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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옥 / 선을 통한 정신성과 인간 표현

김종근

[점에서 선으로]

1959년 그의 나이 30살, [점의 변주]( 94x74Cm . 닥피지에 수묵) 는 산정 서세옥 작품세게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모필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점의 필법으로 먹의 풍부한 맛을 점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에서 일획과 선의 표현이 등장한것은 서세옥이 이미 동양회화의 진수를 명백하게 점과 선의 예술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 [점의 변주]는 작품의 크기나 표현 양식으로 보아 다분히 드로잉이나 에스키스적인 면을 보이지만 작품 변모한 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이례적인 작품이 분명하다.
특히 이 작품은 점과 [선의 변주] 등 몇 점이 연작으로 이루어져 작품세계에서 다소 실험적인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해석된다.
한가지 방향이 아닌 각기 다른 여러 방향에서 점에 관한 연습을 하 듯 무수히 찍어 놓은 점들은 거친 표현과 부드러움이 혼재되어 회화의 기본적 요소인 선으로 가기 위한 점의 완성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 주목 할만하다. 무수한 점들이 무계획적으로 찍혀진 점들이 아니라 때로는 크게 어떤 것은 작게, 그리고 진하게 여리게 점들은 乾墨 그리고 濃墨 등의 기법으로 농담을 살려가며 부드러운 모필로 선의 깊은 조형성을 탁월하게 형상화 냈다. 이것이 산정 서세옥을 한국 미술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점과 선 그리고 조형성]

50년대 후반 그는 회화의 중요한 조형요소인 선에 대한 또 다른 작품들을 보여준다. 1959년 선의 변주 (74 X 94Cm.)는 그가 점과 선을 통하여 어떠한 형상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암시 해주는 작품이다. 1962년의 [점의 변주]작품에서 그는 필묵의 선들이 보여 줄 수 있는 세계를 공간성에까지 염두에 둔 듯 흘림과 삐침, 농담의 변화로 필묵의 조화를 뛰어나게 구사한다.
60년대 후반까지 지속 된 그의 이런 화풍은 70년대 초반, 1974년부터는 보다 구체적이고 이미지가 선명한 인간의 형태를 지닌 작품들을 제작한다. 물론 문인화적인 전형적인 풍경작품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포인트는 여전히 그의 필체에 일관되게 묻어나는 간결하고 일획의 개념에 충실하게 근본을 둔 단아한 수묵추상의 작품들이다. 그의 예술가로서의 참다운 모습은 오히려 일찍이 이렇게도 선명하게 각인 되지만 50년대 후반 불과 30이란 젊은 나이에 墨林會를 결성하여 현대 한국화의 새로운 실험과 방향을 제시 하고자 했다는 것과 무관하지않다.
그는 이런 결정적인 예술세계에 눈을 뜨게 한 은덕을 스승 근원 김용준선생에게 그의 빛과 영광을 돌렸다. 근원 선생은 그에게 예술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환쟁이가 될 것인가를 캐물었으며 “예술가와 환쟁이” 이 둘 사이에는 단순히 그림만 잘 그릴 줄 아는 환쟁이와 그 환쟁이의 세계를 넘어 진정으로 인간의 삶을 통찰하고 그것을 예술로서 표현해 내는 전인적인 화가가 참다운 예술가라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인간” 시리즈란 테마를 평생 그의 예술에 모티브이자 화두로 삼은 이유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의 이러한 탁월한 조형성은 사실 크게 알려지지 않은 전각예술에 비롯된다. 그는 전각을 통하여 우주를 알고 인생을 풀어냈다. 그것은 작은 인보(印潽)라는 것 속에 내재된 탁월한 조형성, 세계에의 표현이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간에서 화면으로 펼쳐질 때 대저 서양회화에서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공간과 조형의 해석이 전각의 진수이다.


