 치솟아 오른 부분을 가볍게 혹은 무겁게 두드린 것”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영국의 미술사학자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가 그의 작품을 미국의 후기 회화적 추상주의자들, 특히 모리스 루이스의 작품과 맥락을 같이 보았지만 루이스가 선택한 과정과 하종현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며 기존 화풍의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고 양식화된 단순 형식에 독창성에 크게 주목했다. 이렇듯 그의 작품 속에는 절제된 고요함과 자연스러움의 위대한 조화가 있다. 소박함 속에 묻어있는 작품 세계, 그의 작품이 뿜어내는 부드러움과 온화함, 자연과의 밀접한 관계를 연상케 하는 그의 작품에 명쾌한 모노크롬 작업이 주는 한국의 옛 선비들의 '문인화', 정신이 여기에 녹아있다.


회화에 반란 ,회화의 고민
90년대 중반 그의 회화에 나타난 마티에르, 그리고 화가의 나이프 자국이나 손가락 흔적들은 무수히 만은 제스처들이 교차하고 칸들이 교차하면서 형상의 추상적 리듬은 더욱 표현의 절정에 다다른다. 질서정연 하되 불규칙한 우연성이 스며있고, 흔적들은 다시 덮이고, 서체의 선들은 겹치고 부서진다. 그의 제스처는 보다 짧고, 질서 정연하고 집요하다. <접합 90>에서 <접합 99>, 그리고 이후의 <접합>은 수평 수직의 구조를 이루면서 관조적 태도는 그의 회화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인다.
그가 평면회화에서 열어 보인 것 중 가장 주목할 것은 물감으로서 존재하는 원리로 돌아가 <존재의 행위가 곧 회화적 행위>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회화'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원천적인 문제와 직결 된다. 이 점에서 하종현의 작품 <접합>시리즈는 미술사에 있어 일체의 '회화적' 표현의 배제이며 동시에 회화사적 의미에서 회화적 관습에 대한 전복에 그 역사적 미술사적 의미가 깊다.
'예술은 더 높은 경지로 갈수록 자연스러워진다'고 한 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이제 배압법이 만들어놓은 그 새로운 형식에 대한 평가를 두고 우리가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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