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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적 지평과 의미의 생성

윤진섭

일상의 조각적 지평과 의미의 생성

서울국제조각페스타2014 서문


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호남대 교수)

Yoon, Jin Sup(vice president of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rt Critics)


 2011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전관에서 성대한 막을 올린 ‘서울국제조각페스타’가 어언 4회째를 맞이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만큼 대중적 인지도도 높아지고 있으며 회를 거듭할수록 행사장을 찾는 관람객의 숫자도 많아지고 있다. 이 행사가 이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 이면에는 기존의 아트페어와 차별화를 기하려는 주최 측의 기획의도가 주효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즉, 조각 전문의 아트페어 지향, 엄격한 심사를 통한 참여작가 선정, 세미나를 통한 학술적 분위기 조성 및 진작, 야외조각 심포지엄 개최 등이 그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울국제조각페스타’는 한편으로는 부스 중심의 천편일률적인 기존 아트페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와 동시에 이와는 현격히 차별화된 아트페어의 새로운 모델로 거듭 태어나게 된 것이다. 


 

 [서울국제조각페스타2014]의 주제는 ‘생각을 조각하라’이다. 그동안 열린 이 행사의 주제는 간명하게 정해졌는데, 참고삼아 각 행사별 주제를 열거하면 2011년 제1회는 ‘세상을 조각하라’, 제2회(2012)는 ‘조각은 재미있다’, 제3회(2013)는 ‘조각! 꿈꾸게 하라’였다. 이 주제들의 공통된 특징은 학술적이거나 추상적이라기보다는 대중 친화적이며 구체적이라는 사실에 있다. 적어도 그것들은 권위적이거나 위압적이지 않다. 마치 생활 속에 파고드는 신문이나 잡지광고의 문구처럼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은근한 힘이 배면에 깔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들은 관람객들에게 일련의 메시지를 던진다. 세상을 조각하라!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조각할 것인가?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기에서 세상이 뜻하는 바는 관람객, 즉 너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과 자신과의 관계망을 구축하고 그 의미를 생성하라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그 만큼 조각은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삼차원 예술의 대명사격인 조각은 이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 환경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환경조각이라 일컫는 조형물들은 도시 건물의 일부가 돼 있으며, 도시 곳곳에 형성된 각종 조각공원은 도시인의 피곤한 영혼을 달래주는 안식처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둘러싼 우리의 고민은 앞에서 언급한 ‘의미의 생성’과 관련시켜 볼 때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오늘의 조각계가 처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조각계가 처한 여러 현실적인 문제점들, 그 중에서도 특히 각종 조형물의 건립은 작품이 작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관람객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는 분야이다. 그러나 우리가 관람객을 단지 수동적인 관점에서만 파악하지 않고 능동적, 적극적인 요소로 받아들인다면 관람객에 의한 ‘의미의 생성’은 역으로 조각의 지평을 훨씬 크게 확장할 수 있다. 이제까지 열린 ‘서울국제조각페스타’의 양상을 놓고 볼 때 늘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드넓은 전시장을 꽉 채운 조각품들은 거의가 다 완성품으로서 관람객들에게는 감상의 대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는 현대의 미디어 아트나 퍼포먼스의 경우처럼 ‘상호작용적(interactive)’ 인 의미의 생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서울국제조각페스타’가 말 그대로 축제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면,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설치와 퍼포먼스, 미디어 아트의 환경을 비록 일부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가령 특별전 형태로 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다면 ‘서울국제조각페스타’의 축제적 성격이 더욱 강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서울국제조각페스타2014]의 주제는 ‘생각을 조각하라’이다. ‘생각’을 어떻게 조각할 것인가? 생각이란 떠오르는 상념, 관념, 의념(疑念), 의려(意慮) 등을 일컫는다. 이 말의 용례는 가령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조각한다고 할 때 가장 구체성을 지닌다. 아무 생각없이 무엇을 만들 수 없듯이 조각가들은 떠오른 예술적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물질을 통해 사물화(事物化)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조각품은 누군가의 적절한 표현을 빌리면 ‘관념의 응고물(凝固物)’이다. 그것은 일련의 제작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거의 백여 년 전에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변기라는 일상 용품을 예술의 문맥에서 제시한 바 있다. 뒤샹에 의해 제시된 이 레디메이드의 미학은 고전적인 의미의 제작에 반(反)하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나는 ‘생각을 조각하라’는 이 기상천외한 발상을 곧바로 ‘생각에 개념의 옷을 입히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것은 미술사의 문맥에서 파악할 때 곧장 뒤샹의 줄기에 가서 붙는다. 그것은 또한 예술이 일상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놓고 보니 [서울국제조각페스타2014]가 마련하는 이번 학술세미나의 주제가 범상치 않아 보인다. ‘Sculpture Industry, 시대의 조각의 관점과 해결책’이란 이번 학술세미나의 주제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하는 ‘조각! 일상의 즐거움(조각의 친근성과 일상성)’은 바로 이 레디메이드의 미학을 표방한 것이 아닌가? 