[마티스의 춤과 서세옥의 춤]

예술의 산을 지키는 산지기라는 뜻의 山丁,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스스로의 예술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작가이다.
산정회화의 [점의 변주] (1959)이후 [잠자는 새 ] [사람들] [ 춤추는 사람들][어머니와 아들 ] 등에서 보여지는 70년대 이후 그의 괄목할 만한 작품들은 화면에 단일한 형상만으로 인간의 자태를 완성시키는 생략의 힘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그가 얼마나 공간 속에서 절제미와 조형성을 조화 시키고 있는가를 확연하게 드러내는데 이런 측면에서 산정의 작품은 거의 “그리기” 보다는 “글쓰기”에 가까울 정도로 서화(書畵)의 일체와 만남을 묵시적으로 화해시킨다.
70년대 후반에는 단일한 형식에서 넘어 화면 전체로 확산되어지는 전면회화로서의 조형상의 변화를 가져온다.
테마도 이전의 다양한 소재에서 “사람들”의 행위를 중점적으로 묘사한다. 그 중 가장 단순미와 조형미를 이상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춤추는 사람들” 의 연작이다
1978년 종이에 수묵으로 그림 [춤추는 사람들] 은 그 형상에서 인물의 크기나 배치 등에서 구성의 절대적인 극치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그 형태상의 단순함과 감춘 듯 비치는 먹의 농담으로 그 춤추는 사람들의 면모와 유형을 놀랍게 “산정 스타일”로 형상화 냈다 .
앙리 마티스의 걸작 [춤](1909)과 비교 할 정도로 조형적인 면과 공간의 표현에서 평가받은 그 형태미의 단순성을 농담을 통하여 붓으로 이상적으로 구사한 것이다.


그는 내려다 본다.[부감시]기법

산정이 이처럼 자유자재로 조형미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동양화의 주요 기법인 위에서 내려다보고 그리는 부감시 (俯瞰視) 기술을 익히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물들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화자의 시점이나 시방식이 그러하다. 그의 전 작품을 일별할 때 두드러지게 여백에 대한 인식과 공간의 활용이 눈에 뛰게 보이는 이유도 그것이다.
무엇보다 산정은 묵을 다루는 수묵화가의 입장에서 어느 작가보다 동양회화의 운문적인 생략과 단순미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작가이다 . 색채 쓰기를 금기시하는 입장에서 그가 생략과 강조, 단순한 붓 한 획으로 많은 내용을 함축해내는 역량이야말로 서세옥 회화의 진정한 매력이다.
화가는 빠르고 결정적인 획(劃)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의 내적 의미를 회화적 상징이나 정형에 의해 전달하며 예술품으로서 생생하게 살아있도록 해야 하며, 그럴듯하게 닮게 그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의 본질을 정확하게 묘사 해내는 작가가 서세옥이다.
70년대 후반 80년대 초까지 그의 회화 이미지는 완성 된 패턴을 유지하면서 80년대 후로는 인간이란 주제에 보다 밀착된 정신을 보여주는데 그 인간의 표현 구석구석에서 산정의 필묵은 한결같이 매우 담(淡)하되 생기 있게 자유분방하게 풀어낸다.


[스승과 벗과 제자가 있으면 가짜다]

산정은 집요하리 만큼 무수한 인간의 모습을 높은 조형성으로 희로애락에 젖어 사는 진정한 인간들의 본질을 승화 하려 애썼다. “서너번의 붓놀림으로 완성” ( 三五筆而成) 하는 극도의 간결함에 극치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가치는 국제적으로 크게 주목 받았는데 1990년대 프랑스 르 피가로신문의 기자이자 미술평론가인 미쉘 누리자니는 그의 작품을 “낙뢰(落雷)처럼, 그러나 서서히, 먹이 종이 위에 흩어진다. 날아가듯 가볍게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손은 붓을 이끌고 또 붓에 이끌리면서 선을 긋는다. 심연의 검정이 필선을 벗어나 .부드럽고 경쾌하게 벗어나간다 ”극찬 했다.
서세옥이야말로 좀 더 자유롭고 절묘한 공간의 여백과 구성을 통하여 서양회화가 못 이룬 뛰어난 조형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의 예술세계가 평가 받는 것에는 예술에 대한 그의 단호함과 예술철학 때문이다
“영원히 그려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고 말하는 산정 서세옥 그리고 “위로는 스승이 없어야 하며, 옆으로 벗이 없어야 하며, 그리고 아래로는 제자가 없어야 한다.” 스승이 있고 벗이 있고 제자가 있으면 그것은 다 가짜다라고 그는 일갈했다. 예술의 세계에 있어 독창성이라는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 주는 화단에 금과옥조 같은 말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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