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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환희, 그리고 도전

윤진섭



Ⅰ.
 유휴열은 활화산과 같은 사람이다. 속에 거대한 불덩이를 안고 사는 것 같다. 그 힘의 분출이 나타날 때 화면은 온갖 원색들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차분히 가라앉아 있을 때는 그가 즐겨 사용하는 알루미늄 판의 생짜 맛처럼, 침작하다. 이제 그 성정(性情)이 이룬 도정, 곧 화력(畵歷)이 50여 년을 헤아린다. 
 그와 엇비슷한 연령대의 작가들이 항용 그랬듯이, 유휴열 또한 전후(戰後) 한국 화단의 굴곡진 변천사를 몸소 겪으며 살아왔다. 한국현대미술사의 일반적인 기술(記述)이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의 발족과 이에 따른 일련의 전시들, 곧 [현대전]에서 비롯된다면, 1949년 생인 유휴열의 존재는 당연히 이 연대기에서 제외된다. 즉, 1957년에서 196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한국 화단을 점유했던 앵포르멜은 그와는 상관이 없는 미술사조였던 것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하드 에지를 비롯한 기하학적 추상과 해프닝이 전개되던 1960년대 중후반에 유휴열은 전주에서 그림을 그렸다. 70년대 초반에 발생한 작업실 침수로 인해 이 시기의 작품들이 대부분이 폐기된 관계로 전모를 살펴볼 수 없는 게 아쉽지만, 현존하는 <무제>(52.5 x 45.5cm, 캔버스에 유채, 1968)를 통해 유추해 볼 때 그는 반(半)구상풍의 그림을 그린 것으로 파악된다. 청색조로 그린 이 작품은 리어카가 있는 노상에서 노동자로 보이는 사람 둘이 뭔가 손짓을 하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현실을 반영한 삶의 단면을 화폭에 옮긴 것이다. 이 그림에서 인물과 리어커, 집, 전봇대 등 사물의 형태는 윤곽선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생략돼 있는 반면, 청색과 약간의 붉은 색이 가미된 색채는 눈에 띄게 강조돼 있어 향후 전개될 화풍의 흐름을 암시하고 있다. 


 유휴열에게 있어서 수업기에 해당하는 19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는  뚜렷하게 독자적인 화풍이 정립되지 않은 때였다. 기타를 치거나 독서를 하는 여인상을 청색 혹은 회색조의 화풍으로 그리던 시기였다. 화단의 전체적인 분위기로는 개념미술과 단색화가 [서울현대미술제], [에꼴 드 서울], [앙데팡당]전을 중심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유휴열은 이러한 분위기에는 쉽게 동화될 수 없었다. 그는 70년대 중반 서너 차례에 걸쳐 [서울현대미술전]에 초대를 받기도 했고, 현대미술제가 전국적으로 번져감에 따라 창립된 [전북현대미술제]의 운영위원을 지내기도 했지만, 결국 전국단위의 이 같은 미술제나 그룹전과 결별, 외로운 작가의 길을 가기에 이른다. 
 작가 자신의 말을 빌리면, “단색화가 체질에 안 맞아 현대작가가 못 되겠다”는 것이 70년대 당시 집단적 미술운동에 가담하지 못한 이유였다. 이 선언 아닌 선언은 결과적으로 볼 때 독자적인 화가의 길을 가기로 한 것이나 다름없다. 단색화를 중심으로 한 집단적 선풍이 불었을 때, 거기에 부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 정서나 분위기로 볼 때, 이와 절연된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곧 현대작가로서의 입지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부터 비롯된 추상화에의 경사는 훗날 80년대에 들어서 분출하기 시작한 표현주의 풍의 추상화를 낳은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에 이르는 습작시기, 곧 추상과 구상, 반추상 등의 화풍을 가리지 않고 실험하는 시기를 거쳐 왔음을 의미한다. <외갓집 동네>(38 x 45cm, 캔버스에 유채, 1970), <승암산>(130 x 162cm, 캔버스에 유채, 1972), <태양이 쏟아지는 언덕>(162 x 112cm, 캔버스에 유채, 1975) 등등은 이 시기에 제작한 것으로 그 중에서도 특히 <태양이 쏟아지는 언덕>은 붉은 색조에 대상의 형태를 면 분할로 처리한 추상화로 80년대 초반에 비롯된 표현주의 풍의 그림의 단초가 되는 작품이다. 
 