 예술이 일상의 영역 속으로 진입할 때 예술은 무겁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예술의 일상성은 이상적인 가치의 구현에 뿌리를 둔 고전적 예술의 규범에 반기를 든다. 고전적 예술이 이카루스의 날개라면 일상적 예술은 지금 당장에 현실적인 것을 원했던 디오게네스의 통집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빈자(貧者)의 철학을 지향한다. 가난한 자의 예술이기 때문에 멀리 있지 않고 관람객의 주변에 산재한다(‘가난한 예술’로 번역되는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상기하라). 그러나 우리의 주변에 산재해 있는 일상적 사물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말을 건네지 않는다. ‘생각을 조각하라’는 주제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볼 때 이제 조각가들은 반드시 무엇을 깎거나 붙이지 않는다. 로잘린 크라우스가 명쾌하게 분석했듯이 현대의 조각가들은 사물을 쌓거나, 늘어놓거나, 파헤친다. 현대의 조각가들이 벌이는 행위의 양상을 가리켜 전통적인 의미에서 조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넓은 의미의 아트에 포섭되는 조각적 행위는 그 순수성을 잃은 지 이미 오래이다. 조각이 일상성 속으로 편입되면서 ‘깎거나(彫/carving)’ ‘붙이는(塑/modelling)’ 조소의 의미는 탈색된다. 일상적 사물들이 예술의 옷을 입고 예술의 맥락 속에 들어오는 순간,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 장르나 범주, 개념은 붕괴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현대의 예술가들은 동굴 안에 들소를 그린 선사시대의 예술가들을 닮았다. 현대의 예술가들은 생활의 예술을 동경한다. 그것의 가장 첨단적인 양상은 모바일 폰으로 대변되는 ‘손끝의 예술(art from the fingertips)’이다. 전시장의 작품은 관람객의 손에 들린 모바일 폰을 통해 곧바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로 연결돼 전파된다. 이제 관람객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능동적인 감상자 혹은 해설자가 되어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나름대로의 해석을 가한다. 전시장에서 찍은 장면이나 작품의 이미지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앱을 통해 가공되거나 변형된다. 관람객의 예술가 혹은 비평가로서의 등극은 1969년에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을 선언한 이후 인터넷, 모바일 폰, SNS가 주도하는 현 상황에서 가파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조각은 이러한 현상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매우 역설적이게도 이번 전시의 주류는 아날로그 형 조각에 치중돼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가들은 조각의 본령을 충실히 지켜나가는 동시에 작품을 통해 일상적 소재, 추상적 내지는 관념의 세계, 구체적인 형태의 미(구상조각)를 구현해 내고 있다. 이 축제적인 성격의 전시가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이면서 국내 유일의 조각 아트페어로 자리 잡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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