Ⅱ.
 1980년대는 이 시기 유휴열의 대표작인 <生ㆍ놀이> 연작이 개화를 하는 시기이다. 구체적인 대상의 형태가 말끔히 소거된 가운데 색과 선묘가 주축을 이루어 삶에서 오는 환희가 주요 모티브로 자리 잡는다. 그 이전에는 <만다라> 연작을 시원한 청색조로 그렸다. <生ㆍ놀이>는 작가의 향리인 전주 모악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샤먼적 내음이 듬뿍 담긴 화풍으로 단청과 민화의 제작에 자주 사용되는 진채가 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하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유휴열 작업의 특징은 구상과 추상이 뚜렷한 구분 없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회화와 부조회화, 환조에 구애됨이 없이 회화와 조각 양쪽을 넘나든다는 것도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조각에 있어서도 구상과 추상 간의 구별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는 폭넓은 의미의 조형작가이다. 
 만약 이런 가정이 성립된다면, 한국처럼 서울과 지방의 문화 편중화 현상이 심한 나라에서 유휴열이 전주의 향리에 틀어박혀 작업만 했다면, 그는 한낱 한 지역을 대변하는 지역작가에 머물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우 다행스럽게도 열정적인 삶을 살아온 그는 80년대 초반에 프랑스의 파리와 미국의 뉴욕에 체류하며 해외의 미술사조를 실제 삶 속에서 체험하는 모색의 시기를 겪었다. 또한 일본의 오사카에 있는 아마노갤러리에서 수차례에 걸쳐 개인전을 갖는 등 외국에서의 활동 반경을 넓혀 나갔다. 


 유휴열의 이와 같은 행보는 자신의 작업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이에 반영하는 적극적 의지의 한 표명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80년대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는 이 시기는 유휴열의 작가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전기를 이룬다. 이는 그가  지역적 한계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은 세계로 시야를 옮겼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세계미술의 현장에서 국제적 감각을 익히는 또 하나의 수련기를 맞이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80년대 중반 이후 귀국해서 가진 아르꼬스모미술관의 서울 첫 개인전과 이를 계기로 맞이한 [86 문제작가전](서울미술관)의 초대는 그에게 있어서 서울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전시회는 미술평론가 이일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며, 리뷰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작가 개인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개인전이었다. 


Ⅲ. 
 80년대 중반에 맞이한 이 전기를 발판으로 유휴열은 한국 미술계에서 점진적으로 활동반경을 넓혀 나갔다. 19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에 이르는 10년간은 유휴열이 전주는 물론 서울, 오사카 등 국내와 해외의 문을 동시에 두드리는 시기였다. 그리하여 노력한 만큼의 성과도 거두었다. 1991년 금호미술관을 비롯하여 오사카현대미술관 등 굵직한 미술관급 전시는 그를 대형작가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천, 나뭇가지, 흙 등등 일상적 오브제가 부착된 초대형 화면을 선보이게 되는 것도 아르꼬스모미술관에서 금호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의욕적인 전시에서 비롯되었다. <生 ㆍ놀이> 연작은 작열하는 듯 화려한 오방색을 바탕으로 신명에 찬 기운을 화면에 가득 불어넣은 작업이다. 타고난 장인 기질의 끼에 흥이 듬뿍 담긴 이 연작에는 토속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배태된 한국적의 민속적인 정서가 깃들어 있다. 그러나 그의 이 일련의 작품들은 단순히 지역적 미감을 나이브하게 드러낸 것이 아니라 보편적 미감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 작가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이 땅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이 불 무렵, 유휴열의 작품이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단색화 위주의 모더니즘과 1980년대 초반에 들어서 강세를 보인 민중미술 간의 대립 구도가 점차 완화되는 80년대 후반의 미술계 기류 속에서 표현주의 계열에 속하는 그의 작업이 화단의 눈길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 후반, 작업에 가일층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유휴열은 90년대에 들어서자 500호 이상 되는 대형 화면으로 승부를 걸기 시작했다. 작업이 대형화되면서 잭슨 폴록 식의 몰입이 심화되었다. 물감을 들이붓기, 붓이나 나무 조각으로 칠하고 긁기, 흙 바르기, 천이나 마른 나뭇가지 붙이기 등 신명과 흥에 의존하여 작업에 몰입하는 양태가 나타났다.
 


Ⅳ.
 대형작품 위주의 제작방식은 유휴열의 작업을 특징짓는 한 요소이다. 매사 에너지가 넘치는 그는 투박하고 서글서글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자신의 작업 방향을 섬세하게 살피고 작품에 필요한 재료를 선택하는 재주가 있다. 그중에서도 공업재료인 스치로폼과 알루미늄 판, 자동차 도료인 우레탄 물감의 선택은 2천년대 이후 작업의 방향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커다란 전기가 되었다. 이와 함께 나타난 변화는 조각에의 관심인데, 이는 유휴열의 작업이 회화와 조각 간의 경계를 허물고 혼성화되는, 큰 범주에서의 조형예술 전반에 걸친 작업으로 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추어나 푸돗던고> 연작은 작품이 점차 대형화되면서 회화와 조각의 접경을 넘나드는 징후를 보여주었다. 이 연작은 시기적으로 볼 때 <生 ㆍ놀이> 연작과 일부 맞물리는 작품들이지만, 1980년대에서 90년대로 이어지면서 과감한 색채실험을 했던 <生ㆍ놀이> 연작에서 벗어나 이 연작에 이르러 비로소 오브제 중심의 조형실험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특기할만 하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염두에 둘 것은 <生ㆍ놀이>나 <추어나 푸돗던고>와 같은 연작 형식의 작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이는 반드시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경우에 따라 서로 다른 명제들을 작품에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산수도>, <가족>, <무질서 속의 질서>, <불(佛), <읽어버린 시간>, <별잠>, <세계일화>, <온고지신>과 같은 명제들은 내용과 일치하거나 혹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작명에 자유로운 작가의 의식을 보여준다. 


 유휴열은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 한편으로는 작품의 대형화를, 한편으로는 재료와 형식, 장르의 개방화를 추구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그를 대형 작가로 각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화단의 주목을 받는 문제작가로 간주하기에 충분한 명분을 제공했다. 벨지움국제회화전 특별상(1982)을 비롯하여 예술평론가협회 제정 최우수작가선정 최우수 작가상(1986), MANIF 서울국제아트페어 대상()1997), 전북대상(전북일보사, 2006), 그리고 가장 최근의 금보성아트센터 한국작가상(2016) 등 잇단 수상은 한국 미술계에서 그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사례들이다.  



 2천년대 이후 유휴열은 스치로폼과 우레탄 도료, 그리고 알루미늄 판재를 만나면서 새로운 표현의 영역을 개척해 오고 있다. 특히 가공이 쉬운 재료인 스치로폼과 알루미늄 판을 이용한 부조 회화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는 독창성의 측면에서 기여한 바가 크다고 판단된다. 성형된 스치로폼의 겉을 연한 알루미늄 판재로 감싸 일련의 부조 회화, 혹은 그 자체 환조(丸彫)로 제작할 때, 회화와 조각의 경계는 사라지고 없다. 유휴열이 조형예술에 기울이는 관심은 재료나 형태, 이미지에 있어서 뜻밖의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붓칠이 된 자동차의 도료 사이로 반짝이는 알루미늄 판재가 빛의 효과를 드러내는가 하면, 때로는 전혀 색칠이 되지 않은 생 알루미늄 판재를 사용, 다양한 패턴의 실험을 함으로써 표현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점 등이 그것이다. 물론 후자는 재료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다양한 패턴 이미지의 창출에 대한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나타난 결과이지만, 새로운 재료의 사용이 새로운 효과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보면 이 또한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의 산물일 터이다. 



Ⅳ.
 화단경력이 어언 50년에 이른 유휴열의 작가적 삶은 이제 보다 큰 산을 넘어야 하는 분기점에 이르렀다. 인생 칠십, 화업(畵業) 오십이란 연륜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나, 여기서 안주한다면 더 큰 세계를 이루기 어렵다. 물감을 비롯하여 갖가지 사물들이 집적되고 원색으로 인해 화려해 보이는 시기에도 단순미를 추구한 적도 있었던 그인 만큼 이제는 사물과 삶을 멀리서 관조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그러나 항상 지칠 줄 모르는 유휴열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패기를 염두에 둔다면, 그의 이번 금보성아트센터 한국작가상 수상기념전은 새로운 도전과 또 다른 세계의 탐험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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